“금리인하 너무 이르면 물가·환율·가계부채·집값 불안”
“너무 늦으면 내수 회복세 약화·부동산PF발 금융불안”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한지훈 민선희 기자 =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는 국내외 중앙은행이 앞으로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지침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은행이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정책 결정 원칙까지 인용하며 너무 이르지도, 지나치게 늦지도 않은 통화정책 기조 전환(피벗)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원론적으로 통화정책에 대한 신중한 태도를 다시 확인한 것이지만, 그만큼 현재 우리나라 경제에 물가·환율·가계부채·경기·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상충적 위험 요소들이 많아 기준금리 인하 시점을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 피벗이 집값 자극해 가계부채 늘릴수도…한미 금리차 환율 영향도 커져
한은 통화정책국 정책총괄팀 박영환 팀장·성현구 과장은 30일 한은 공식 블로그에 올린 ‘향후 통화정책 운용의 주요 리스크’ 보고서에서 통화정책 전환이 너무 빠르거나 늦을 경우 각각 예상되는 위험을 구체적으로 기술했다. 우선 이른 피벗의 주요 리스크로는 ▲ 물가 목표(2%) 수렴 지연 ▲ 환율 변동성 확대 ▲ 가계부채 증가 등이 꼽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근원물가(에너지·식품 제외) 상승률은 완만한 둔화세를 이어가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단기 기대인플레이션은 3% 안팎 높은 수준에서 정체된 상태다.
더구나 지난 몇 개월간 커진 공급 충격(농산물 가격과 국제유가 상승·환율 변동성 확대 등)이 얼마나 지속될지, 파급 영향은 얼마나 클지도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
박 팀장·성 과장은 “기대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높고 공급 측면의 리스크가 상존하는 상황에서 너무 이른 기조 전환이 이뤄지면 물가 상승률 둔화 속도가 느려져 목표 수렴 시기도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기대인플레이션이 높은 상황에서 금리 인하의 물가 영향 정도가 기대인플레이션이 낮은 경우의 1.5 배에 이르고,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이후 비(非) 근원물가의 근원물가 영향력과 환율의 물가 전가율이 커지거나 높아졌다는 분석 결과가 근거로 제시됐다.
공급 충격이 장기화하면서 물가 둔화 흐름이 정체되거나(2003∼2005년), 물가가 다시 높아진(2009∼2012년) 과거 사례도 거론됐다.
환율의 경우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피벗 시기와 인하 폭 등에 대한 불확실성이 완화되기 전까지 미국 달러화 지수(DXY)의 강세 흐름과 이에 따른 글로벌 외환시장의 큰 변동성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됐다.
박 팀장·성 과장은 “이처럼 국내외 외환시장의 경계가 고조된 상황에서는 내외 금리차가 원/달러 환율에 미치는 영향도 커지는 것으로 분석됐다”며 “환율 변동성 확대는 물가 상승률 둔화 속도를 늦추는 요인일 뿐 아니라 자본 유출입, 국내 금융기관의 재무 건전성 등 금융 안정에도 영향을 주는 만큼 계속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가계부채 역시 불안 요인으로 지목됐다. 정책금융 확대와 주택담보대출 금리 하락 등으로 금융권 가계대출이 지난 4월 증가세로 돌아섰는데, 앞으로 피벗이 주택가격 상승 기대를 자극하면서 가계부채 증가를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 고금리 지속되면 내수 부진 장기화…비은행권 연체율도↑
반대로 피벗이 너무 늦을 경우 수출·내수 간 차별화 심화, 금융시장 불안 등이 걱정거리다.
현재 수출은 강한 증가세를 이어가지만, 1분기 반등한 소비와 건설투자의 경우 2분기 조정을 받는 등 수출·내수간 차별화가 나타나고 있다.
한은 분석 결과 수출 호조는 글로벌 IT(정보기술) 경기 등 대외 요인 덕이지만, 내수 부진에는 고금리·물가의 영향이 상당히 큰 것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통화긴축 기조가 오래 지속되면 내수 회복세가 더 약해져 수출·내수 간 차이가 더 커지고 물가 상승률이 전망 경로보다 더 낮아질 가능성 있다.
박 팀장·성 과장은 “2018∼2019년 사례처럼 국내 경기의 수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예상하지 못한 대외 충격이 발생할 경우 경기가 빠르게 위축될 수 있다는 점에도 유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금융안정 측면에서 통화긴축 기조 지속은 중장기적으로 부동산PF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측면이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부동산PF 부실 확대로 금융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긴축이 길어질수록 부동산 경기 부진, 금융비용·공사비 증가 등으로 PF 부실 위험이 커지고 비은행권 대출 연체율도 높아질 수 밖에 없다는 게 한은의 진단이다.
박 팀장·성 과장은 “로마 전성기의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천천히 서둘러라’를 정책 결정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았다”며 “무슨 일이든 너무 서두르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반대로 너무 기다리면 타이밍을 놓쳐 의도한 효과가 약해지기 때문에 균형적 정책 결정이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천천히 서둘러라’는 국내외 중앙은행이 앞으로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지침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며 “하반기 이후 통화정책은 양 측면의 리스크를 종합적으로 점검하면서 결정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shk999@yna.co.kr, hanjh@yna.co.kr, ss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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