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중앙은행 공식 환율 발표…크렘린궁 “제재에 대응 고려”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러시아가 미국 제재로 모스크바 거래소(MOEX)에서 미 달러와 유로화를 거래할 수 없게 되면서 혼란을 겪고 있다.
모스크바 거래소는 13일(현지시간)부터 달러와 유로화로 결제되는 외환, 귀금속, 주식, 선물 시장 등을 거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날 미국이 발표한 추가 제재 대상에 모스크바 거래소와 국립예탁결제소 등 러시아의 주요 금융 기관도 포함되면서다.
미 재무부와 국무부 등은 러시아가 서방 제재를 피해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를 지속하도록 하는 개인과 단체 300곳 이상을 제재 대상에 추가했다.
발표 시간이 러시아에서 공휴일(12일) 늦은 밤이었는데도 모스크바 거래소는 약 1시간 후 혼란 방지를 위해 달러와 유로화 거래를 중단한다는 성명을 서둘러 내놨다.
러시아 중앙은행도 홍콩달러 거래를 금지하며 발 빠르게 조치에 나섰다. 중앙은행은 “홍콩달러는 미 달러에 연결돼 전통적으로 엄격한 규정을 적용받아왔다”며 위험을 줄이기 위해 이같이 조처했다고 설명했다.
또 장외시장에서는 달러와 유로화 거래가 계속 가능하다면서 “기업과 개인은 러시아 은행에서 계속 달러와 유로를 사고팔 수 있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이어 모든 계좌와 예금에 있는 달러·유로화는 안전하게 유지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장외시장보다 모스크바 거래소가 달러·유로화 거래의 유동성·투명성을 더 보장할 수 있는 만큼 러시아가 외화 거래와 루블화 환율에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나아가 러시아 경제의 투명성이 악화할 우려도 제기된다.
러시아 당국의 조처에도 이날 오전 루블화 가치는 달러당 91.75루블로 약 한 달 만에 최저치로 하락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지난 11일에는 달러당 89.10루블, 유로당 95.62루블이었다.
AFP 통신은 환율이 러시아 경제 건전성을 나타내는 주요 지표로 작용해왔고 소련 붕괴 이후 30년간 통화 가치 하락을 경험한 러시아인들이 서방 통화 저축에 익숙해진 상태여서 이번 조치가 러시아 사회에 강한 반응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러시아 중앙은행은 처음으로 거래소를 통하지 않고 달러·유로화 환율을 결정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오는 14일 장외시장 데이터를 기반으로 공식 환율을 각각 달러당 88.20루블, 유로당 94.83루블로 정했다고 발표했다.
모스크바 거래소 주가도 출렁였다. 이날 오전 10시 기준 212.04루블로 15.8% 하락했다. 스베르방크와 VTB 주가도 각각 4.3%, 6.0% 내려갔다.
러시아는 2022년 2월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세를 시작한 이후 지난 2년 동안 서방 제재를 받게 되면서 달러·유로 의존을 줄이려고 노력해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7일 무역 결제에서 달러·유로 등 서방의 ‘독성 통화’의 비중이 감소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지난달 러시아 외환거래에서 달러·유로 등 독성 통화 비중은 45.9%로 감소했지만 중국 위안화 비중은 53.6%로 증가했다면서 “위안화는 이미 외환 거래의 주요 통화가 됐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중국 은행들도 제3자 제재(세컨더리 제재) 위협으로 러시아 은행·기업과 협력하기를 꺼리는 움직임을 보인다고 분석한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러시아 중앙은행은 모든 시장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으며 이는 현재 진행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미국 제재에 대한 보복을 고려하느냐는 물음에는 “우리는 우리의 이익에 가장 적합한 조치를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abbie@yna.co.kr
*사진: 러시아 환전소 앞 [EPA=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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