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향 강한 알바리뇨 도다리 세꼬시와 제격
약한 바디감 탓에 숙성회·물회와는 안 맞아
숙성회·물회와는 강한 향의 리슬링·로제 추천
[블록미디어=권은중 전문기자] 지난 주말 강원도 속초에 다녀왔다. 한 후배가 레스토랑 겸 육가공 업체를 열기 위해 물색한 땅을 보러 가기 위해서였다. 속초 시내에 간 것은 십여년만의 일이었다.
30여년전 대학 시절부터 회를 먹으러 다녔던 호젓한 해변이던 동명동 영금정 옆에는 수십층짜리 아파트가 들어섰다. 속초 시내도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아파트로 스카이라인도 예전과 달라졌다. 상전벽해에 변함없는 것은 설악산의 울산바위뿐이었다.
내가 속초에 간 것은 또다른 이유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동해안 물회와 가자미회를 먹기 위해서였다. 냉면이 여름을 대표한다면 물회는 여름 휴가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동해안 바닷가로 휴가를 떠났다면 시원달콤한 물회 한 그릇을 해야 한다. 속초는 제주 포항과 함께 물회의 3대 성지 가운데 하나다. 물회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내가 좋아했던 속초의 물횟집은 모두가 빌딩을 올렸다. 함께 갔던 후배는 그 집들보다 좀 더 속초 전통에 가까운 물회집을 찾아야 한다며 내가 알고 있던 유명 물횟집에 전부 퇴자를 놓았다.
속초와 주변에 사는 지인들에게 통화를 해서 정보를 취합한 결과, 2개의 횟집으로 갈 곳이 압축됐다. 그 가운데 숙소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으로 우리는 발길을 향했다.
나는 이 집에 가가 전에 서울에서 화이트 와인을 한병 챙겼다. 회에는 주로 리슬링이나 로제 와인을 먹는데 이번에는 스페인의 알바리뇨를 골라봤다. 알바리뇨는 레몬맛 같은 과일맛이 강해 역시 리슬링만큼이나 회에 잘 어울린다는 것을 경험해봤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알바리뇨는 새우깡과 같은 해산물 베이스 과자와도 잘 맞는다.
알라비뇨라는 품종은 아직 우리에게 생소하다. 알바리뇨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산티에고 순례길의 최종 목적지인 스페인반도 북서부의 갈리시아주에서 주로 생산된다. 대서양을 끼고 있는 이 지역은 화이트 품종이 잘된다. 알바라는 단어도 희다라는 뜻이다. 리뇨는 소년이라는 뜻인데 작은이라는 뜻도 있다. 희고 작은 포도라는 의미다.
갈라시아주에서 알바리뇨로 유명한 지역은 라이스 바이시스다. 라이스 바이시는 많은 비와 적당한 기온으로 포도재배에 적합하다. 토양은 화강암지역이어서 미네랄감도 좋다. 내가 가져간 알바리뇨는 리베로 울레시아 와이너리의 파우스티노였다. 역사는 짧지만 갑각류 조개 해산물 파스타와 매칭이 잘된다고 와인서처같은 와인 소개 사이트에 언급돼 있다. 대형마트에서 1만대의 가격으로 판매한다.
날씨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우리가 간 횟집은 일반적으로 바로 생선을 잡아서 회를 떠주는 선어횟집이 아니라 회를 면포나 다시마에 감아서 숙성시키는 숙성횟집이었다. 꽤 고급스러운 맛이었다. 그렇지만 알바리뇨는 회를 가렸다.
어떤 회에는 알바리뇨가 맛이 있었지만 어떤 회는 회맛에 밀렸다. 시간이 갈수록 산도가 줄어들어서 좀더 난감했다. 이 와인에는 숙성회가 아니라 선어회여야 했던 것이다. 간장과 고추냉이를 찍어먹는 것으로도 와인이 살짝 밀렸다. 와인이 가진 산도와 바디감이 생선의 양념과 숙성된 맛을 입안에서 씻어내지 못한 것이다. 강한 산도와 당도의 리슬링과 로제 와인과는 달랐다. 알바리뇨는 뉴질랜드 쇼비뇽 블랑보다도 하늘 거렸다. 희고 작았다. 그래도 놀래미나 가자미 세꼬시와는 잘 어울렸다. 놀래미의 약간의 흙맛과 와인의 미네랄 감이 궁합이 괜찮았다. 하지만 리슬링이나 로제 와인처럼 착착 감기는 맛은 조금 부족했다.
숙성회에 이 정도이니 알바리뇨는 강력한 양념의 물회와는 대결 자체가 성립이 안됐다. 물회를 한 숟갈 뜨고 알바리뇨를 마셔보니 쓰나미같은 파도 앞에 떠 있는 작은 배가 떠올랐다. 결국 우리는 소주를 시켜야 했다. 그제서야 일방적이던 음식과 술의 대결이 다소 팽팽해졌다. 그렇지만 16도에 불과한 요즘 소주도 과일과 비법 재료로 보름간 우려낸 빨간 물회 국물을 당해내지 못했다. 21도 한라산 소주를 보유하고 있는 제주도의 횟집이 다시한번 그리웠다(나는 와인 마니아라고 하지만 빙초산에 제피잎까지 띄우는 자리물회에 와인을 마시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자리물회에는 한라산이 진리다).
* 권은중 전문기자는 <한겨레> <문화일보> 기자로 20여 년 일하다 50세에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의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에 유학을 다녀왔다. 귀국 후 <경향신문>, <연합뉴스> 등에 음식과 와인 칼럼을 써왔고, 관련 강연을 해왔다. 『와인은 참치 마요』, 『파스타에서 이탈리아를 맛보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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