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김진배 기자]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이 시는 두 갈래 길에 선 어떤 사람이 선택을 해야 했고 그 선택이 훗날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컴퓨터가 처음 발명됐을 때 컴퓨터에 대한 시선은 부정적이었다. 거대하고 계산밖에 할 줄 모르는, 계산기에 불과했던 기계가 훗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용하게 되고 업무에 필수적인 것이 되리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다. 사실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빌게이츠가 “컴퓨터 메모리는 640KB면 누구에게나 충분하다”라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럼에도 컴퓨터 개발자들은 개발을 멈추지 않았고 컴퓨터는 우리 삶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키는데 일조했다. 개발자들이 세간의 시선과 규제 때문에 개발을 멈춰야 했다면 오늘날의 컴퓨터는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군사용으로 처음 발명된 인터넷도 비슷한 대우를 받았다. 인터넷 개발 초기 일반 사람들에게 인터넷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을 받았다. 국내에서 인터넷 도입이 시작된 이후에는 사회적 문제와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그럼에도 당시 김대중 정부는 인터넷에 대해 과감히 투자했고 결국 세계에서 손꼽히는 인터넷 강국을 만들었다. 부작용을 우려해 도입을 망설이고 규제했다면 우리나라는 IT약소국이 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2018년은 블록체인 붐이 불어온 해였다. 17년 말부터 암호화폐가 급등했고 이 영향으로 관심이 집중돼 수많은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등장했다. 자연스럽게 블록체인 활용 방안이 다방면으로 논의됐다.
관심이 증폭된 것은 올해였지만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의 이슈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었다. 2015년부터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대한 논의는 시작됐다. 적용부터 규제까지. 그럼에도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여전히 불안 속에 있다. 산업의 방향을 정해야 할 정부가 모호한 방침만을 정해놓은 채 명확한 규제나 법안을 아직도 내놓지 않고 방임하고 있는 상황 때문이다.
정부의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분리 방침도 현재의 상황을 만드는데 한몫 했다. 암호화폐가 없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육성하되 암호화폐가 사용되는 퍼블릭 블록체인은 지양하겠다는 태도는 모호함만을 만들어냈다. 실제로 정부 주도하에 진행되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공공분야에서 모습을 속속 드러내고 있으며 기업들도 프라이빗 블록체인 개발을 계속해 결과물을 내놓고 있다. 반면 퍼블릭 블록체인은 모호한 규제의 바다 속에서 큰 전진 없는 헤엄만 치는 중이다. 업계가 스스로 규제를 만들러 달라 SOS를 외치는 모습은 모순적이기까지 하다.
정부의 블록체인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관계자의 말에서 우리 정부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블록체인은 하나의 ‘기술’일 뿐이라는 것이 우리 정부의 기본 태도다. KISA 관계자는 “블록체인은 여러 사업에 적용될 수 있는 분산원장 기술일 뿐”이라면서 “토큰이코노미로 무엇을 하겠다고 하는 것들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프라이빗 블록체인으로도 많은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면서 “퍼블릭 블록체인이 필요한지 의문”이라 말했다.
반면 업계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업계는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토큰이코노미가 생성되고 그 세계는 참여자가 모두 보상받는 ‘혁명’을 맞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블록체인 정신은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생태계다. 블록체인은 누군가가 지배하고 군림하는 중앙 집중 담론으로부터 객체를 해방시켜 모두가 주체가 되게 만드는 혁명적인 기술이다. 분산원장이라는 기술의 속성만 이용하는 프라이빗 블록체인도 기술적 면에서 혁신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주체가 될 수 없기에 ‘혁명’이 될 수는 없다. 오랜 기간 우리가 당연시 여겨왔던 지배담론을 파괴할 혁명은 토큰이코노미를 형성시킬 퍼블릭 블록체인에 있다.
이제 정부는 두 갈래 길에 섰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혁신의 길과 사람들이 가지 않은 익숙하지 않은 혁명의 길. 혁명은 늘 사람들이 잘 선택하지 않던 길에서 왔다. 블록체인을 하나의 기술만으로 치부해 혁신적 기술에 머물게 할 것인지 세계를 변화시킬 혁명의 주체로 사용할지 정부는 깊은 고민을 해보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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