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이주혜 기자 =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대기성 자금이 5대 은행에서만 한 달 사이 25조원 가까이 늘었다. 이자가 기준금리 수준에 그친 정기예금에 자금을 묶어두는 대신 자산시장 투자를 고려하거나 부동산 시장의 흐름을 관망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수시입출금식 저축성예금(MMDA)을 포함한 요구불예금은 전월보다 24조7262억원 늘어난 638조8317억원으로 집계됐다.
요구불예금은 언제든 입출금이 가능해 투자처를 고민하는 대기성 자금으로 취급된다. 이자는 연 0.1% 수준에 그치지만 만기까지 자금을 묶어둬야 하는 예적금과 달리 적당한 투자처를 찾으면 즉각 자금을 이동시킬 수 있다.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1월 말 590억7000만원에서 3월 말 647조8892억원으로 급증했다. 이후 4월에는 기업공개(IPO) 청약 증거금 등의 영향에 33조원이 빠져나갔으며 5월에도 감소세를 지속했다. 그러나 지난달 25조원 가까이 몰리면서 증가 전환했다.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은행에 머무는 것으로 풀이된다. 은행권 관계자는 “시장의 변곡점을 앞두고 대기성 자금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면서 “정기예금 만기 후에도 이를 재예치하기보다는 자산시장 투자를 망설이거나 주택 구입을 염두에 두고 자금을 묶어두지 않으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은행권 정기예금 잔액은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증가폭은 전월에 비해 크게 줄었다. 지난달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891조1524억원으로 전월보다 1조4462억원 늘었다.
앞서 5월에는 5대 은행의 정기예금으로 17조원에 가까운 자금이 쏟아진 바 있다. 금리 하락을 앞두고 예금 ‘막차’를 타려는 수요에 정기예금 잔액이 한 달 만에 약 16조8000억원 증가했다.
최근 주요 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는 기준금리(3.5%)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전날 5대 은행의 주요 정기예금 상품 최고금리는 연 3.45~3.55%로 집계됐다. NH농협은행 ‘NH올원e예금’이 연 3.55%로 가장 높다. 이어 우리은행 ‘WON플러스예금’ 연 3.52%, 국민은행 ‘KB Star 정기예금’ 연 3.50%, 신한은행 ‘쏠편한 정기예금’ 연 3.47%, 하나은행 ‘하나의정기예금’ 연 3.45% 순이다.
2022년과 지난해 연 4~5%대 정기예금 금리를 경험한 금융 소비자들에게 3%대 정기예금 금리는 낮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2022년 하반기 자금시장이 얼어붙자 은행권 정기예금 금리는 연 5%대로 치솟았다. 지난해에도 재예치를 위해 주요 은행 예금금리가 4%대로 올라간 바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현재 정기예금 금리가 연 3.5% 내외인데 저금리 시기를 생각하면 괜찮은 수준”이라면서도 “금융 소비자들이 예금금리 수준에 만족하지 못하고 투자를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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