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70여 유통업자, 엔비디아 칩 온라인 판매 광고”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싱가포르에서 공부하는 26세 중국인 대학생은 지난해 가을 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가면서 옷과 신발만 챙긴 것이 아니다.
그의 짐 가방에는 6개의 엔비디아 칩도 들어있었다.
대학에서 알게 된 사람이 그에게 해당 칩을 중국으로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각 칩의 크기는 닌텐도 스위치 게임 콘솔만 하며, 그는 공항에서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았다.
중국에 도착해서 그는 칩 한 개 당 200달러(약 14만원)의 운반비를 받았다. 개당 수천만원에 달하는 칩 가격의 극히 일부분이다.
그는 “내 조국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고 약간의 돈을 벌 수 있어 기쁘다. (밀수를) 왜 안 하겠나?”라고 말했다.
세계 인공지능(AI) 시장을 주도하는 미국 반도체기업 엔비디아의 첨단 반도체에 대한 미국 수출 규제로 중국에서 관련 밀수 시장이 급성장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일(현지시간) 해당 대학생 사례를 포함한 엔비디아 칩의 중국 밀수시장에 관해 탐사 취재한 내용을 보도했다.
WSJ은 수출 통제 대상인 엔비디아 칩을 판다고 주장하는 70여개의 유통업자가 온라인에서 공개적으로 광고를 하고 있으며, 그중 25개 업자와 직접 접촉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많은 판매업자가 매달 첨단 엔비디아 반도체 수십 개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신문은 “엔비디아 칩의 판매세는 안정적이라 이들 판매업자는 선주문을 받고 수주 내 배송을 약속하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일부는 첨단 엔비디아 칩이 8개씩들어있는, 약 30만달러(약 4억2천만원)에 달하는 전체 서버도 팔았다”고 전했다.
이어 이들 상인은 빅테크(거대 정보기술기업) 회사 한곳의 수요를 충족할 만큼의 물량은 대지 못하지만 그보다 필요 수량이 적은 AI 스타트업이나 연구기관을 위해서는 물량을 조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베이징의 한 판매업자는 엔비디아 칩의 중국 내 밀수 판매에 대해 “매우 어려워졌지만 언제나 길은 있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몇개월간 매달 수십 개의 칩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앞서 2022년 8월 미국 상무부는 중국군이 AI용 그래픽처리장치(GPU) 반도체를 사용할 위험이 있다며 엔비디아와 AMD에 관련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금지했다.
이에 따라 엔비디아의 A100과 그 업그레이드 버전인 H100의 중국 수출에 제동이 걸렸다.
GPU는 챗GPT 같은 생성형 AI에서 두뇌 역할을 하는 칩으로 엔비디아는 세계 AI용 GPU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중국의 알리바바 클라우드와 텐센트 클라우드, 바이두 스마트클라우드, H3C, 인스퍼, 레노버 등이 엔비디아로부터 A100을 공급받아왔다.
미국 수출 규제로 인해 엔비디아는 A100과 H100의 데이터 전송 속도 등 성능을 낮춘 중국 수출용 버전인 ‘A800’과 ‘H800’을 내놓았다.
그러나 미 정부는 지난해 10월 A800과 H800의 중국 수출도 통제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에서 엔비디아 GPU 밀수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고 앞서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이 보도했다.
중국 빅테크들이 모두 ‘중국판 챗GPT’ 개발에 뛰어들면서 그에 필요한 엔비디아 칩 수요가 급증했지만, 대체재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 내 엔비디아 칩 밀수업자들은 일반적으로 A100 칩의 판매가로 2만2천500달러(약 3천100만원), H100 칩은 3만2천400달러(약 4천500만원)를 부르고 있다.
엔비디아 대변인은 WSJ에 미국 수출 통제를 준수하며 제한된 칩을 중국에 판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국제 통상 변호사들은 많은 외국 정부와 사법권은 미국 수출 통제를 관할 지역에 행사하는 게 법적으로 요구되지 않으며, 해당 지역에서는 중국에 그러한 칩을 판매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범죄로 여겨지지 않는다고 말한다고 WSJ은 전했다.
해당 변호사들은 앞서 소개된 중국인 대학생의 엔비디아 칩 중국 배달 행위가 싱가포르 법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짚었다.
WSJ은 “중국에서 자국산 반도체가 나타나지 않는 한 엔비디아의 첨단 제품 시장과 그것을 둘러싸고 생겨난 공급망은 계속 활기를 띠고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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