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달러에서 엔화로 바꿔도 200조원 규모…”엔저 막을지 장담 못해”
[서울=연합뉴스 차병섭 기자] 2천조원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는 일본의 대형 연기금이 운용 포트폴리오 개편을 앞둔 가운데, 이에 따른 엔화 강세 가능성 등 주식·외환 시장에 미칠 여파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8일(이하 현지시간) 일본 연금적립금관리운용독립행정법인(GPIF)이 5년에 1번 이뤄지는 투자 전략 검토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1분기 말 기준 GPIF의 자산 운용 규모는 246조엔(약 2천113조원)에 이르며, 이 가운데 절반은 외국 주식·채권이고 상당수는 달러화 자산이다.
내년 4월에 새로운 전략이 공식 적용되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GPIF는 대체로 전환을 순조롭게 하기 위해 미리 가중치를 조정하는 게 일반적이라는 시장 평가가 나온다.
게다가 이번 조정 논의는 이달 한때 엔/달러 환율이 37년여만에 최고인 161엔선을 넘기는 등 엔화 약세가 두드러진 가운데 이뤄지는 것이다.
엔/달러 환율 상승에 따른 수입 물가 상승 여파 등으로 기시다 후미오 일본 내각 지지율이 25%에 불과한 만큼, 일본 당국으로서는 환율 방어에 나설 유인이 있는 상황이다.
일본 당국이 환율 방어를 위해 달러를 매도하는 가운데 GPIF는 2014년 당시의 정책에 기반해 달러 강세를 부채질하며 엇박자가 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는 상황이다.
앞서 GPIF는 2014년 외국 자산 비중을 23%에서 40%로 늘린 데 이어 4년 전에는 50%로 끌어올렸으며, 일본의 다른 대형 기관들도 GPIF의 변화를 따라가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시장 애널리스트 다수는 일본 당국이 정부 통제하에 있는 달러 보유분을 엔화 자산으로 돌릴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무디스애널리틱스의 슈테판 안그릭은 “GPIF가 10년 전 한 방향으로 이동한 것을 보면 이번에 같은 일을 (반대 방향으로) 할 수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면서 대규모 달러 보유는 보험 성격이 있으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사용 가능하다고 말했다.
GPIF가 운용자산의 10%를 외국 통화에서 엔화로 바꿀 경우 해당 자금 규모는 24조6천억엔(약 211조원)에 이른다.
다만 외환시장의 규모와 변동성을 감안하면 GPIF의 자산 비중 조정으로 반드시 엔저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안그릭은 설명했다.
모건스탠리 애널리스트들은 일본 정부가 GPIF의 일본 주식 비중을 늘리도록 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이는 닛케이225 평균주가(닛케이지수)와 토픽스가 사상 최고점을 새로 쓰는 등 고공행진 중인 일본 증시에 호재가 될 수 있다.
다만 GPIF의 기금 운용 목표는 정부의 정책 목표 달성을 돕는 게 아니라 연금 수급자들을 위한 수익률 추구에 있는 만큼 포트폴리오 재조정 시 이를 정당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편, 미야조노 마사타카 GPIF 이사장은 5일 기자회견에서 내년 포트폴리오 조정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피하면서 각 자산의 장기 기대수익을 분석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지난 회계연도에 달러와 유로화 대비 엔화 가치가 하락했고 이는 GPIF의 투자 실적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면서도 수익률 증대를 위해 엔저를 이용하려 노력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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