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서미희 기자]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가상자산 이용자를 보호하고 가상자산시장의 건전한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을 다룬 첫 법안으로, 기본적으로 미공개 정보 이용과 시세조종, 부정거래 등 불공정거래행위로부터 이용자를 보호하는 법이다.
앞서 2021년 시행된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특금법)’에 가상자산과 관련한 내용이 포함되긴 했지만, 가상자산만을 다룬 법안은 이번이 첫 시행이다.
특금법에서는 가상자산 사업자에게 자금세탁이나 공중협박 자금조달 행위 등 의심되는 거래를 FIU(금융정보분석원)에 보고하도록 했다. 불법성이 의심되는 거래를 보고하지 않으면 1억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다만 자금세탁 방지에 중점을 두고 있어 엄밀히 말하면 직접적인 가상자산 규제 법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 1단계 2단계 입법 순서가 뒤바뀐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자본시장법 금융투자업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는데 왜 가상자산 안에서는 자산운용업을 금지하는지 모르겠다. 이는 가상자산을 대하는 글로벌 흐름과 역행한다. 라이센스를 주고, 또 명확한 규제를 주고 관리 감독을 하면 이용자를 보호하면서도 관련 시장을 키울 수 있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10일 블록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오는 19일부터 시행되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가상자산보호법)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구 변호사는 “대표적인 가상자산 예치업체 델리오 사태도 보관업 라이센스를 주고선 보관을 넘어 운용까지 하고 있는 델리오를 제대로 관리 감독하지 않은 금융당국의 책임도 있다”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의 1단계 입법과 2단계 입법의 순서가 뒤바뀌었다”며 “업권을 먼저 정하고 불공정거래를 정해야지, 관련 시장을 죽여 놓고 다시 시작하겠다는 꼴이다”라고 비판했다.
구 변호사는 “발행 규제를 앞서 발 빠르게 도입하고 양질의 암호화폐를 시장에 들어오게 한 다음에 건전한 가상자산 시장을 발전시키는 게 ‘정도(正道)’다”라고 강조했다.
구 변호사는 “테라 루나 사태도 막을 수 있었다. ICO 규제 또한 얘기가 나온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고 발행 기준이 미비한 틈을 타 잡 코인과 스캠, 폰지 사기로 국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또 “기존에 있던 규제로도 이용자 보호가 가능한 부분이 충분히 있었다. 업계 모두가 기다려온 첫 업권법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면서도 “전세계적으로 암호화폐를 받아들이고 있는 추세와 다르게 금융당국이 가상자산을 규제의 대상으로만 보는 한계가 명확하게 드러난 입법 절차였다”고 말했다.
#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제정 목적에 ‘산업진흥’ 제외…”규제 중심”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과 관련, 법무법인 린 구태언 변호사는 기존에 있던 규제로도 이용자 보호가 가능한 부분도 있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1차 입법 과정에서 해당 법 제정 목적에 ‘산업진흥’은 슬그머니 빠져버렸다. 급한 불부터 끄자는 의도였지만 2차 입법과 1차 입법의 순서가 바뀌었고, 급하게 법안이 통과되다 보니 업계가 살펴야 할 잔여 쟁점 또한 많아 2단계 입법이 매우 중요하다는 게 구 변호사의 지적이다.
특히, 구 변호사는 “하루인베스트와 델리오 사태는 금융위의 직무유기로 일어난 일이다. 한국거래소에서 증권신고서를 내지 않은 불법 증권이 유통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루인베스트와 델리오 사태만 봐도 같은 사업을 하는데 어떤 업체는 규제하고 어떤 업체는 규제하지 않는 게 이상한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실물자산을 기반으로 한 가상자산은 금융위를 제외한 각 부처에서 규제하면 되고 소비자 보호도 해당 부처들의 몫”이라고 덧붙였다. 가상자산거래소는 전자상거래업소이므로 공정위가 전자상거래보호법으로 규제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 가상자산 규제 완화 대선·총선 공약 어디 갔나
정치권에서도 지난 대선과 총선을 통해 규제 완화 공약이 나왔다. 하지만 정책 변화의 움직임은 더뎌 보인다.
이대로 라면 여야가 대선·총선 공약으로 앞 다투워 내세웠던 ‘가상자산 관련 법안’은 한철 공약일 뿐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전문가 및 업계의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공청해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속도감 있게 ICO를 추진하지 않은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됐다.
익명을 요청한 업계 관계자는 “이용자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폐업 신고를 하는 업체들이 많다. 첫 업권법이라는 점에서 환영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5대 가상자산 거래소(업비트, 빗썸, 코빗, 코인원, 고팍스)를 제외한 나머지 코인마켓 거래소와 가상자산 관련 사업자들은 고민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코인업계의 숙원과도 같은 ICO 등 업계 진흥을 위한 입법의 방향은 더뎌 보인다”며 “이용자 보호에 초점을 맞춘 것은 바람직하지만 국내 가상자산 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규제 일변도의 분위기가 언제까지 이어질 지 막막하다”고 볼멘소리를 내놨다.
지난해 5월 열린 정무위 법안 소위에서 정무위원들과 각 기관은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을 의결하며 점진적단계적 입법 방향에 합의하고, 투자자 보호를 중심으로 1단계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를 위한 입법을 추진키로 했다. 1단계 입법은 고객자산 보호, 불공정 거래 등 이용자보호 규제 도입이 중심이 되고 2단계 입법은 미카 등 가상자산 국제기준에 맞춰 가상자산 발행과 공시 등 시장질서 규제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추진키로 했다.
이와 관련 김익현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2단계 입법은 이전보다 충분한 토론 및 관련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통해 시장을 활성화하려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봤다.
지난주 국회에서 여당 의원들의 주도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과 향후 과제’ 세미나가 개최됐다. 1단계 입법안의 내용을 살펴보고, 보완책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다. 1단계 법안 내용 마련 이후 총선 등 일정에 따라 가상자산 입법과 관련한 작업이 잠시 중단됐었다.
특히, 지난 회기에서 가상자산과 관련 입법 논의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 이용우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총선에서 낙선하면서 입법 추진 동력이 약해졌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해당 세미나를 주최한 김성원 의원은 1단계 시행과 함께 2단계 논의를 진행하려는 했던 계획이 어려워졌지만, 정무위 소속 의원들과 함께 관련 내용을 검토하겠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지연 국회 정무위 금융정책조사관은 10일 블록미디어와의 통화에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관련 내용에 대한 논의는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금융당국의 입장, 정무위 양당 간사의 입장이 모두 정리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 2단계 입법에 운용·보관·투자일임 등 가상자산 보관관리·지갑서비스업 허용 해야
당장 19일부터 1차 입법이 시행되더라도 가상자산 운용·보관업은 설 자리가 없다. 업계에서는 시장이 활성화되기도 전에 시장을 죽이는 우를 범했다 하더라도 2단계 입법에서 사업자의 범위 및 영업 행위 규제를 유연하게 수정하고 다시 수립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용자 보호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가상자산 운용, 보관, 투자일임 등 관련 사업자들도 이용자를 위한 신의성실의무와 이용자 이익 우선 의무를 지키도록 하면 된다. 규제 명확성을 높이면서도 건전한 암호화폐는 성장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상자산 사업자 규제의 기본 방향이 명확하게 정해져야 한다. 지난해 국회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 관련 세미나에서는 국제 기준에 맞춰 가상자산 발생과 공시 등에 관한 2단계 입법에 나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유럽의 미카(MiCA)를 적용하면서 국내 특수 상황은 어떻게 고려할 것인지 살피는 등 촘촘한 입법이 필요하다.
이대로 가면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그는 격이 된다. 사소한 문제를 미리 걱정해 큰 일을 그르치기 전에 2단계 입법 방향에 ‘가상자산 시장의 건전한 성장 및 진흥’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국회와 규제 당국은 가상자산 사업자와 금융투자업자의 유사성과 특수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2단계 입법에서는 가상자산 운용, 보관, 투자일임이 가능하게끔 다시 문을 열어주어야 한다.
사업 형태가 비슷함에도 금융투자업자와 가상자산사업자 규제에 있어 규제 차익을 방치하면 시장 혼동을 야기하고 형평성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는 지적도 새겨야 한다.
전문가들이 계속해서 지적했듯이 블록체인 네트워크 거래의 특수성을 고려해 가상자산사업자를 규제하는 세심함도 요구된다. 해당 특성을 활용한 규제 효율화도 검토해야 한다.
1단계 입법으로 폐업할 수밖에 없는 사업자들과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이용자들을 위해 더 이상 시장의 혼란이 야기되지 않도록 2차 입법을 위한 공청회, 세미나 등을 비롯해 후속 조치가 신속하게 진행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법 제정 전이라도 규제 샌드박스를 이용해 가상자산 생태계의 책임 있는 발전을 모색하는 등의 방안도 있다.
19일 이후 업계의 대대적인 지각변동이 예고된 가운데 전문가들은 업계 뿐만 아니라 가상자산 이용자들 또한 금융 당국에서 추가로 발표하는 구체적인 설명 자료나 매뉴얼, 가이드라인과 2차 입법 과정에서 보완될 시행령 등 향후 추이를 면밀히 지켜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한진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지난 4일 여의도 국제금융센터에서 개최한 ‘2024 블록체인과 디지털자산 세미나’에서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은 체계 완결성, 규제범위, 조항의 불명확성 등이 존재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한진 변호사는 “미카(MiCA)와 비교하면 완결성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 특정금융정보법의 가상자산사업자 조문과 거의 동일하게 규정됐다”며 가상자산법 한계를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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