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최윤정 기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1월 대선에서 승리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시장을 움직이는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미국 기술주 급락과 달러화 약세 등의 현상이 펼쳐지고 있어서다.
◇ 반도체 등 기술주 급락·달러화 하락에 트럼프 발언 영향
17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512.42포인트(2.77%) 급락한 17,996.92에 장을 마쳤다.
이는 2022년 12월 15일(-3.23%) 이후 하루 최대 하락 폭이다.
엔비디아는 6.62% 떨어졌고 브로드컴(-7.91%), ASML홀딩(-12.74%), AMD(-10.21%), 퀄컴(-8.61%) 등 다른 기술주도 함께 큰 폭의 하락세를 나타냈다.
주요 반도체 관련 종목으로 구성된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도 6.81% 하락하고 시가총액이 4천960억달러나 증발했다.
미국이 대중국 반도체 수출 제한을 검토한다는 소식에 반도체주와 인공지능(AI) 관련주 등이 직격탄을 맞았다.
미 정부는 중국에 첨단 반도체 기술 접근을 계속 허용할 경우 가장 엄격한 무역 제한 조치를 사용할 수 있다고 동맹들에 경고했다.
이에 더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인터뷰에서 밝힌 반도체 산업 관련 의견이 투자심리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는 대만이 미 반도체 사업의 100%를 가져갔다며, 미국에 방위비를 지불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는 트럼프 집권 시 반도체 동맹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키웠다. 그 여파로 대만 TSMC 주가가 8% 떨어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 발언이 투자자들을 흔들며 반도체 주식이 폭락했다고 말했다.
AJ벨의 투자 애널리스트 댄 코츠워스는 FT에 “투자자들은 기술주 관련 좋은 소식이 계속 나오는 데 익숙해져 있어서 조금만 안 좋은 소식이 나오면 공황 상태가 된다”고 전했다.
바클리 글로벌 리서치 의장인 아자이 라자드히야크샤는 “1년 반 동안 기술주가 크게 올랐고, 이제 사람들은 뉴스를 보며 이익 실현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어드의 기술 전략가인 테드 모톤슨은 “트럼프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트럼프의 선거 구호)’에 맞는 산업들이 오르는 순환매가 이미 나타났고, 이번 기술주 폭락은 그 연장선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미 달러화 가치는 약 4개월 만의 최저치로 하락했다.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화 가치를 반영하는 달러인덱스는 전 장보다 0.467포인트(0.448%) 하락한 103.756을 기록했다. 달러인덱스는 한때 103.649까지 밀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달러가 너무 강하다며 엔화와 위안화 약세를 강력하게 비판한 것이 한 요인이다. 그는 “우리는 큰 통화 문제를 안고 있다”고 강조했다.
엔/달러 환율은 전날 1.5% 하락하며 156엔 대로 내려갔고 이날은 지난달 7일 이후 처음으로 155엔대가 됐다. 환율 하락은 통화가치 상승을 뜻한다.
트럼프 인터뷰에 더해서 일본 고노 다로 디지털상이 이날 보도된 블룸버그 통신 인터뷰에서 “엔화가 너무 저렴하다”며 중앙은행에 금리 인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발언한 것이 영향을 줬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8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가 2.59% 뛰며 82.85달러로 거래를 마친 데는 재고 감소와 함께 달러화 약세 여파도 있는 것으로 풀이됐다.
다만 이날 채권시장은 트럼프 정책으로 인한 장기적 인플레이션 강화 우려 보다는 당장 연준의 움직임에 더 주목하는 분위기였다.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뉴욕 채권시장에서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오후 3시(동부시간) 기준 연 4.146%로 전 거래일 같은 시간 대비 0.02%포인트 내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11월 대선 전에 기준금리 인하를 반대한다고 밝혔지만, 연준 인사들은 금리인하를 시사하는 발언을 잇달아 내놨다.
◇ 금융·대형 정유사에 ‘트럼프 트레이드’…인플레이션 심화 우려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2기에 규제 완화와 감세로 금융과 대형 정유사와 같이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업종이 유리할 것이란 아이디어가 눈에 띈다고 말했다.
버먼의 펀드매니저 스티브 아이스먼은 트럼프 당선시 은행 자본 기준이 덜 엄격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단기적 거래일 뿐이고 장기 투자 전략은 아니라고 그는 강조했다.
울프리서치의 토빈 마커스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트럼프 당선 직후엔 금융과 전통적 에너지 업체들이 좋을 것 같지만, 에너지에는 장기적으론 의문이 있다”며 “불확실성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장단기 국채금리 역전 해소, 민간 교도소와 총기 관련주 강세 등의 기대도 있다.
트럼프와 부통령 후보 J.D. 밴스를 열렬히 지지하는 피터 틸이 공동 창립한 AI 소프트웨어 업체 팔란티어,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 트루스 소셜의 모회사 DJT, 반경쟁적 대규모 인수·합병(M&A) 등도 주목받는다.
트럼프는 에너지 비용을 낮춰 물가를 잡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관해 케이티 마틴은 FT 칼럼에서 감세, 관세 인상 등의 트럼프 2기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것이란 점은 투자자들 사이에 가장 큰 합의점이라고 지적했다.
매크로폴리시 퍼스펙티브즈 LLC 설립자인 줄리아 코로나도 전 연준 이코노미스트는 “겉으로 드러난 정책들로 보면 상당한 인플레이션 폭발이 있을 것”이라고 블룸버그통신에 말했다.
이에 따라 장기 국채 금리가 상승할 것이라고 보고 대응하는 것도 ‘트럼프 트레이드'(트럼프 수혜 자산에 투자하는 것)라고 부른다.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가 ‘2017년 감세’를 2025년에 만료시키지 않고 연장하는 한편, 법인세율을 21%에서 15%로 낮추려고 하는데 미 정부는 이에 필요한 자금이 없으므로 빚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마켓워치 칼럼니스트 브렛 아렌즈는 기고문에서 의회예산국은 2017년 감세가 종료될 경우 국가부채가 10년간 70% 늘어나 48조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으며, 이에 따라 국채 발행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더블라인 캐피털의 부 최고투자책임자(CIO) 제프리 셔먼도 “시장에 가장 나쁜 결과는 공화당이 백악관과 의회를 모두 장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중국 관세 인상과 달러 약세 등도 최종 소비자 가격 급등으로 이어진다. 역시 인플레이션 심화→재정적자 증가→국채금리 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가 대중국 관세 60∼100%에 더해 모든 나라에 10% 관세를 부과한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다만 트럼프는 인터뷰에서는 명확한 숫자를 언급하지 않았다.
달러화 약세는 밴스 후보가 더 노골적으로 강조하는 내용이다.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면 물가 상승 압박이 커진다.
케이티 마틴은 FT 기고문에서 “트럼프 2기 영향은 미국 외에서 더 극명히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며 중국은 더욱 투자하기 어려운 곳이 될 것이고 유럽 선호도도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피델리티 인터내셔널의 글로벌 매크로 책임자 살만 아메드는 연준의 독립성을 훼손한다면 “채권 자경단(채권값 하락이 예상되면 대량 매도로 대응하는 투자자들)이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merci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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