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퍼블릭(Public) 블록체인과 같이 탈중앙화 네트워크 운영에는 경제적 인센티브가 필수 요소다. 인센티브는 네트워크 참여자들의 자원 제공과 거래를 유도해 시스템 보안을 유지한다. 이를 통해 네트워크는 자율 운영되며 중앙화된 관리자가 없어도 안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다.
경제 보상은 참여자의 지속된 기여를 만드는 동기이며 이는 블록체인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보상이 부정적 외부 효과를 일으킬 수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MEV(Maximal Extractable Value)다. MEV는 네트워크의 안정된 운영을 위해 설계됐지만 혼잡도를 높이고 수수료를 증가시켜 참여자들의 비용을 높이는 원인이 됐다. 다시 말해 MEV는 인센티브로 작동하는 시스템의 보이지 않는 세금인 것이다. MEV가 무엇이며 어떻게 보완할 수 있는지 살펴본다.
[블록미디어 오수환 기자] 미 연방 검찰은 지난 3월 MIT 출신 형제인 안톤과 제임스를 사기 및 자금 세탁 혐의로 기소했다. 이들 형제는 이더리움(ETH) 네트워크의 거래 검증 및 추가 프로토콜을 교묘하게 조작해 12초 만에 약 2500만달러 상당의 암호화폐를 탈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안톤과 제임스는 이더리움 네트워크의 검증자(Validator)로 활동하며 특정 블록 제안자로 선택될 때마다 미끼 거래를 제시했다. 이를 통해 프런트 러닝 봇들이 미끼를 물도록 유도한 후, 블록의 내용을 변조해 미끼 거래를 자신들이 보유한 암호화폐 판매 거래로 바꿔치기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취했다. 결과적으로 높은 가격에 암호화폐를 판매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검찰은 이 사건을 블록체인의 무결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중대한 범죄로 판단했다.
컴퓨터 과학과 수학을 전공한 형제는 블록체인의 구조적 특성과 취약점을 활용했다. 블록체인은 모든 트랜잭션이 네트워크에 공개되며 이는 특정 집단 또는 개인이 아닌 전체 네트워크 참여자들이 트랜잭션을 확인하고 검증할 수 있다. 투명성은 네트워크의 보안과 신뢰성을 높이지만, 동시에 악의적 행위자들이 실시간으로 거래 정보를 모니터링하고 이를 악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특히, 트랜잭션이 블록에 포함되기 전 상태인 멤풀(mempool)에서 트랜잭션 내용을 볼 수 있어 프런트 러닝과 같은 공격이 가능해진다. 멤풀은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아직 블록에 포함되지 않은 대기 중인 거래들이 저장되는 공간으로 검증자들은 이 멤풀에서 트랜잭션을 선택해 블록에 포함시킨다.
▲ 프런트 러닝 (Front Running): 검증자가 네트워크에 제출된 트랜잭션을 미리 감지하고, 그 거래가 실행되기 전에 자신이 먼저 동일하거나 반대되는 트랜잭션을 실행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예를 들어, 큰 매수 주문이 제출된 것을 미리 알고 검증자가 그 앞에 동일한 매수 주문을 넣어 가격이 오른 후 이를 매도해 이익을 취하는 식이다.
전통 금융시장은 주문이 접수된 순서에 따라 거래 우선순위가 결정된다. 반면 암호화폐는 전통 금융과 다르게 순차적으로 처리되지 않고 블록 단위로 처리된다. 이더리움의 경우 약 12초 마다 새로운 블록이 생성된다.
이더리움은 거래 수수료인 가스(Gas) 외에 추가적인 우선 수수료(priority fee) 기능을 통해 더 빠르게 트랜잭션을 처리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는 네트워크 혼잡도를 줄이고 검증자의 인센티브를 강화하기 위함이다. 검증자들은 멤풀에서 더 높은 수수료를 지불한 트랜잭션을 우선적으로 처리한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MEV(Maximal Extractable Value)라고 한다. 안톤과 제임스는 이 MEV 구조를 악용해 트랜잭션 순서를 변조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한 것이다.
# MEV의 부정적 외부효과
MIT 출신 형제는 MEV 구조를 악용해 범죄를 저질렀지만, 범죄가 아니더라도 MEV 구조는 부정적 외부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MEV는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트랜잭션의 순서를 조작해 경제적 이익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이더리움은 지난 2020년을 기점으로 네트워크 사용량이 증가하며 혼잡도가 높아지고 수수료가 상승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로그래밍 봇들이 MEV에 활용되면서 네트워크의 혼잡을 더욱 가중시켰다.
봇들은 멤풀에서 차익 거래에 활용될 수 있는 트랜잭션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트랜잭션을 배치하면서 네트워크에 큰 부하를 일으키며 네트워크 성능 저하를 가속화했다.
만약 특정 사용자가 자신의 데이터가 먼저 전송되도록 더 많은 돈을 지불한다면 네트워크는 그 사용자의 데이터를 먼저 처리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네트워크의 다른 사용자들은 대기 시간이 길어지거나 네트워크가 혼잡해지는 등의 문제를 겪게 된다. MEV도 이와 유사하게, 특정 봇이나 채굴자가 자신의 트랜잭션을 우선 처리하도록 하는 과정에서 네트워크에 부담을 가중시킨다.
위에서 설명한 프런트 러닝 외에도 MEV를 활용해 다음과 같은 방식이 활용된다.
▲백 러닝 (Back Running): 특정 트랜잭션의 결과를 보고 그 뒤에 이익이 될 수 있는 거래를 배치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대규모 매도가 예상될 때 이를 미리 알고 해당 자산을 매도해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 샌드위치 공격 (Sandwiching): 특정 거래를 앞뒤로 자신의 거래를 끼워 넣어 시세 차익을 노리는 방식이다. 어떤 사용자가 큰 매수 주문을 넣을 때, 그 앞뒤로 채굴자가 매수와 매도 주문을 넣어 이익을 보는 경우다.
이더리움의 트랜잭션은 약 12초 간격으로 한 번씩 확인된다. 이 시간 동안 봇은 멤풀에서 대기 중인 트랜잭션을 분석하고 MEV를 극대화하기 위한 최적의 트랜잭션 배치를 수행한다. 하지만 봇의 활발한 활동은 시장의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다. 코인텔레그레프에 따르면 솔라나(SOL) 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샌드위치 봇인 ‘arsc’는 두 달간 MEV 공격을 통해 사용자들로부터 약 3000만달러를 탈취했다. arsc는 흔적을 최대한 숨기기 위해 탈취 자산을 콜드 월렛으로 전송했다. 콜드 월렛은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아 추적이 어렵고, 이는 봇의 활동을 감추는 데 도움이 된다.
# 규제만이 답일까?
MEV를 악용한 사례가 지속되자 관련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유럽증권시장감독청(ESMA)은 암호자산시장에 관한 법률(MiCA)에 따른 가이드라인에서 MEV를 불법 시장 남용의 한 형태로 간주했다. ESMA는 “MEV를 통해 검증자는 거래를 임의로 재배치해 특정 거래를 앞질러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블록체인은 투명하지만 블록 생성자는 일반 사용자보다 트랜잭션 순서를 정하는 과정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고 이로 인한 정보 비대칭이 발생한다고 본 것이다.
부정적 영향에도 MEV는 블록 생성자에게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네트워크 안정성에 기여한다. 비트코인·이더리움 등과 같이 탈중앙화된 블록체인은 사용자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하지만 아무런 대가 없이 네트워크에 참여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결국, 퍼블릭(Public) 블록체인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는 인센티브 메커니즘을 필수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비트코인(BTC)은 작업증명(PoW)을 통해 복잡한 수학 문제를 해결해 새로운 블록을 생성한다. 블록을 생성한 채굴자는 보상으로 비트코인을 받는다. 이 보상이 컴퓨팅 자원을 제공하는 동기다. 더 머지(The Merge) 이후 작업증명에서 지분증명(PoS)로 전환된 이더리움은 채굴자가 아닌 검증자들이 블록을 생성하고 검증한다. 검증에 참여하려면 최소 32이더를 예치(Staking) 해야 한다. 블록 생성과 검증에 성공한 검증자들은 예치한 이더의 양과 검증 활동에 따라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탈중앙화 블록체인은 참여자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해 네트워크를 유지한다. MEV 또한 블록 생성자의 네트워크 참여를 높이는 하나의 장치다. 이처럼 MEV는 네트워크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선과 악이라는 절대적 기준을 두고 나쁘다고 판단할 수 없다.
이에 인센티브를 극대화하면서 MEV 문제를 최소화하는 여러 방안이 강구되고 있다.
▲ MEV 플래시봇(Flashbot)
플래시봇은 이더리움 네트워크에서 MEV를 최대화하고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개발된 프로젝트다. 플래시봇은 경매 방식을 도입해 MEV 기회를 최대한 공정하게 배분하고, 블록 생성자가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게 한다.
•플래시봇 작동 원리
거래 탐색자(Searchers)가 멤풀에서 대기 중인 트랜잭션을 모니터링한다. 이들은 수익성이 높은 트랜잭션을 식별하고, 이를 최적의 조합으로 묶어 번들(Bundle)을 생성한 뒤 릴레이(Relays)에 제출한다.
릴레이는 여러 번들을 검토한 후, 가장 수익성이 높은 번들을 선택한다. 이 과정은 퍼블릭 멤풀이 아닌 비공개 멤풀을 통해 이뤄지며 채굴자만이 트랜잭션 내용을 알 수 있다. 채굴자는 비공개 트랜잭션에서 고정된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수수료 경쟁을 통해 더 많은 수익을 얻기 위한 동기 부여가 줄어든다. 다양한 트랜잭션 중 수익성이 높은 것을 선택할 수 있기에 블록 생성 과정을 최적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채굴자가 릴레이로부터 세 가지 트랜잭션 번들을 수신한 상황을 가정해보자. 첫 번째 번들 A는 총수수료 1.5이더와 예상 MEV 수익 0.5이더를 제공해 채굴자는 2이더를 얻을 수 있다. 두 번째 번들 B는 총 수수료 1이더와 예상 MEV 수익 1.5 이더를 제공해 총 예상 수익이 2.5 이더다. 세 번째 번들 C는 총 수수료 2.0 이더 예상 MEV 수익 0.2 이더를 제공해 총 예상 수익이 2.2 이더다.
채굴자는 해당 정보를 바탕으로 번들을 평가한다. 총 예상 수익이 가장 높은 번들 B를 선택해 블록에 포함시킨다. 이를 통해 채굴자는 수익을 극대화하고 블록 생성 과정을 최적화할 수 있다.
▲ MEV-부스트(Boost)
이더리움이 지분증명으로 전환된 이후 플래시봇은 새로운 시스템인 MEV 부스트를 도입했다. MEV 부스트는 블록 생성과 검증의 역할을 검증자(Proposer)와 빌더(Builder)로 각각 구분했다. 이는 지분증명 환경에서 단일 참여자가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가지는 것을 방지해 시스템 탈중앙화를 유지할 수 있다.
MEV 부스트는 기존의 MEV 방식과 비교해 몇 가지 중요한 개선점을 제공한다. 빌더는 샌드위치 공격, 프런트 러닝 등 다양한 MEV 기회를 포착해 최적화된 블록을 생성하고 이를 검증자에게 제안한다. 이 과정에서 MEV 부스트는 기존 방식과 다음과 같은 차이점을 보인다.
•투명성 및 공정성 강화
기존 MEV 추출 방식은 블록 생성자가 독점적으로 트랜잭션 순서를 조작해 MEV를 추출했다. 이는 트랜잭션의 비 투명성을 초래해 불공정 거래를 유도했다. MEV 부스트는 빌더와 검증자 간 투명한 경매 시스템을 도입해 MEV 추출 과정이 공개적으로 이뤄지게 했다. 이를 통해 특정 빌더가 MEV를 독점하는 것을 방지하고, 전체 네트워크의 공정성을 높였다.
•효율성 및 최적화 향상
MEV 부스트는 빌더가 최적화된 트랜잭션 번들을 생성하도록 돕는다. 이는 트랜잭션 순서를 최적화해 슬리피지(slippage)를 줄이고, 사용자들에게 더 나은 거래 결과를 제공한다. 또한, 최적화된 블록 생성과 높은 보상을 위한 경쟁이 네트워크의 효율성을 높이고, 빌더와 검증자가 MEV 추출을 통해 얻은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중앙화 방지
기존 MEV 추출 방식은 블록 생성자가 MEV를 독점해 중앙화 위험이 존재했다. MEV 부스트는 다양한 블록 빌더가 경쟁하는 환경을 조성해 비교적 특정 소수의 블록 빌더가 MEV를 독점하는 것을 예방한다.
위 그래프는 머지 이후 지속적으로 많은 양의 MEV 기회가 부스트를 통해 분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MEV 부스트가 이더리움 네트워크에서 영향력이 계속 커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 탈중앙화 거래소 구조 변경
이더리움의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은 지난 5월 블로그를 통해 MEV를 보이지 않는 세금이라고 밝혔다. 예를 들어 특정 시점에 중앙화 거래소와 탈중앙화 거래소에서 이더의 가격이 3000달러로 동일하다고 가정해보자. 11초 후, 중앙화 거래소에서 이더의 가격이 3005달러로 상승했지만, 이더리움 네트워크는 아직 다음 블록을 생성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때 MEV를 사용하면 블록 생성자는 유니스왑에서 더 저렴하게 이더를 구매하고, 중앙화 거래소에서 더 높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MEV는 검증자들에게 큰 수익을 창출하지만, 네트워크 혼잡을 유발하고 네트워크에 가스 요금을 상승시킨다. 네트워크 이용자에게는 이러한 가스 요금 상승이 네트워크 안정성를 위한 일종의 세금인 것이다.
부테린은 MEV 최소화를 위해 오프체인 활용, 오더북 도입 등 탈중앙화 거래소(DEX) 구조 변경을 제시했다.
•상태 채널(State Channels): 오프체인 거래를 통해 비공개로 트랜잭션을 처리함으로써 블록체인에 기록되는 트랜잭션 수를 줄이고 MEV 추출 기회를 최소화한다. 거래는 주로 채널 내에서 이루어지며, 최종 결과만 블록체인에 기록한다.
•오더북 기반 DEX: 기존 AMM(Automated Market Maker) 구조는 트랜잭션이 즉시 체결되고 가격 변동이 실시간으로 반영되기 때문에, 블록 생성자가 가격 차이를 이용한 MEV가 용이한 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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