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블록미디어 James Jung 특파원] 머리가 쭈뼛 서면서 눈앞이 아득해졌습니다. 분명히 서울에서 예약한 숙소 주소가 맞는데, 아니라는 거에요.
내슈빌에서 열린 비트코인 2024 컨퍼런스 취재를 마치고, 일요일 오전 뉴욕으로 왔습니다.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집으로 향했습니다.
시차적응이 덜 된 상태에서 전날 늦게까지 기사를 써서 약간 몽롱한 상태였습니다. JFK 공항은 또 어찌나 붐비는지. 우버 한 대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숙소에 가서 샤워하고 회사에 뉴욕 도착과 향후 일정을 알려야겠다는 생각 뿐이었죠. 그런데 그 집이 아니라는 거에요. 에어비앤비 채팅으로 집 주인이 가이드 디렉션을 보낸 것을 나중에 본 거에요.
우버를 잠시 대기 시켜 놓고 새로운 주소지를 확인한 후 다시 이동해야 했습니다. 어라, 이상하다. 원래 예약 주소는 에어비앤비가 보낸 메일에서 확인한 것인데, 집 주인이 채팅으로 새로운 주소를 줬다? 뉴욕 같은 대도시에는 여러 채의 집을 에어비앤비를 통해 임대하는 호스트(집 주인)가 많이 있습니다.
집 주인 전화번호를 찾아 직접 전화를 걸었습니다. 왜 주소가 다르죠? 어, 그거 에어비앤비가 실수한 거야. 내가 준 가이드를 잘 읽어봐. 그래?
의심이 더 강해졌습니다. 좋아. 그러면 에어비앤비에 컴플레인할게. 에어비앤비 실수로 나는 우버 비용을 더 냈으니.
에어비앤비에 항의를 하겠다는 말을 하자, 집 주인이 버럭 화를 내는 겁니다. 네가 가이드를 잘 못 읽은 걸, 왜 에어비앤비에 항의해!
저는 직감적으로 알았습니다. 집 주인이 이상한 짓을 한 것을. 그래, 너는 나에게 가이드를 잘 했어. 아무튼 에어비앤비가 실수한 거니까, 너는 상관 마. 에어비앤비에 따질게.
집 주인 언성이 점점 올라갔고, 저도 같이 언성이 올라갔죠. 마침내 집 주인은 예약을 취소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래? 그럼 이 모든 상황을 다 에어비앤비에 얘기하고 항의할게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바로 에어비앤비 헬프 센터에 전화를 했습니다. 에어비앤비는 집 주인이 직접 변경된 주소지를 전달하는 식의 가이드를 주는 것은 위반이라고 하면서 알아보겠다고 했습니다.
30분 후에 에어비앤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더군요.
“에어비앤비의 확인 메일은 정확했다. 집 주인이 그 사이에 해당 집을 다른 경로로 또 다른 사람에게 임대를 준 것 같다. 그리고 집 주인은 너를 엉뚱한 자신의 다른 집으로 안내한 것이다.
에어비앤비는 이 문제에 대해 책임을 느낀다. 쿠폰을 지급하겠다. 집 주인에 대해서는 강력한 패널티를 가할 것이다. 네가 지금 새로운 숙소를 찾는다면 에어비앤비가 협조해주겠다.”
저는 뉴욕에 도착해서 거의 3 시간 동안 사기꾼 집 주인과 에어비앤비 헬프 데스크와 새로운 숙소의 집 주인과 ‘즐거운 시간’ 을 보내야 했습니다.
전화, 메일, 메신저 채팅이 총동원됐습니다. 이 집, 저 집을 이동하면서 우버를 연달아 불러야 했구요.
마침내 여장을 풀 숙소에 도착했을 때 “그래, 이게 뉴욕이지” 하며 빙긋 웃을 수 있었습니다.
첫째, 사기꾼 집 주인은 전형적인 이중지불 행태를 보인 겁니다. 집을 저에게 팔고(임대), 곧 바로 다른 사람에게 팔았습니다. 그리고 저를 그보다 못한 다른 집으로 이동시킨 거죠. 나중에 그 사기꾼 집 주인에 대한 리뷰를 보니, ‘주소를 정확히 알려줘’ 라는 댓글이 있더군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던 것이죠. 저는 댓글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신뢰 중간자’ 인 에어비앤비를 끌어들였습니다.
둘째, 뉴욕과 같은 험난한 욕망의 세계에서는 ‘강력한 중간자’ 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사기꾼은 제가 에어비앤비에게 컴플레인하겠다는 말에 발끈 했죠. 그 순간 저는 알아차렸습니다. 얘가 에어비앤비에 이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운 것이구나.
이중지불을 방지하는 전통적인 시스템은 정부, 중앙은행, 그리고 막강한 플랫폼입니다. 욕망에 사로잡힌 사기꾼을 응징하는 겁니다. 이중지불이 일어나지 않도록 중간자가 있는데도, 이 지능적인 사기꾼은 에어비앤비 채팅을 이용해 임의로 거짓 가이드를 전달하는 수법을 쓴 겁니다.
영문도 모르고 있던 피해자는 혼란스러웠지만, 댓글을 다는 소극적인 방법으로 저항했죠. 저도 그냥 이 집에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숙소가 너무 지저분하고, 방충망에도 구멍이 난 것을 보고 정나미가 떨어졌습니다. 집 주인이 발끈하자, 강력한 응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에어비앤비가 상황을 해결하도록 했습니다.
셋째, 욕망을 제어하는 더 좋은 방법은 뭘까요? 이중지불이 만연한 것은 그렇게 했을 때 얻는 이익이 패널티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 사기꾼은 이름을 바꿔 에어비앤비에 다시 호스트(집 주인)로 등록을 할 겁니다. 그리고 또 다른 피해자에게 비슷한 사기를 치겠죠.
모든 숙소를 블록체인에 등재하고, 임대 트랜잭션도 블록체인에 등재한다면? 누가 누구와 언제 얼마에 숙소 임대 계약을 했는지 블록체인에 기록함으로써 이중지불과 같은 사기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쓴 비트코인 백서 중의 한 대목입니다.
“우리는 개인 대 개인(P2P) 네트워크를 사용해 이중지불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제안한다.(중략)
(기존 금융 시스템에서는) 일정 비율로 사기가 일어나는 것을 불가피하다고 여긴다. 물리적 통화(currency)를 사용하는 대면 거래 외에, 신뢰 받는 당사자 없이 전자적 통신 채널로 이런 비용과 결제 불확실성을 피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신뢰 대신 암호학적 증명(cryptographic proof)에 기반해, 거래 의사가 있는 두 당사자가 신뢰 받는 제3자를 찾지 않고 서로 직접 거래하게 하는 전자 결제 시스템이다.
전산적으로(computationally) 철회 불가능한 거래가 사기로부터 판매자를 보호하고, 통상적인 제3자 예치(escrow) 방법이 구매자를 보호하기 위해 쉽게 구현될 수 있다.”
에어비엔비는 이 건을 해결하느라 제가 낸 수수료보다 더 큰 돈을 썼습니다. 쿠폰을 지급했고, 헬프 데스크 직원은 거의 3 시간 동안 다른 일을 못했죠. 중간자 시스템은 일정 비율로 사기가 일어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토시가 정확하게 같은 말을 했죠.
그러나 에어비앤비는 중간자로서 더 큰 것을 얻고 있습니다. 엄청난 수수료죠. 그리고 강력한 브랜드 이미지. 뉴욕과 같은 욕망의 도시를 여행할 때 ‘그나마 신뢰할 수 있는’ 숙박 예약 시스템이 뭐냐고 묻는다면?
이 기묘한 성공은 다른 무엇도 아닌 원초적 욕망이 만들어 준 겁니다. 뉴욕은 역시 뉴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