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뉴스) 이지헌 특파원 = 미국 상업용 부동산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온 한국 금융회사들이 상업용 부동산 시장 침체 지속에 타격을 입고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30일(현지시간) 사안에 정통한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이지스자산운용은 뉴욕 타임스스퀘어 한복판에 있는 브로드웨이 1551번지 건물과 관련해 후순위 대출을 해줬다가 최근 관련 대출자산을 헐값에 처분했다.
이지스운용 측은 블룸버그에 해당 건물의 투자와 관련해 회수한 자금이 원금의 30%에 못 미친다고 밝혔다.
메리츠대체투자운용은 로스앤젤레스 중심부의 고층 건물 가스컴퍼니타워와 관련해 변제 순서가 선순위 대출보다 낮은 메자닌(Mezzanine) 대출자로 참여했다가 건물주가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진 이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현대인베스트먼트운용도 뉴욕 맨해튼의 고층 사무실 건물인 ‘245 파크애비뉴’ 빌딩의 인수 과정에 메자닌 대출자로 참여했다가 올해 초 해당 대출자산을 원금의 절반 가격에 처분했다고 블룸버그는 소개했다.
맨해튼 미드타운 핵심 오피스지구에 위치한 이 건물은 미국의 대형 부동산 투자회사 SL 그린 리얼티와 보네이도 리얼티 트러스트가 매입을 주도했는데, 현대인베스트먼트가 낮은 변제 순위로 대출에 참여했다가 ‘원금 반토막’ 손실을 본 것이다.
국내 금융사들의 미국 부동산 메자닌 투자를 자문해줬던 로펌 밀뱅크의 스펜서 박 변호사는 “한국 회사들은 시장 침체 시나리오에 충분히 대비하지 않은 채 이들 (메자닌) 대출을 해줬다”며 “시장 상황이 나빠지자 혼비백산하면서 투자금을 날리거나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금융회사들의 해외 부동산 투자는 ‘대체 투자’라는 명목으로 증권사, 보험사, 자산운용사 등 비은행금융회사를 중심으로 2016년 이후 빠르게 증가했다.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시장 호황으로 자산 가격이 이미 크게 오른 시점이었다.
한국 금융사들이 미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호황장에 올라 타겠다며 한꺼번에 몰려들었고, 유사한 중·후순위 대출 기회를 놓고 서로 경쟁을 벌여왔다고 블룸버그는 소식통들을 인용해 전했다.
경쟁 격화로 일부 사업에서는 한국 금융회사가 시장에서 통용되는 금리 대비 2%포인트 낮은 금리로 대출해준 사례도 있었다고 블룸버그는 소개했다.
황금알을 기대하고 앞다퉈 뛰어든 미국 부동산 대체 투자는 이제 칼날이 돼서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금융권의 해외 부동산 대체투자 잔액은 작년 말 기준 57조6천억원으로, 이 가운데 북미가 34조8천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금융사가 투자한 단일 사업장(부동산) 35조1천억원 중 2조4천100억원(6.85%) 규모에서 기한이익상실(EOD) 사유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기한이익상실은 이자·원금 미지급 등 사유로 인해 채권자가 대출을 만기 전에 회수할 수 있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문제는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회복될 기미가 여전히 보이지 않은 채 만기가 도래하는 대출이 늘어나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팬데믹 이후에도 재택근무가 일반화되면서 사무실 수요가 이전보다 급감한 데다가 고금리 장기화로 이자 부담이 많이 늘어난 게 침체의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시장 침체가 지속되면서 지난 2분기 기준 미국의 부동산 자산 압류 규모는 205억5천만 달러(약 28조4천억원)로 9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상승한 상태다.
블룸버그는 한국 투자자들이 보유한 대출 자산들의 상황이 향후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미 금융권 관계자들을 인용해 전했다.
시장정보업체 트렙에 따르면 올해부터 2027년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상업용 부동산 관련 대출 규모는 총 2조2천억 달러(약 3천조원)에 달한다.
투자회사 아레나 인베스터의 댄 즈원 최고경영자(CEO)는 “은행들은 문제가 적은 자산들을 먼저 매각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자산을 매각하기 전까지는 손실이 어느 정도일지 구체화하기 어렵다”며 “즉, 우리는 현재 부동산과 관련해 업계가 느끼는 고통의 초입 단계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p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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