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내 폭넓은 지역·업종서 임금인상 움직임 확산
엔화 약세로 수입품 가격 급등시 개인 소비 침체 우려
日정치권, 추가 인상 기대감 잇단 표명도 작동한 듯
[서울=뉴시스 박준호 기자]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31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정책금리를 0.25% 정도로 인상하는 추가 금리 인상을 결정했다.
일본은행은 물가가 은행의 전망에 따라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보고 올해 3월에 금리 인상을 단행한 바 있다. 당시 정책 목표로 하는 단기 시장금리에 대해 0~0.1% 정도로 움직이도록 촉구한다고 했는데, 4개월 만에 이를 0.25%로 인상한 것이다.
금리 인상 직후 또 금리를 인상하는 ‘추가 금리 인상’은 후쿠이 도시히코 총재 시절인 2007년 2월 이후 약 14년 만이다. 이번 금리 인상으로 일본의 금리는 리먼브라더스 사태 직후인 2008년 12월(0.3%포인트 안팎) 수준으로 돌아가게 됐다.
지지통신은 바뀐 금리는 “8월1일부터 적용한다”며 “금리 인상은 3월 마이너스 금리 정책 해제에 이어 올해 두 번째”라고 전했다.
◆日銀, 임금인상 확산 등 물가 목표치 2% 접근 판단
왜 이 타이밍에 추가 금리인상을 단행했는지를 놓고 일본 내에서는 물가가 일본은행의 전망에 따라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데다 엔화 약세가 물가를 더 끌어올릴 위험도 있다는 등의 이유로 올해 3월 마이너스 금리 해제에 이은 금리 인상을 단행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사히신문은 “금년 춘투에서는 중소기업을 포함해 높은 수준의 임금 인상이 진행됐고 사측이 일부 부담을 상쇄하기 위해 판매 가격을 올렸다. 일본은행은 임금 상승을 수반하는 형태로 물가상승률 2%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우에다 가즈오 총재는 목표 달성의 확실도(자신감의 정도)가 높아지는 것을 추가 금리 인상의 조건으로서 삼아왔다. 또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엔화 약세도 고려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올해 춘투 평균 임금 인상률은 일본 최대 노조인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렌고)의 집계에서 33년 만에 5%를 넘는 높은 수준을 보였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2024년 춘계 노사협상 최종 집계 결과에서 기본급 인상과 정기승급분을 합한 평균 임금인상률은 전년 대비 1.52%포인트 오른 5.1%였다.
일본은행은 이 같은 임금 상승분을 판매가격에 반영하는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어 서비스 가격의 완만한 상승이 계속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고 NHK가 전했다.
NHK에 따르면 이번 추가 금리 인상은 일본은행 정책위원 9명 중 찬성 7, 반대 2로 결정됐다.
임금 상승 침투에 따른 경제 상황 개선을 데이터를 기반으로 보다 신중하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게 반대표를 던진 심의위원들의 주장이다.
그럼에도 일본은행이 추가 금리인상을 결단한 배경을 NHK는 “일본은행이 이번에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선 배경에는 경제와 물가가 전망에 맞는 형태로 움직이면서 2% 물가 목표에 근접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우에다 총재 “빨리 조정하는 게 나중에 편해지는 것”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이날 기지회견에서 7월에 금리 인상을 단행한 이유에 대해 “4월 이후의 데이터가 어느 정도 정리되어 분석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면서 “조금씩이라도 빨리 조정하는 것이 나중에 편해지는 것”이라는 점도 이유로 들었다.
우에다 총재는 “실질 금리가 낮은 상황에서 약간의 조정이기 때문에, 경기에 큰 마이너스의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라며 “임금이나 물가가 상승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나 물가가 이것(금리인상)을 계기로 반드시 감속(둔화)한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개인소비가 약세인 가운데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선 이유에 대해서는 “소비가 굉장히 강한 것은 아니지만 일본은행의 소비에 관한 지수를 봐도 바닥이 단단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며 이번 추가 금리인상 후에도 “실질금리는 큰 폭의 마이너스가 이어지고 완화적인 금융환경은 유지된다. 이번 전망리포트에서 제시한 경제·물가 전망이 실현된다면 그에 따라 계속 정책금리를 올리고 금융완화 정도를 조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미쓰비시UFJ은행 관계자는 추가 금리인상 결정 배경에 관해 “일본은행은 전망대로 경제·물가 정세가 움직이면, 추가 금리 인상을 해 나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지난 6월 회의 후 회견에서 우에다 총재는 전망에 따라서 움직이고 있다고 얘기했다”며 “그 후 경제 정세를 보면 전망에서 어긋나는 요소는 없기 때문에, 추가 금리 인상을 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판단했다고 생각한다”고 아사히신문에 말했다.
◆日銀총재는 부인해도…역사적 엔저도 금리 인상에 영향 미친 듯
4개월 만의 추가 금리 인상 판단에는 역사적인 엔화 약세도 작용했다는 지적이 일본에서 나온다.
우에다 총재는 엔화 약세로 인해 물가 전망의 상향 위험이 높아질 경우 금리 인상의 이유가 된다고 말했지만,
역사적인 엔저가 계속되면서 수입 물가는 다시 상승하고 있어, 일본은행은 이를 주시하고 있었다.
NHK는 “물가가 예상 이상으로 상승하면 침체가 계속되는 개인 소비를 더 끌어내릴 수 있기 때문”이라며 엔저가 금리 인상의 배경이라고 진단했다.
지속적, 안정적으로 2%의 물가 목표를 실현하려면 추가적인 금리 인상을 실시할 필요가 있었다는 게 일본은행의 판단이라는 분석이다.
우에다 총재는 ‘환율이 이번 금리 인상의 가장 큰 판단 요인이었느냐’는 질문에 “반드시 가장 큰 이유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엔저의 영향에 대해서는 “엔화 약세는 소비자물가 전망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며 “물가가 (은행의) 전망을 상회할 위험이 상당히 큰 것으로 평가하고 이를 감안한 정책적 대응을 했다”고 설명했다.
향후 예상되는 미국의 금리 인하의 영향에 관해서는 “(미국의) 금리 인하는 엔고(円高)로 이어질지도 모르지만, 한편으로 미국 경제가 강하게 일본 경제에 서포트를 준다는 면도 있다”며 “종합적인 판단을 하면서 일본 정책에 대한 영향을 생각하고 싶다”고 언급했다.
◆기시다 총재 등 금리 인상 기대감 피력…일본은행, 정치권 의식했나
한편, 7월 들어 일본 정부·여당의 간부 사이에서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을 용인하는 발언이 잇따른 것이나, 그 영향으로 외환시장에서 엔화 강세가 진행된 것도 일본은행이 이번에 금리 인상을 단행한 요인의 하나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번 금융정책결정회의 전에는 유력 정치인들로부터 금리 정상화를 뒷받침하는 발언이 잇따랐다.
고노 다로 디지털상은 17일 블룸버그통신 인터뷰에서 “일본은행은 금리 인상할 필요가 있다”라고 발언했고,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19일 나가노현에서 한 강연에서 “금융 정책의 정상화는 새로운 경제 단계로의 전환을 뒷받침할 것”이라며 ‘금리 있는 세계’로의 기대감을 피력했다. 모테기 도시미쓰 자민당 간사장도 22일 ‘금융정책 정상화’를 언급하며 사실상 일본은행을 간접적으로 압박했다.
시장에서는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앞두고 나온 이러한 발언들이 “위원들의 판단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닌가”라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미일간 금리차 축소를 의식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우에다 총재는 “(정치인들의) 개별 발언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며 “정부와는 평소 긴밀히 정보를 교환하고 있으며, 경제·물가 정세에 관한 인식은 공유하고 있다”고 즉답을 피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31일 기자회견에서 “정부 차원에서 경제·금융시장을 잘 주시하면서 경제재정 운영에 만전을 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부터 검토한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 탈출 선언과 관련 그는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상황을 벗어나 다시 그런 상황으로 돌아갈 가망이 없다는 것이 디플레이션 탈출 상태”이라며 “탈출 선언 여부의 판단은 금융정책 변경 자체와 연동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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