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남주현 기자 = 내수 부진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한국은행에 기준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치권의 8월 금리 인하 의견 피력에 이어 국책연구기관은 한은이 금리 인하 타이밍을 놓쳤다는 ‘실기론’으로 압박에 나섰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한은이 집값과 환율 우려에 금리를 낮추기는 쉽지 않다는 점에서 8월 금리 동결을 전망한다. 관전 포인트는 당정의 금리 인하 요구에 한은이 보다 더 강력한 부동산 대책이 필요하다고 반박에 나설지 여부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개월 만에 0.1%포인트(p) 낮춘 2.5%로 전망했다. 반도체 경기에 대한 긍정신호에도 고금리 기조로 민간소비가 부진한 모습이 이어지자 전체 성장률을 하향 조정했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아시아개발은행(ADB), 한은 전망치와 같고 2.6%를 전망한 정부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보다는 낮다.
민간소비는 고금리 기조의 영향으로 지난 5월 전망 대비 0.3%포인트 하향한 1.5%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설비 투자는 반도체 경기 호조세가 투자로 이어지지 못함에 따라 기존 전망(2.2%)보다 크게 낮은 0.4%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성장률 하향 조정 주요 근거는 민간부채가 대규모로 누적된 상황에서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될 경우 가계 소비여력과 기업 투자여력이 제약을 받아 내수 하방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짚었다. 민간 소비 위축에 대한 원인을 고금리를 지목한 셈이다.
KDI는 한발 더 나가 한은이 금리 인하 시기를 놓쳤다는 점을 지적했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민간소비 전망의 하향은 금리 인하가 예상보다 더 지연됐기 때문”이라며 “경기와 물가 상황에 맞춰 금리가 조정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금융 안정이 강조되다 보니 늦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5월 금통위때부터 기준금리를 점진적으로 조정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냈고 이미 그 시점을 지났기 때문에 언제 기준금리를 조정하더라도 국내 경제상황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며 “8월 금통위에서 금리인하를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비슷한 주장은 이미 정부와 정치권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의 6월 “통화정책을 유연하게 가져가야 한다”는 발언을 시작으로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은 이달초 언론 인터뷰에서 “연준의 금리 인하 기정사실화에 우리가 미국보다 먼저 내릴 수 있다”고 언급했다. 윤상현 의원은 페이스북에 “내수 부진 타개를 위해 8월 선제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고 했다.
당정의 압박이 거세지자 한은 내부에서는 불편한 심기가 역력하다. KDI의 금리 인하 요구에 대해 한은의 한 관계자는 “당초 연간 전망치를 한은보다 높은 2.6%로 전망해 놓곤, 소폭 내리면서 애꿎은 한은만 물고 늘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높아지는 인하 목소리에도 시장에서는 한은이 8월 금리를 낮추기는 어렵다고 분석한다. 8월 금통위는 이달 22일 열린다. 금통위는 2022년 4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사상 처음으로 7차례 연속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한 후 2월부터 올해 7월까지 12회 연속 금리를 동결했다.
한은이 선뜻 금리를 낮추지 못하는 이유로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넉달 연속 2%대를 이어가며 금리 인하 여건이 만들어졌지만, 집값 급등세가 예사롭지 않다는 점과 환율 불안이 여전하다는 점이 꼽힌다. 일본은행의 긴축 시사로 원·달러가 안정되나 싶었지만, 1360~1380원을 오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서울 아파트 가격은 전주대비 0.26% 상승해 20주 연속 올랐다. 지난달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전월보다 7조5975억원 치솟았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기자 간담회에서 집값과 가계부채 추이를 살필 필요가 있다는 점을 언급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금리 인하의 선제 요건으로 정부의 보다 강력한 부동산 대책을 요구할 것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시장에서는 정책대출의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포함이나 3단계의 조기 시행 등이 거론된다.
7월 금통위 의사록에서는 대부분의 금통위원들이 정부의 거시건전성 대책과 집값 추이를 살펴 금리를 결정하겠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익명을 요구한 한은의 한 고위 관계자는 “현재까지 나온 정부의 부동산 공급 대책은 시원찮아 보인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지난 8일 서울 인근 지역 그린벨트 해제와 3기 신도시 등에 총 21만호를 추가 공급한다는 내용의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내놨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내수만 보면 인하가 바람직하지만, 환율과 가계부채, 집값 3종 세트가 금리 인하를 제약하고 있다”면서 “한은은 8월 선제적 인하보다 잭슨홀 미팅과 9월 연준의 금리 결정 등을 지켜본 후 금리를 움직일 것”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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