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시스]김동현 기자 =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민간소비·설비투자 침체 등 내수 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발 경기침체와 최근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되면서 하반기 우리 경제에 먹구름이 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올 상반기 고금리, 고환율, 고물가 등 이른바 3고(高) 현상이 지속되는 악조건에도 수출 회복세에 힘입어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예상치를 상회하는 등 하반기엔 경기 회복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던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향후 경제 전망도 밝지 않다.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춘데 이어 최근엔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성장률 전망치를 2.5%로 하향 조정하며 하반기 우리 경제 상황이 예상보다 더 안좋을 수 있다고 점쳤다.
일부에선 재정당국이 내수촉진과 투자활성화 대책을 서둘러 추진하고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이 다음 달 기준금리 인하를 시사한 만큼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 시기를 최대한 압당겨 불확실한 경제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4개월 연속 무역수지 흑자…하반기 반도체 수출은 장밋빛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1일 발표한 ‘7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은 1년 전보다 13.9% 증가한 574억9000만 달러(78조6520억원)를 기록했다. 수입은 1년 전과 비교해 10.5% 늘어난 538억8000만 달러(73조7078억원)로 집계됐다.
이처럼 수출과 수입이 모두 증가한 가운데 수출 증가 폭이 더 큰 탓에 무역수지는 14개월 연속 흑자 기조를 이어갔다. 지난달 36억7000만 달러(5조190억원) 흑자로 전년 동기 대비 19억 달러 개선됐다.
수출은 반도체 수출 호조세에 힙입어 지난해 10월 이후 10개월 연속 흑자를 지속했다. 지난달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50.4% 증가한 112억 달러(15조3305억원)로 9개월 연속 흑자 및 4개월 연속 50%대 증가율을 기록했다.
정부는 올 하반기에 반도체 등 IT와 자동차, 석유제품 3대 품목을 중심으로 수출 증가세가 지속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자동차 수출이 반도체를 뒷받침할 경우 2021년 6445억 달러를 넘어 7000억 달러 수출 달성도 가능하다는 예상이다.
◆수출서 내수로 이어지는 선순환 정체로 경제 회복 ‘불투명’
수출 성장세에 힘입어 하반기 우리 경제도 반등할 수 있다는 전망이 다수 나오기도 했지만 현 상황만 놓고보면 수출 확대가 내수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하반기 우리 경제 회복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KDI은 지난 5월 ‘최근 내수 부진의 요인분석’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상반기 수출 부진으로 인해 기업의 설비투자가 이뤄지지 않았고 그에 따른 여파가 소비로 번져 올 상반기 내수 부진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내수 부진은 최근에도 지속되고 있는 중이다. 수출 상승세가 근로자의 임금 및 배당 소득을 높이는 등 가계 소득 향상으로 선순환해야 내수 경기도 활성화될 수 있는데 이런 흐름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 사태를 키우고 있다.
KDI는 내수 부진을 해결하기 위해 금리 인하가 선행돼야 한다고 봤다. 올 하반기 정책금리가 인하될 경우 가계 소비와 기업의 투자 여력을 높아지면서 내년 상반기에는 내수 회복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미국發 경기 침체 및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 악재로 떠올라
최근엔 미국발 경기침체와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새로운 악재로 떠올랐다. 미국 경기침체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수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데다 중동 정세 불안은 유가와 수입물가 상승을 야기할 수 있다.
미국발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는 벌써부터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 5일 국내 증시는 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를 넘어 공포가 확산되며 코스피지수 2400선이 붕괴되는 등 큰 폭의 하락세를 보이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증시를 넘어 실물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대미 수출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한층 강할 수 있는데 당장은 아니더라도 내년부터는 수출 감소로 인해 경제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수입물가 오름세도 걱정이다. 수입물가 상승은 소비자물가 상승과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면서 국내 경제에 적잖은 악영향을 줄 수 있고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수입액이 증가하면서 경제 타격은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일부에선 ‘수입액 증가→경상수지 악화→외환 감소→환율 불안’, ‘수입물가 상승→국내 소비자물가 상승→서민경제 악화→내수침체’ 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지속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IB·KDI는 낮추고 정부는 높이고”…경제성장률 전망 엇갈려
상황이 이렇다보니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에 대한 전망도 엇갈리고 있다. 정부는 지난 달 올해 한국경제가 2.6%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며 기존 예측보다 0.4%포인트(p) 상향 조정했는데 글로벌 IB와 KDI는 경제성장률을 하향 조정했다.
정부는 인공지능(AI) 수요 확대에 따른 반도체 경기 호조세 등으로 수출 경기가 양호할 수 있는데다 하반기로 갈 수록 물가 둔화 흐름이 이어지면서 내수도 반등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반면 골드만삭스,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글로벌 IB는 지난달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을 전달 대비 0.2%p 하향 조정했다. 내수와 기업들의 투자가 줄어들면서 하반기 경제성장률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KDI도 수출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망치를 내렸다. 민간소비는 지난 5월 전망(1.8%) 대비 0.3%p 하향한 1.5%, 설비투자는 기존 전망치인 2.2% 대비 1.8%p 낮춘 0.4%로 낮춰 예상했다. 건설투자는 0.4%p 감소를 예상했다.
김지연 KDI 경제전망실 전망총괄은 “대내외 여건을 고려할 때 우리 경제는 기존 전망에 비해 수출 증가세는 확대되겠으나 내수는 미약한 수준에 그치면서 경기 회복이 다소 지연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내수 회복 위해 금리인하 등 통화공급 확대 방안 서둘러야
내수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통화공급 확대 방안을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가계 부채가 민간 소비를 짓누르고 있는 만큼 금리를 내려 시장 유동성을 높이고 기업의 이자부담을 낮추는 것이 시급하다는 진단이다.
정부는 지난 8일 발표한 주택공급 대책이 금리 인하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수요에 부응하는 충분한 주택공급과 적정 수준의 유동성 관리를 통해 집값이 안정화되면 한은이 기준금리 인하로 호응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KDI가 최근 발표한 ‘2024년 경제전망 수정’에서 “부동산 시장 불안정을 스트레스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제도 등 규제를 통해 잡고 기준금리를 내려야 내수가 되살아날 수 있다고 조언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한은이 금리 인하에 나서기 위해선 수도권 부동산 시장과 가계대출 안정이 전제조건이 될 것”이라며 “금리 인하는 10월 또는 11월로 이연될 수 있는데 한은의 금리인하 지연이 내수 경기 흐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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