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2만 달러에 육박했던 비트코인 가격이 3000 달러 중반까지 하락하면서 ‘암호화폐 거품론’이 불거지고 있다. ‘거품’은 이기심을 기본 동력으로 하는 경제 속성상 간과할 수 없는 화두다. 17세기 ‘튤립 투기’와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이 대표적인 사례다.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라고 했다. 거품은 어떻게 형성됐고 또 어떻게 소멸되었는지 과거 사례를 중심으로 되짚어본다. [편집자주]
[블록미디어 신지은 앵커] 동인도 회사(The East India Company)는 17세기 초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등 유럽인들이 동방 진출을 목적으로 세운 회사로 알려져 있다. 영국 동인도 회사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시초는 튤립 투기의 근원지인 ‘네덜란드’였다. 네덜란드는 세계 최초로 증권거래소가 만들어진 나라다. 네덜란드 최초의 대기업인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이하 VOC)는 이후 네덜란드 금융산업이 고속 성장하는 근간이 됐다. 조선 인조 때 귀화한 ‘박연’과 표류기로 유명한 ‘하멜’도 바로 이 VOC의 직원이었다.
◆ 거품의 시초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VOC)’
굳이 버블론을 비트코인 가치 하락에 투영해야 한다면 사실 튤립투기보다 더 어울리는 것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VOC)다. 현대 증권법의 근간을 만들기는 했지만 VOC 역시 초반에 부침을 겪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먼저 초기 청약자들은 VOC가 어떤 일을 하는지, 주식이 무엇인 지 구체적인 개념을 알지 못한 채 투자했다. 1602년 VOC는 1143명의 주주명부로 첫 청약을 마감했다. 지금처럼 ‘주식’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시기였다. 청약 당시 정관 10조를 보면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 회사 주식을 살 수 있다’고 적고 있다. 청약자 대부분은 정확히 어떤 사업을 하는 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네덜란드 국영기업 성격인 이 회사의 주식을 ‘애국심’ 등의 복합적인 이유로 매수했다. 사측도 미숙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배당을 해주겠다는 약속과 달리 투자자들에 돌아가는 배당은 향신료에 불과했다. 회사 측과 투자자 간의 정보 불균형도 심했다. 투자자들에게 가는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수많은 소송을 가져온 분쟁의 역사 또한 깊다. VOC 주식은 첫 청약 후 30여년이 지난 1630년대에 들어서야 전문 주식중개인을 통해 거래되기 시작했다. 금융시스템이 확립되기 전이다 보니 처음에는 제대로 된 거래소 건물조차 없이 ‘성당’에서 구두로 거래가 이뤄지곤 했다. 사기가 생길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자연스레 ‘분쟁’이 늘어났고 규제의 틀도 하나씩 늘어났다. 주식소유권, 선도거래 등 현대적 증권법의 시초가 만들어진 시기가 바로 이 때다.
◆ VOC가 불러온 주식시장 열풍 그리고 ‘거품’
17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VOC 주가는 두 번의 위기를 맞는다. 1672년 초, 영국과 프랑스가 네덜란드를 침공할 것이라는 전망에 49% 폭락했다. 1688년에는 국제정세 위기에 또다시 16% 하락을 경험한다. 재앙이 커진 이유는 ‘선도거래’ 등 복잡한 파생상품 때문이었다.
VOC 주식거래 열풍은 1690년경 영국으로 건너간다. 런던 시장의 지분 거래량은 치솟았고 네덜란드와 비슷한 파생상품들이 거래되기 시작했다. 영국 정부는 이런 주식 열풍을 이용해 정부의 빚을 주식회사 형태로 바꾸려는 목적으로 ‘남해회사’를 만들기도 했다. 채권을 가진 투자자들에게 돈 대신 지분을 넘겼고, 회사에는 남미 지역과의 무역 독점권을 줬다.
남해회사를 필두로 셀 수 없는 회사들이 주식시장에서 돈을 끌어오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버블’은 필연적이었다. 1720년 남해회사 주가가 10배 가까이 뛰었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며 수많은 사람들이 파산했다. 1720년 네덜란드에서는 40개 이상의 회사가 느닷없이 설립되어 주식을 발행했다. 네덜란드의 경우 시장 감독이 영국보다 엄격해 피해규모가 적기는 했지만 ‘거품’은 ‘거품’이었다.
◆ 주식시장 성숙 계기 된 ‘버블’ 사태
현대의 트레이더들은 여전히 선도거래, 옵션 등의 방식으로 증권을 거래한다.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시세차익 만을 노리는 투기세력과 장기적 안목을 가진 투자자가 공존한다. 일련의 버블 사태는 주식시장에 큰 충격을 줬고 동시에 시장이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영국에서는 주식 거품을 막기 위한 규제들이 도입됐고, 투자자들이 좀 더 신중하게 주식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위기와 거품을 헤치며 만들어진 증권거래의 기본이 네덜란드를 거쳐 영국으로,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당시 네덜란드 금융시장을 묘사한 책 ‘혼란 속의 혼란’에 나온 다음 문구는 지금도 여전히 투자시장에 유의미하다.
“누구든 이 게임에서 이기고 싶은 사람이라면 인내심과 돈이 필요하지. 지분의 가치라는 건 일정하게 유지될 때가 거의 없고, 루머라는 건 진실에 기반하고 있을 때가 거의 없지. 번개가 시끄럽게 칠 때 사슴은 도망가지만 사자는 포효로 응수한다네. 불운이 닥치더라도 겁먹지 말고 타격을 견뎌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네.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은 승리하고, 시작할 때 마음속에 그렸던 만큼의 돈을 지킬 수 있을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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