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문정은 기자] 최근 정부의 ICO(암호화폐 공개) 실태조사 발표 이후 정작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소 암호화폐 거래소들의 먹튀, 부실 운영 등으로 인한 피해사례가 속출하면서 ‘거래소에 대한 정밀 실태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양상이다. 정부가 암호화폐 시장을 방치하고 있는 가운데 비정상적 운영을 일삼는 중소형 거래소들이 우후죽순 등장한 탓이다.
◆ “중소 암호화폐 거래소, 카지노와 다를게 뭐냐”
우선 거래소 ‘먹튀’가 문제다. 거래소들이 자체 발행한 암호화폐를 투자자들에게 판매한 뒤 사이트를 갑자기 폐쇄하거나 운영 능력 부재 등을 내세워 서비스를 종료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퓨어빗’ 사례가 대표적이다. 퓨어빗 운영자는 서비스 개설에 앞서 자체 발행 암호화폐인 ‘퓨어코인’을 이더리움을 받고 사전 판매했다. 이 때 퓨어빗이 끌어들인 이더리움 규모만 1만 개 이상으로 추정된다. 퓨어빗은 존재하지도 않는 퓨어코인을 이더리움과 맞바꾼 뒤 잠적해 버렸다. 이더스캔 조회 결과 현재 퓨어빗이 모집한 이더리움은 모두 출금된 상태다. 거래소 오픈도 안 한 채 투자금만 받고 튄 격이다.
부실 운영으로 돌연 거래소를 문 닫는 경우도 잇따르고 있다. 퓨어빗에 이어 지난달에는 붐비트가 오픈한 지 3개월 만에 문닫았으며 최근 루빗 거래소는 전산 오류 등의 이유로 서비스를 종료하겠다고 발표했다. 루빗은 언론의 비판 보도가 이어지자 뒤늦게 거래를 재개하겠다며 입장을 번복했다.
‘가두리 펌핑’ 등 가격 조작으로 인한 피해도 여전하다. 가두리 펌핑은 암호화폐 거래소가 입출금을 제한하면서 특정 암호화폐 가격 상승을 유도하는 현상을 말한다. 특정 세력이 거래량을 인위적으로 늘리면서 가격이 급등하는 것이다. 일반 투자자들이 뒤늦게 따라 들어갔다가 고점에 물려 거액의 투자 손실을 입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국내 중소형 암호화폐 거래소를 이용하는 한 투자자는 “가두리 펌핑의 경우 해당 암호화폐 지갑이 닫혀 다른 거래소와 재정거래가 안돼 타 거래소와 시세차이가 많이 벌어진다”며 “넥소 코인의 경우 타 거래소에서 100원대였을 때 코인빗에서만 4000원 대에 거래돼 펌핑 의혹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가두리 펌핑으로 악용되는 암호화폐나 카지노의 칩이나 다를게 뭐냐”고 지적했다.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가두리 펌핑과 같은 가격조작 행태를 정부가 수수방관하고 있다”며 “이는 암호화폐 시장을 카지노로 전락시키는 것으로 정부가 방치하면 할수록 제 2, 제3의 강원랜드, 바다이야기가 계속 생겨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해) 관여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태도가 이 사달을 만들었다”며 “이를 바로잡지 않는 것은 정부의 태만”이라고 지적했다.
◆ 암호화폐 거래소, 왜 이지경까지
어쩌다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사기가 판치는 도박장이 됐을까. 전문가들은 규제 부재와 거래소간 치열한 경쟁을 이유로 꼽는다.
거래소 설립에 대한 규제가 없으니 ‘누구나’ 통신판매업자로 등록해 거래소를 운영할 수 있다. 이렇게 운영하는 중소 거래소들은 은행 가상계좌 대신 법인계좌에 투자자 돈을 입금받아 관리하는 ‘벌집계좌’ 방식을 이용한다. 벌집계좌에 들어간 돈은 실명의 개인이 아닌 거래소 ‘뭉칫돈’으로 관리된다.
최근에는 외주업체를 빌려 암호화폐 거래소를 운영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국내 한 암호화폐 거래소 대표는 “외주 업체에 가서 암호화폐 거래소를 설립하겠다고 하면, 3개월 만에 원하는 거래소를 만들 수 있다”며 “외주 업체에서 지갑 등 거래 관련 운영을 담당하고, 정작 거래소를 만든 업체는 마케팅만 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만들어진 거래소가 200여 개에 육박할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이는 허가제로 암호화폐 거래소를 운영하는 일본과 대조적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금융청(FSA)이 허가한 정부 공인 암호화폐 거래소 17곳이 전부다.
하지만 현재 시장은 기울었고 거래량은 대폭 줄었다.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자극적인 이벤트와 마케팅을 내세워 신규 투자자 유치에 나서고 있다. 실제 알트코인을 상대로 한 잦은 에어드롭 이벤트나 람보르기니 증정 이벤트 등 투자자 유치를 위한 과도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 “정부, ICO 아닌 거래소부터 실태조사해야”
비정상적인 암호화폐 거래소 운영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면서 ‘거래소에 대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는 업계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신근영 한국블록체인스타트업협회 회장은 “거래소를 통해 암호화폐 판매를 보장하는 IEO(거래소공개)가 등장했고, 이에 따라 새로운 유형의 피해 사례가 나오고 있다”며 “정부는 문제가 되는 부분을 찾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IEO는 거래소를 통해 코인이 배포 판매되는 형태로 ICO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블록체인 업계 또한 건전한 암호화폐 시장을 조성하기 위해 거래소 실태조사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불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국내 거래소만 100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거래소는 십여곳도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람들을 현혹하거나 투자자 돈을 탈취하는 불법 거래소 운영자들을 잡아들이기 위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암호화폐 거래소 또한 실태조사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김성아 한빗코 대표는 “암호화폐 거래소는 금융회사 정도는 아니더라도 준 금융회사에 준하는 보안시설, 자산관리 능력 등을 갖춰야 한다”며 신생 거래소들의 부실 운영 행태를 비판했다. 그는 “거래소 등록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정부가 거래소 현황과 입장을 들여다보고 민간이 내놓은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는 거래소들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암호화폐 투자자들도 거래소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중소형 암호화폐 거래소를 이용하고 있는 한 투자자는 “정부 주도 가이드라인이 없어 거래소들이 난립하고, 이들이 투자자 돈을 떼어먹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암호화폐 시장 인식은 더욱 안 좋아졌다”며 “거래소를 규제하고 있는 일본이나 미국을 따라가기도 바쁜데 정작 정부는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투자자들은 정부의 뒷북 규제로 인한 후폭풍도 우려하고 있다. 한 암호화폐 투자자는 “이제 와서 정부가 기준을 제시해 일부 중소형 거래소들이 운영 정지를 받게 될 경우, 해당 거래소에 투자한 사람들의 투자금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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