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신지은 앵커] 금융시장 거품이 터질 때마다 흔히 등장하는 사례가 17세기 ‘튤립 버블’이다. 2001년 닷컴 버블 때도,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버블 때도 그랬다. 튤립 버블의 근원지는 지금의 네덜란드다. 1500년대 후반 지금의 터키로부터 수입된 튤립은 1610년만 해도 일부 원예가나 애호가들 사이의 소장품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1630년대 ‘선물 계약’이 시작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선물 계약은 미래의 특정 시점을 인수·인도일로 지정해 특정한 기초자산을 정한 가격에 사고 팔기로 약속하는 계약이다. 튤립이 꽃을 피우려면 봄까지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구근’을 먼저 거래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돈만 먼저 지불하고 ‘실제 튤립은 꽃이 피는 봄에 전달해주겠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넣는 방식이 성행했다.
1636년 12월 튤립 가격이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당시 비싼 튤립 한 송이의 가치가 돼지 8마리와 같았다고 하니 얼마나 비싸게 거래됐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구하기 쉬운 종 조차 20배 넘게 가격이 폭등했던 이상 현상은 1637년 2월 막을 내린다. 오를 때도 특별한 이유가 없었지만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피해를 키운 배경은 ‘선물 계약’이었다. ‘미래에 특정 금액으로 튤립을 사겠다’는 선물 계약 자체를 사고 파는 거래가 성행했기 때문에 피해는 이중, 삼중으로 커질 수 밖에 없었다. 피해의 ‘도미노 효과’를 낳은 것이다. 파산자가 속출하자 네덜란드 정부가 개입했다. 결국 계약 금액의 5%~10%만 지불하는 것으로 사태가 수습됐다.
◆ 튤립 거래, 투자 아닌 ‘투기’
튤립 버블이 400년이 지난 오늘까지 역사책과 언론에 회자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튤립처럼 흔하고 오래 가지 않는 상품에 이처럼 돈이 몰린 사례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튤립 선물거래에 나선 사람들은 튤립의 본질적인 가치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어느 정도 오르면 팔아버리겠다는 ‘돈 욕심’이 거래의 주 목적이었다. 투자와 투기는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하지만 투자는 실제 필요에 의해 이뤄지는데 반해 투기는 가격차에서 오는 이득을 챙기는게 목표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튤립 가격을 춤추게 한 것은 투자가 아닌 투기, 바로 ‘돈 욕심’이었다.
◆ 튤립 거래가 낳은 산물 ‘옵션 거래’
튤립 버블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튤립 가격의 변동성은 오늘날 옵션 계약의 시초가 됐다. 옵션 계약은 ‘선물 계약’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옵션 계약 역시 미래의 일정 시점에 특정 기초자산을 정한 가격에 팔거나 살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두 계약 간의 차이점은 ‘계약 이행 의무’다. 선물 계약은 매도자와 매수자 모두에게 ‘이행 의무’가 생긴다. 옵션 계약은 계약 당사자 일방이 당사자에게 유리한 경우 계약을 이행하고 그렇지 않으면 계약을 이행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 여기에 대한 프리미엄은 지불해야 한다. 즉 계약 이행의 선택권을 갖는 계약자가 의무만을 지는 상대방에게 ‘리스크’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소득이 낮고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에게 더 높은 이자를 매기는 대출 상품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튤립 가격이 치솟고 가격 변동의 폭이 커지자 튤립 중개업자와 재배업자들은 ‘옵션 계약’을 통해 안정적인 거래를 꾀했다. 튤립을 사고자 하는 중개인들은 특정한 가격에 살 수 있는 계약인 콜(call) 옵션을 매입했다. 튤립 재배자들은 일정한 가격에 팔 수 있는 계약인 풋(put) 옵션을 매입함으로써 미래에 올 수 있는 가격 변동성에 대비했다.
투자 데이터 제공 사이트 모닝스타에 따르면 옵션 매도에 주력하는 펀드 상품의 자금 규모는 2018년 기준 157억 달러로 5년 간 50% 이상의 성장률을 보였다. 전통 금융상품인 주식, 채권과의 결합이나, 옵션 간의 결합 등 다양한 투자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오늘날의 옵션 계약이다. 그 근간이 400년 전을 거슬러 올라간 튤립 거래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당시 튤립 거래를 그저 한 때의 ‘거품’으로만 기억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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