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간 교환거래는 가액 평가를 통해 소득 금액 산정이 매우 어렵고, 특히 해외 거래나 개인 간 거래, 탈중앙화거래소에서의 거래, 장외거래 등은 파악은 더욱 어렵습니다. 또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커 결손금 이월공제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합니다.”
[블록미디어 서미희 기자] 김익현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지난 13일 블록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가상자산(암호화폐) 소득 과세 기준 재정립과 조세 징수 인프라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가상자산 과세 유예를 둘러싼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김익현 변호사는 섣부른 과세가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2020년 이후 가상자산 과세 관련 법 조항이 진전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하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거듭 말했다.
김 변호사는 “가상자산 소득세 부과 조항 도입 이후,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법률 제정과 토큰증권(ST) 제도화 등으로 정부의 가상자산 거래 정책 방향도 변화해 왔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가상자산 거래의 다양한 형태와 실질에 대한 논의가 많이 진전된 만큼, 이제는 이러한 부분들을 반영하고 업데이트해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이 같은 지적은 지난달 정부가 가상자산 과세 시행 시점을 2025년 1월에서 2027년 1월로 연기한 이유와 관련이 있다. 가상자산 과세는 가상자산으로 얻은 수익 중 기본공제 250만 원을 초과한 금액에 대해 22%(지방세 포함)의 세율을 적용한다. 정부는 이번 개정안을 다음 달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가상자산 과세는 원래 2020년 12월 도입돼 이듬해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두 차례 연기된 바 있다. 이번 개정안 발표로 인해 과세 시행이 세 차례 연기된 셈이다. 과세가 시작되면 가상자산 투자로 1년 동안 1000만 원의 수익을 올릴 경우, 기본공제 금액 250만 원을 제외한 750만 원의 22%인 165만 원을 소득세로 내야 한다.
업계 전문가들은 제도가 구체적으로 정립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과세 불명확성으로 인해 시장이 혼란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달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가상자산 과세제도 현안 토론회’에 참석한 임재범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국세청은 납세자의 성실신고를 위해 하드포크, 에어드롭 과세 방안을 사전답변·질의를 통해 구체적으로 안내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정정훈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가 있다’는 대원칙에 따라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소비자 보호와 투명성 부분에서 보완이 필요한 측면이 있어 많은 고민 끝에 2년 유예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 반복되는 과세 유예…’지지부진’ 가상자산 과세 시스템 구축
앞선 두 차례의 유예는 주로 관련 법령의 제정 및 시행 준비 부족, 과세 시스템 구축 미비, 실효성 문제 등이 이유로 제기됐다.
이번까지 총 세 번의 유예를 거쳤지만, 가상자산 관련 과세 제도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어진 유예 기간 동안 제도적 미비점을 개선하고 세부 조항을 신중하게 손보지 않으면, 2년 뒤인 2027년에도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가상자산 과세 논의에서 핵심 쟁점은 가상자산을 ‘기타소득’으로 분류할지 여부이다. 국내 소득세법에서는 가상자산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이는 금융투자소득과 차이가 있다. 금융투자소득은 손실이 발생해도 이월해 차감할 수 있는 반면, 기타소득은 손실 이월이 불가능하다.
김 변호사는 “가상자산은 일시적·우발적으로 발생한 소득에 대해 과세하는 기타소득과는 성질상 차이가 있다”고 했다. 또한, 기타소득으로 분류될 경우 손실 이월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기본 공제액도 금융투자소득세의 5000만 원에 비해 가상자산은 250만 원으로 제한돼 있어 과세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 결손금 이월공제 불허, 과세 형평성 반해
김익현 변호사는 “가상자산은 (증권보다)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커 결손금 이월공제의 필요성이 더 크며, 기본공제와 관련해서도 금융투자소득세의 기본공제 5000만 원과 비교해 불균형이 있다”고 지적했다. 결손금 이월공제를 허용하지 않는 건 실질 과세 원칙과 과세 형평성에 반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시장 활성화가 저해되고 행정력이 낭비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현재 당국의 정책방향 상 토큰증권의 경우 금융상품으로 분류 가능하다”며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제2조 정의조항 라목에 따르면, 전자증권화 한 토큰증권은 애당초 가상자산에서 제외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소득세 부과와 관련해서도 향후에 마찬가지로 제외되는 것으로 취급하면 되는지 소득세법 조항에서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개선점으로 꼽았다. 김 변호사는 대여소득에 대한 정의가 존재하지 않다는 점도 꼬집었다.
취득원가 산정 기준의 불명확성도 풀어야 할 숙제다. 현행 소득세법 개정안 시행령에 의하면, 신고 수리된 가상자산 사업자를 통하는 거래는 이동평균법, 그 외의 경우는 선입선출법을 따른다. 김 변호사는 “취득원가 산정 기준에 대해서도 현실을 고려한 재논의가 필요하며, 유상취득, 하드포크, 에어드롭, 채굴 등 다양한 형태의 취득 유형에 맞는 기준 정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준비부족 아니라는 기재부…현실은?
기획재정부 소득세제과 관계자는 최근 가상자산 과세 유예에 대해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 이후 이용자 보호를 위해 2년간 지켜봐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과세 체계의 준비 부족으로 내년부터 시행 예정이었던 과세가 유예된 것은 아니다”고 부인했다. 2027년 시행 예정인 ‘OECD 가상자산 정보 교환 체계(CARF)’와 동시에 해외 은닉 자산 과세도 차질 없이 준비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CARF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간에 가상자산거래에 대한 정보를 자동으로 교환하는 시스템이다.
정부는 가상자산 과세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탈세 우려가 있는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는 자발적 신고에만 의존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해외 은닉 자산을 찾아내 과세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익현 변호사는 “CARF 도입 시 주요 국가 간 가상자산 관련 조세 정보 공유가 가능하겠지만, 모든 국가를 커버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며 “가상자산의 정의와 보고 의무의 범위가 각국과 차이가 있어 국내 소득세 부과에 필요한 정보와 불일치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김 변호사는 “가상자산 소득세 계산과 증빙을 지원하는 민간 서비스 업체들이 있지만, 개인이나 기업이 혼자서 복잡한 세금 문제를 해결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이번 과세 연기 결정이 효과를 보려면, 이전보다 더 철저하고 체계적인 과세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곧 정책 신뢰성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김익현 변호사는 법무법인 율촌의 ‘가상자산·블록체인팀’ 팀장으로, 30명의 전문가 팀을 이끌며 국내외 가상자산과 블록체인 분야에서 오랜 자문 경험을 갖고 있다. 율촌의 토큰증권 및 조각투자 분야에서의 전문성은 독보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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