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뉴스) 이지헌 특파원 =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23일(현지시간) ‘잭슨홀 미팅’ 연설은 “정책조정(금리 인하) 시기가 도래했다”라며 강력한 시그널을 줬다는 점에서 2년여간 진행돼 온 ‘물가와의 전쟁’ 종료를 사실상 선언한 것으로 풀이된다.
파월 의장은 이날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경제정책 심포지엄 기조연설에서 “우리는 노동시장의 추가 냉각을 추구하거나 반기지 않는다”면서 기준금리를 인하할 시점이 다가왔음을 명확히 밝혔다.
그는 “인플레이션이 (목표 수준인) 2%로 안정적으로 복귀할 것이란 내 확신이 커졌다”면서 “인플레이션 위험은 감소한 반면, 고용이 하강할 위험은 증가한 상황”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파월 의장의 이 같은 발언은 지난 2022년 이후 이뤄졌던 연준의 고된 물가와의 전쟁이 사실상 마무리됐다고 선언한 셈이다.
연준은 팬데믹 부양책과 공급망 교란 등 충격 여파로 물가가 치솟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2022년 3월부터 작년 7월까지 기준금리를 2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인 5.25∼5.50%로 높인 바 있다.
특히 이 과정에 연준은 2022년 6∼11월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금리인상)만 4차례 연속 단행하는 등 과격한 긴축 정책을 펼쳤다.
파월 의장의 2022년 8월 잭슨홀 연설은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 그의 의지를 명확히 선언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연설로 기억되고 있다.
8분 50초로 이례적으로 짧았던 잭슨홀 기조연설에서 그는 경기침체를 감수하고서라도 물가를 잡겠다고 시장에 강력한 신호를 줬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이미 네 차례 연거푸 올린 상황에서 과연 금리를 지속해 높여갈 의지가 있는지를 두고 시장 안팎에서 의문이 커지던 상황이었다.
물가를 잡기 위해 경기침체도 감수하겠다는 파월 의장의 선언에 “폴 볼커가 되살아났다”라며 시장은 패닉에 빠졌고, 이 발언 여파로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두 달간 20%가량 하락했다.
볼커 전 연준 의장은 1980년대 초 고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무려 20%까지 높인 인물이다.
파월 의장은 2022년 잭슨홀 연설에서 긴축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히기 위해 볼커 의장의 저서 제목(keep at it)을 차용하기도 했다.
파월 의장이 감수하겠다고 선언한 경기침체는 2년이 지난 후에도 도래하지 않았고, 올해 잭슨홀 심포지엄을 개최한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연은)은 이 같은 ‘이례적인’ 현상을 탐구하기 위해 행사 주제를 ‘통화정책의 효과 및 전달 재평가’로 설정했다.
시장은 이미 연준이 9월 금리 인하를 개시할 것을 충분히 예견해왔지만, 예상보다 선명한 파월 의장의 금리인하 개시 신호에 화답하는 분위기다.
이날 파월 의장 잭슨홀 발언 이후 미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하락하고, 뉴욕증시 3대 지수는 강세를 나타냈다.
한편 물가와의 전쟁 마무리 국면에서 연준이 경기침체 위험을 피할 수 있는지는 향후 몇 달간 경제 흐름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물가는 거의 잡혔지만 연착륙 성공 여부는 아직 단언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파월 의장도 이 같은 우려의 시각을 고려한 듯 연설에서 “물가 안정을 향한 추가 진전을 만들어 가는 동안 강한 노동시장을 지지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다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9월 ‘빅컷'(0.50%포인트 금리인하) 가능성을 포함해 향후 금리인하 시기와 속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며 경제 상황 변화에 맞춰 대응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유지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닉 티미라오스 기자는 전날 보도에서 “파월 의장에게 있어 인플레이션을 상대로 한 연준 싸움의 마지막 단계는 운명을 결정짓는 중대 기로”라고 평가했다.
그는 “파월 의장이 성공해서 연착륙을 이끌어 인플레이션을 낮추고 실업률을 크게 높이지 않는다면 이는 중앙은행 ‘명예의 전당’에 걸맞은 역사적 성취가 될 것”이라며 “반면 이에 실패할 경우 경제는 고금리 압력 하에 침체로 내리닫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p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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