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치오토, 중세 때부터 즐기던 디저트 와인
베네토 대표 디저트인 티라미수 돋보이게 해
아마로네와 함께 베네토의 대표와인
[블록미디어=권은중 전문기자] 티라미수는 베네치아를 닮았다.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라 베네치아의 합리성과 실용성을 담은 음식 문화다.
티라미수는 이탈리아를 미식 강국으로 끌어올린 이탈리아의 국가대표격인 디저트다. 폭신폭신하고 향기롭다. 하지만 티라미수를 한번이라도 만들어 본 사람이라면 이 디저트가 얼마나 만들기 쉬운지 놀랄 것이다.
레시피는 간단하다. 핑거쿠키를 잘게 부셔서-이마저 귀찮다면 시판 카스테라를 써도 된다-에스프레소를 붓고 잘 적셔놓는다. 이후 마스카포네 치즈에 설탕을 넣어 치댄 후 커피를 흡수한 과자나 빵위에 올린다. 그리고 그 위에 카카오 가루를 뿌리면 끝이다. 만드는데 20분 정도밖에 안 걸린다.
아무리 쉬운 빵이나 과자가 적어도 한 시간은 족히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적의 디저트인 셈이다. 들인 수고에 견줘 카카오의 씁쓸하며 깊은 향. 이를 뒷받침 해주는 에스프레소의 강렬함. 그리고 부드럽고 푹신한 마스카포네 치즈의 삼박자가 잘 맞는다.
티라미수 1970년대 처음 선보여
원래 티라미수(Tiramisu)는 명령형 동사와 목적어 그리고 부사가 결합된 문장이다. ‘Tira’는 이탈리아에서 명령형으로 끌어라는 뜻이다. 기본형은 ‘tirare(티라레)’로 ‘끌다’라는 의미이다. mi는 주격의 목적격인 ‘나를’이란 뜻이다. 부사 su는 영어의 up으로 ‘위로’로 변역된다. 그러니까 ‘나를 위로 끌어올려라!’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cheer me up’으로 쓰인다. “날 기분좋게 해라”라는 의미다.
뜻도 맛도 멋진 이 디저트의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 이 디저트를 만든 사람은 베네토주 트레비소 코뮤네의 레스토랑 ‘레 베케리에(유리잔이라는 뜻)’의 파티쉬에였던 로베르토 린구아노토였다. 린구아노토는 팔고 남은 커피와 쿠키를 활용하기 위해 디저트를 개발했다. 이후 10여년 만에 이 레시피는 이탈리아를 너머 전세계로 퍼졌다. 그런데 린구아노토는 지난달 말 향년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린구아노토에 대한 애도는 이탈리아에서도 이어졌다. 베네토주 주지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오늘날 티라미수는 전 세계적으로 뛰어난 요리이며 이러한 성공의 공로는 파티시에인 린구아노토의 숙련도와 그의 열망 덕분”이라며 조의를 표했다.
나도 나만의 방법으로 고인이 된 티라미수의 아버지에게 조의를 표했다. 티리미수를 사서 티라미수와 어울리는 디저트 와인인 레치오토와 함께 했다.
레치오토는 근세 이전까지 베네치아가 주도로 있는 베네토를 대표하는 와인이었다. 예전에는 와인이 달아야 고급이었다. 달면 쉽게 산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와인은 말린 건포도를 이용해 만든다. 당도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베네치아 사람들이 얼마나 와인에 진심이었는지 느껴진다. 이 방법은 고대 로마에서 멸망한 카르타고에서 시작된 제조법이었는데 고대 로마를 거쳐 도시국가인 베네치아에 계승돼온 것이다. 알프스 밑에 있어 기온이 낮은 베네토 지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포도의 당도를 높여 와인을 만든 것이다.
레치오토와 아마로네, 종이 한 장 차이
단 와인인 레치오토를 잘못 만들어 발효가 멈춘 와인이 그 유명한 아마로네다. 아마로네는이틸리아어로 ‘쓰다’라는 뜻이다. 다디단 레치오토를 만들어야 하는데 실수로 아마로네를 만들었으니 얼마나 썼겠는가. 하지만 세월이 바뀌었다. 산업혁명 이후 단 와인보다 드라이하고 바디감이 좋은 와인을 더 고급 와인으로 쳐주는 세상이 왔다.
이렇게 되자 요즘 아마로네는 레치오토보다 각광을 받았다. 아마로네는 까마귀처럼 검어서 까마귀라는 뜻의 이름을 얻은 코르비나를 메인으로 해서 론디넬라 몰리나라를 블렌딩한다. 요즘은 몰리나라대신 코르비나노네를 쓰기도 한다.
아마로네는 15도에 이르는 높은 알코올 도수와 강한 향과 맛으로 한식에 잘 어울려 우리나라 사람에게 꽤 인기가 있다. 하지만 아마로네의 원조격인 레치오토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레치오토는 아마로네보다 저렴하다. 레치오토는 아이스와인처럼 당도가 높은 와인이다. 그래서 디저트로 제격이다. 말린 포도로 만들기 때문에 늦수확해 발효된 포도로 만드는 소테른과 다른 맛이 느껴진다.
레 라고세는 아마로네의 고향인 발폴리첼라의 유서깊은 와인 양조가가 지역품종 소량생산을 모토로 1969년에 세워진 비교적 신생 와이너리다. 하지만 3대째 발폴리체라에서 와인을 만들어온 와이너리가 양조학을 전공한 아들을 위해 새롭게 문을 연 와이너리라고 한다. 아들은 지역품종으로 소품종 소량생산을 고집하는 와인 철학을 이미 대학 때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신생 와이너리지만 4대째 와인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레 라고세는 그래서 고품질 소량 생산을 모토로 아마로네와 레치오토에 주력하고 있다.
레 라고세의 레치오토의 도수는 14.5도로 높은 편이다. 하지만 이 정도 도수가 돼야 단맛의 디저트와 잘 어울린다. 디저트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요리 강연을 하는 음식인플루언서 레캘(@raquel_cooking)님의 티라미수였다. 건강을 위해서 마스카포네 치즈에 설탕대신 알룰로스를 사용했다. 적당히 달았지만 레치오토의 단맛이 있어서 혀에 착착 감겼다. 티라미수가 나를 한번 끌어올리고 레치오토가 나를 기분좋게 해줬다. 나를 두번이나 끌어올려준 셈이다. “디저트 와인에 빠지면 다른 와인을 등한시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디저트 와인이 완결성이 뛰어나다는 의미다. 세상에 나온 지 50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완벽함으로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디저트 티
라미수와 고대 카르타고의 레시피로 중세 때부터 즐겨 마시던 클래식한 와인 레치오토는 나를 맛의 쾌락의 세계로 끌어올려주기 충분했다. 한번이 아니라 두번이나!
권은중 전문기자는 <한겨레> <문화일보> 기자로 20여 년 일하다 50세에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의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에 유학을 다녀왔다. 귀국 후 <경향신문>, <연합뉴스> 등에 음식과 와인 칼럼을 써왔고, 관련 강연을 해왔다. 『와인은 참치 마요』, 『파스타에서 이탈리아를 맛보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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