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뉴시스 우연수 기자]하루 새 코스피 10%가 폭락했던 지난 5일 한 위클리 옵션 상품의 가격은 전일 대비 5만5300% 치솟았다. 지수가 하락할 때 돈을 버는 ‘풋옵션(put option)’의 한 종류다.
풋옵션을 매수한 사람이 있다면 이를 매도한 상대방이 반드시 있다. 주식이 오르면 다 같이 돈을 버는 주식시장과 달리, 파생 시장은 ‘제로섬(zero sum)’이다. 폿옵션을 매도한 이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옵션 매도 전략으로 하나증권 랩 어카운트(wrap account) 고객들이 큰 손실을 입었다.
블랙먼데이로 불리는 지난 5일 코스피는 장중 10.8%, 종가 기준 8.8% 폭락하며 역사적인 하락폭을 기록했는데, 이 때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는 옵션 만기일(9일) 전이라 손실이 모두 확정된 건 아니었지만, 원금을 훨씬 넘어서는 막대한 증거금 납입 요구(마진콜)를 맞추지 못한 투자자들은 대규모 반대매매를 당해 손실이 확정됐다. 일부 투자자들은 증권사의 증거금 납부 안내 등 대응이 미흡했다며 하나증권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이다.
소송을 맡을 법무법인 클라스한결에 따르면 소송 의사를 밝힌 8명의 투자자가 입은 손실 금액은 약 160억원이다. 인당 평균 20억원인 셈이다.
문제가 된 랩 어카운트는 개별 계약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옵션 매도 전략을 활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옵션 매도는 옵션 매수보다 훨씬 위험이 큰 전략이다.
파생상품에는 크게 선물과 옵션이 있는데, 옵션이란 일정 가격에 사거나 팔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기초자산이 더 오를 것으로 전망할 때는 일정 가격에 살 수 있는 ‘콜옵션(call option)’을 매수하고, 떨어질 것으로 예상할 땐 정해진 가격에 팔 수 있는 ‘풋옵션’을 매수하는 것이다.
콜옵션과 풋옵션 매수는 투자 방향이 맞을 경우 막대한 이익을 볼 수 있는 반면 반대의 경우엔 투자한 프리미엄 비용 만큼만 잃는다.
예를 들어 현재 100원짜리가 미래에 130원이 될 것 같으면 프리미엄 10원을 붙여 나중에 100원에 거래할 수 있는 콜옵션을 매수한다. 나중에 130원이 되면 프리미엄값을 제외하고 20원을 벌게 된다. 가격이 떨어지면 권리는 사실상 없던 것이 되고 프리미엄 값만큼 손실을 보게 된다.
반대로 옵션 ‘매도’는 훨씬 위험한 포지션이다. 장이 안정적일 땐 자잘한 등락과 관계없이 꾸준히 프리미엄을 먹을 수 있지만, 예상 구간을 벗어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단순화하면 지수가 떨어졌을 때 풋 매수 투자자들은 프리미엄 입장료만 내고 수억원을 벌지만, 매도자는 프리미엄만 수취하고 수억원을 물어줘야 하는 셈이다.
시장이 크게 흔들리는 날이면 옵션 가격은 상상 이상으로 뛴다. 지난 5일 풋옵션 상품이 수만%씩 오르는 기현상이 나타나자 한 증권사 지점 직원은 본인의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저장해뒀다. 1만%가 오르면 1만원에 100만원이, 1000만원에 10억원이 붙는다. 5만5300%는 여기에 다섯배가 더 붙는 셈이다. 하나증권 랩 고객뿐 아니라 디와이자산운용도 양 사이드로 옵션을 거는 양매도 전략을 썼다가 막대한 손실을 봤다.
반대로 지난해 11월6일에는 코스피가 장중 4% 급등했다. 공매도 금지 발표가 있은 후 2차전지주를 중심으로 급등한 날이다. 주식시장 투자자들은 웃었지만, 이날 한 운용사는 그간의 수익을 다 잃을 정도로 손실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코스피200과 연동된 콜옵션 매도 전략을 쓴 것이다. 코로나19, 911 테러 등 변동성이 큰 장날에 시장에서는 옵션 매도로 누가 큰 손실을 입었는지가 회자되곤 한다.
한 증권사 프라이빗 뱅커(PB)는 “옵션 매도는 옵션 매수와 달리 훨씬 위험한 포지션이라 주로 기관이나 선수들이 많이 하는 영역”이라며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개인투자자 자금을 운용하면서 양매도 전략은 쓰는 건 요즘 흔치 않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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