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이명동 기자 = 소셜미디어 애플리케이션 ‘텔레그램’을 만든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최고경영자(CEO)가 구금돼 러시아군 통신 전체에 경고등이 켜졌다.
러시아에서는 두로프가 프랑스에 체포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러시아군이 내부 소통을 텔레그램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두로프를 구금해 사실상 ‘러시아군 통신 책임자’를 체포했다는 인식에서다.
폴리티코, 더타임스 등 외신은 26일(현지시각) 두로프를 러시아군 통신 책임자에 빗대어 러시아가 발칵 뒤집혔다고 설명했다. 러시아군이 자체 보안 통신체계를 운영에 어려움을 겪어 텔레그램을 널리 사용하는 상황에서 주전파 군사 블로거를 비롯해 일반 국민까지 같은 플랫폼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 텔레그램은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정부 부처와 유명 인사부터 일반 시민에 이르기까지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불특정 다수와 소통한다. 또 텔레그램 메시지로 사적인 대화도 주고받는다. 공보와 개인 간 소통 역할을 모두 맡는 셈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동안 군과 용병 모집도 텔레그램을 매개로 이뤄진 사례가 많다.
구독자 78만 명을 거느린 러시아 군사블로거 ‘포뵤르누티예 나 스 보이네’는 “그들(프랑스)은 사실상 러시아군 통신 책임자를 구금했다”고 적었다. 두로프가 프랑스 당국에 텔레그램 통신 암호화를 풀 수 있는 키를 넘겨서 러시아 당국에서 소통한 기록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구독자 55만 명이 있는 친정부 성향 마르가리타 시모니얀은 “민감한 대화를 위해 이 플랫폼을 사용하는 데 익숙한 모든 사람은 지금 당장 해당 대화를 삭제하고 다시는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며 “두로프는 (암호화) 키를 얻기 위해 감금됐다. 그리고 그는 키를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구독자가 158만 명에 달하는 친(親)정부 성향 바자는 두로프 체포 뒤로 러시아 공무원과 법집행기관 등에 모든 통신 기록을 삭제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고 알렸다.
러시아 안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군이 보안 통신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번 일로 군이 대안 소통 플랫폼 마련에 적극 나서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전까지는 군 관계기관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아 왔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TV 진행자인 안드레이 메드베데프는 “텔레그램은 이번 전쟁의 주요 메시징 앱”이라며 “군대가 군사적 목적으로 쓰이는 자체 앱을 개발하는데 진지하게 임하기 바란다. 텔레그램이 언제까지 지금처럼 유지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같은 날 프랑스 검찰은 두로프가 마약 거래, 자금세탁 공모, 아동 음란물 유통 조장 등 12가지 혐의를 받고 있다고 체포 이유를 밝혔다. 두로프가 프랑스 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는다면 최장 20년까지 옥살이를 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두로프의 체포는 독립적인 수사에 의한 것이라면서 정치적 동기가 있다는 주장을 배제했다.
주프랑스 러시아대사관은 프랑스 측이 두로프 체포와 관련한 협조를 피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는 자신의 국익에 부합할 때 일을 부당하게 처리한다는 식으로 이를 비판했다.
지난 24일 프랑스 수도 파리 부르제공항에서 체포된 두로프는 오는 28일까지 구금될 수 있다.
옛 소련 태생의 두로프는 미국 메타 창립자인 마크 저커버그와 견주어 ‘러시아의 저커버그’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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