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서미희, 오수환 기자]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이 지난달 시행되며 거래소는 가상자산(암호화폐)의 가격이나 거래량이 비정상적으로 변동하는 거래 등 이상거래를 감시하고 조처를 해야 할 의무가 생겼다. 하지만 법 시행이 무색하게 빗썸에 상장한 어베일(Avail)의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폭등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법조계와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줄 것을 요청했다.
지난달 23일 오후 10시 빗썸에 상장한 어베일은 상장 이후 15분 만에 약 1500% 급등하며 3500원까지 치솟았다. 다음 날에는 284원으로 급락했다. 이는 어베일을 상장한 다른 해외 거래소와 분명하게 다른 흐름이었다. 빗썸과 다르게 바이비트, 쿠코인 등의 타 거래소의 어베일 가격은 여전히 200원대에 머물러 있었다.
어베일의 시세 급등락으로 국내 투자자들은 피해를 보았다. 시장에서는 시세조종이 아니고선 단시간에 이같은 가격 급변동이 가능하지 않다고 봤다. 이처럼 이상 거래 징후가 분명했지만, 당시 빗썸은 이상거래 가능성을 부인했다.
빗썸 쪽은 “이상거래 탐지를 위해 가상자산 입금을 포함해 거래 사항에 대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어베일 역시 관련 사항이 정상적으로 진행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빗썸의 주장과 다르게 금융위원회와 금감원 등은 어베일 코인의 이상거래에 대해 빗썸에 자료 제출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어베일 사건은 지난달 19일 가상자산법 시행 이후 첫 번째로 시장에 큰 논란을 일으키며, 법 시행 후 가상자산 시세조종 1호 사건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조사는 금융당국이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거래소들이 상장 종목의 시세조종 행위를 얼마나 철저히 감시할 의지가 있는지를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이기 때문이다.
# 금융당국 “거래소 적극적 노력 필요해”
이에 더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 22일 이상거래 업무 수행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업비트, 빗썸을 직접 방문해 상시 감시 가동현황을 점검했다. 금융당국은 닥사의 이상거래 가이드라인에 기초해 △상시감시 조직 운영 △이상거래 분석시스템 운영 △적출된 이상거래에 대한 조치・심리 등을 적절히 수행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이후 이어진 원화 마켓거래소와의 점검회의에서 불공정거래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최근 현안에 대해 금융당국과 거래소 간의 의견을 나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가상자산 시장은 하나의 자산이 다수의 거래소에 교차 상장됨과 더불어 폐장 없이 24시간 실시간 거래가 이뤄지는 특징이 있다”며 “이에 급격한 가격 변동과 시장 질서 교란에 취약하다”고 자본시장과의 차이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에도 금융당국은 거래소들이 적극적으로 이상거래 업무에 참여해 주길 촉구했다.
이어 “거래소들이 외형적인 이상거래 심리와 통보 의무 준수에 그쳐서는 안 된다”며 “투자자를 보호하고 시장 신뢰를 유지할 수 있도록 거래 지원 단계부터 더욱 적극적인 시장 질서 유지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이 가이드라인 만들어야”
이용자보호법 제12조 2항에 따라 가상자산 거래소는 이상거래 감시 과정에서 불공정거래행위 의심사항이 발견되면 즉시 금융당국에 통보해야 한다. 아울러 혐의가 충분히 증명된 경우에는 즉시 수사기관에 신고하고 해당 사실을 금융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해당 절차의 신속성을 위해 거래소에게 자율규제를 맡긴 것은 합리적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의 말처럼 자본시장과 다르게 가상자산 시장은 여러 거래소에 상장이 가능하고 폐장 시간도 없다. 이에 불공정 거래의 신속한 탐지를 위해 이를 거래소의 자율규제에 맞기는 것이 일정 부분 필요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상거래 탐지와 확인을 위한 가이드라인조차 거래소에 맡기는 것이 합당한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닥사의 이상거래 가이드라인은 상시감시 전문 인력의 자격, 준수사항, 업무범위 등에 대한 내용과 상시감시위원회의 역할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빗썸 역시 가이드라인에 따라 시장감시위원회를 신설하고 위원장을 위촉했지만 어베일 사건을 막을 수 없었다.
박신애 법무법인 인헌 변호사는 “이용자보호법이 더 세세하게 관련 조항이 명시되면 좋았겠지만, 현실적으로 이상거래 시스템과 관련해 더 구체적으로 넣기 어려웠던 문제가 있다“면서도 “거래소가 만든 가이드라인만으로는 문제를 방지하기에 부족하기에, 금융당국이 촘촘한 가이드라인을 다시 만들어 배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특정 세력이 목적을 가지고 시세조종을 한 뒤 국내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입힌 사건이므로 수사 과정이 쉽진 않겠지만 철저한 조사를 통해 엄히 다스려야 한다”면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외에도 사기, 외환법, 특금법 등으로 법적 근거에 따라 처벌이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 “거래소 별 인력 구성·이상거래감지 기준·금융위 통보 방식 전부 달라”
5대 거래소 모두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을 대비하는 차원에서 확충한 이상거래감지 관련 부서 인력을 묻는 질문엔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거래소 관계자는 “다만 큰 틀에서 닥사의 가이드라인을 따르지만 인력 구성이나 이상 거래를 감시하는 기준, 금융위에 통보하는 방식은 전부 다르다”고 밝혔다.
각 거래소마다 이상거래감지 시스템이 규모 면에서 차이 날 수는 있지만 이대로라면 제2의 ‘어베일’ 사태는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거래소에 이상거래 감지를 얼마나 성실하게 했는지 물을 수 있는 공통된 기준도 부재하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속도감 있는 입법 과정을 거치며 지난달부터 시행됐지만 앞으로 보강해야 할 부분이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신애 변호사는 “2단계 법안을 지금 당장 시행할 수 없지만, 구체적인 사항이나 업무 범위는 시행령 개정, 시행규칙, 고시 등으로 보완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이런 한계점이 있는 부분을 신속히 시정하여 이 법을 빠르게 안착시킬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법 시행으로 ‘잡코인’으로 시세차익을 누리는 거래나, 범죄 사기의 악용은 줄어들겠지만, 거래소들이 암암리에 펌핑 등 시세조종을 자행하거나 방관하지 못하도록 분명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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