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이우호 기자] 최근 어베일(Avail) 코인 사태는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가상자산법) 보완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시세와 시장정보 개념이 모호해 이를 악용한 시세조종 관련 규제가 부족하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현행법이 가상자산 시장의 특수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아울러 국내 가상자산 시장 내 시세 조작 행위에 대해 법인 계좌 허용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며 투자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 ‘시세’ 불명확성과 초기 시세 조작 문제
가상자산법과 자본시장법 모두 불공정거래행위를 엄격히 금하고 있지만 다른 점이 있다. 자본시장법에서는 시세에 대한 정의를 △증권시장 또는 파생상품시장에서 형성된 시세 △다자간매매체결회사가 상장주권의 매매를 중개함에 있어서 형성된 시세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시세로 명확하게 정의했다. 이에 따라 시세조종 행위도 분명하게 판단이 가능하다. 반면, 가상자상법에서는 시세조종 행위는 금지하지만 시세에 대한 정의가 내려져 있지 않아 시세조종 행위를 판별하기 모호하다.
즉, 어베일 사태처럼 조작된 시세로 피해 받은 투자자들이 보호 받을 수 없다는 의미다. 이정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가상자산 시장의 문제는 초기 시세가 임의 설정되면 이후 거래의 공정성 전체가 훼손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상자산법은 시세조종을 규제하면서도, 이를 조작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시장정보를 규제 대상으로 삼지 않고 있다. 현행법에서는 ‘기업 내부 정보’만을 미공개중요정보로 규정하고 있어, 시장의 수급 상황이나 대량 보유자의 매도 계획과 같은 ‘시장 정보’는 법적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기업 정보 보다는 이런 시장 정보와 행위가 시세조종에 활용되고 있음에도, 가상자산법은 이를 다루지 않고 있다.
이정수 교수는 “가상자산 시장에서 문제가 되는 정보는 기업 내부 정보보다도 시장 전체의 수급에 영향을 미치는 정보들”이라며 “특히 시세 조종을 목적으로 공모된 정보는 시장을 왜곡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현행법은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규제의 실효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자본시장법→가상자산법 단순 이식은 안돼…시장 맞춤형 규제 필요”
다만 가상자산법이 실효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기존의 자본시장법을 단순히 이식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가상자산 시장의 특수성을 반영한 맞춤형 규제 체계를 구축하고, 글로벌 시장과의 연계성을 고려한 포괄적인 규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현행 가상자산법은 해외 거래소에서 발생한 시세 변동이 국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다루지 못하고 있다. 어베일 사태에서도 해외에서 매집된 코인이 국내 거래소에 덤핑되면서 가격이 급락했지만, 이를 규제할 법적 장치는 미비한 상황이다.
가상자산법 제3조(국외행위에 대한 적용)에 따르면 ‘이 법은 국외에서 이루어진 행위로서 그 효과가 국내에 미치는 경우에도 적용한다’고 명시했지만, 기업정보가 아닌 시장정보 조작 행위를 통해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온 것이기에 행위에 관한 범주가 불분명하다는 설명이다.
블록체인 업계 전문가는 “해외 거래소에서 조작된 시세가 국내 거래소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가상자산법에 역외 적용 조항을 더 구체화하고 해외에서 발생한 시세조종 행위도 규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의 특성을 고려할 때, 국내법이 해외 거래소에서의 불공정 행위를 효과적으로 규제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협력과 역외 규제 강화가 필수적이다”고 강조했다.
#법인계좌 허용, 시세조종 방지에 효과 있을까…당국은 ‘신중’
이러한 시세조종을 막기 위한 대안 중 하나로 법인계좌 허용도 언급되고 있다. 법인 투자자가 가상자산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거래소 내 유동성이 증가해 시세조종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기대에서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법인계좌를 통해 대규모 거래를 관리하면 시세조종을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무엇보다도) 법인 간 거래 투명성을 확보하고 거래소 사이에 협력을 통해 실시간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법인계좌 허용에 대해 당국은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법인계좌 허용 시 시장에 유동성 공급이라는 긍정적인 면보다 법인 차원의 시세조작 결탁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법인계좌를 통해 대규모 거래가 가능해지면, 특정 법인들이 결탁해 시세를 조작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며 “먼저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추가적인 법적 장치 마련이 우선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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