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서미희 기자] 지난 7월 금감원의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소를 대상으로 한 예치금 이용료율 관련 제동이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 근거하고 있는지에 대한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의 예치금 이용료율(이자율) 지급을 명시한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 해석을 두고 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금융당국이 거래소에 ‘증권업계를 참고하라’고 요구하면서 이자율 상한선이 사실상 1~2% 대에서 정해졌다. 가상자산 거래소도 증권사와 마찬가지로 은행에 맡긴 예치금에서 발생한 이익 내에서만 이자를 지급해야 하며, 추가 자금을 얹어 지급하는 행위는 금지됐다.
점유율 1위인 업비트를 시작으로 거래소들은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 첫날인 지난 7월19일부터 이용료율을 잇따라 인상하며 경쟁에 뛰어들었다. 특히 업계 2위인 빗썸은 시중은행의 수시입출금(파킹)통장 이율보다 높은 연 4%대 이용료율을 제시했다가 금융당국의 개입으로 반나절 만에 공지를 철회하는 해프닝을 빚었다.
지난 7월 24일 빗썸은 연 4.0%의 고객 원화 예치금 이용료율을 발표했다. 이후 한나절 만에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준수를 위해 추가 검토할 사항이 발견돼 예치금 이용료율 연 4.0% 상향 조정에 관한 안내를 철회하게 됐다”고 공지했다. 기존 상향 조정이 약 6시간 만에 번복된 셈이다. 빗썸은 ‘추가 검토 사항’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 따르면 이용자의 예치금은 은행이 안전하게 보관·관리하고 가상자산사업자는 이용자에게 예치금 이용료를 지급해야 한다. 은행은 거래소 예치금 운용을 통해 수익을 내고 그 중 일부를 거래소에 돌려준다. 거래소는 은행으로부터 받은 운용 수익의 일부를 고객에게 이자 명목으로 지급한다.
거래소들 간의 이용료율 1위 쟁탈전은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된 지난 7월19일부터 시작됐다. 업비트는 이날 오후 이용료율을 연 1.3%로 확정한다고 발표했으며, 빗썸은 업비트보다 0.7%포인트 높은 연 2.0%의 이용료율을 공지했다. 이는 두 거래소의 이용료율 경쟁에 불을 붙였다. 업비트는 빗썸보다 0.1%포인트 높은 연 2.1%의 이용료율을 제시하며 응수했고, 빗썸은 다시 이용료율을 연 2.2%로 수정했다. 반나절 사이에 이용료율 정책이 수 번씩 바뀐 것이다.
코빗은 20일 주말 이른 오전에 이용료율을 기존 연 1.5%에서 2.5%로 상향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거래소 중에서 가장 높은 이용료율이었다. 그러나 이용료율 결정 과정에서 거래소는 은행과 사전 협의를 거치기 때문에 코빗의 갑작스러운 인상 소식에 시장의 우려가 커졌다. 시장 점유율이 1% 미만인 코빗이 2.5% 이용료율을 올렸을 때 고객 예치금 운용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 지 우려한 것. 이후 빗썸이 가장 높은 연 4%대 이용료율을 제시했고 이는 금육감독원의 제동으로 반나절 만에 번복됐다.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거래소들의 이용료가 연 1%대에서 은행 정기예금 이자율을 웃도는 4%까지 높아지면 금감원 입장에서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이 자본시장에서 가상자산시장으로의 자금 이탈 등을 우려해 제동을 걸었다는 관측도 나왔다.
#금감원 예치금 이용료율 ‘제동’…법적 근거 있나?
결국 금융감독원은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시장 점유율 순) 5대 가상자산 거래소 담당자들을 소집해 예치금 이용료율 산정 방식을 점검했다. 금감원은 지난 7월 24일 5대 거래소를 불러 모아 거래소 간 치열한 이용료율 인상 경쟁에 대해 법과 규정에 맞게 합리적인 수준에서 이용료율을 산정하라고 지도했다.
현재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는 거래소가 이용자에 지급하는 이자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다. 시행령에서 이용자 예치금을 맡은 은행이 국채 등 안전 자산으로 이를 운용하고 거래소에 그 수익을 지급하도록 한 내용이 전부다. 즉, 거래소가 자율적으로 이용료율을 정할 수 있다.
빗썸은 이 규정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자체적으로 이자를 지급한 것으로 보인다. 고객들은 거래소의 이자율 경쟁을 반겼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제동으로 이자율은 1∼2%대에서 내려가게 됐다. 금융위원회 고시인 가상자산업감독규정에 따르면, 거래소가 이용자에 예치금의 이용 대가를 지급해야 하고 이자는 운용수익과 발생 비용 등을 감안해 합리적으로 산정하도록 했다.
금융당국은 빗썸이 은행 이자에 자체 자금을 더해 이용료율을 지급하는 방식이 이같은 규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예치금 이용료의 ‘합리적 산정’ 기준에 대한 모호함이 계속해서 지적되고 있다. 금융당국 또한 ‘합리적’의 정확한 의미를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법무법인 린의 테크그룹 총괄을 맡고 있는 구태언 변호사는 “금융감독원이 이용료율을 정할 권한이 법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금감원의 이용료율 제동 걸기는 직권남용으로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구 변호사는 “‘합리적으로 산정하는 것’에 대해서 기업이 자율적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고, 그것이 문제가 있으면 깊은 검토를 통해 스스로 조율하도록 하고 그럼에도 문제가 있으면 시정명령을 통해 신중하게 처리하는 것이 올바른 감독당국의 자세”라고 덧붙였다.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이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 초기 법리 해석 차이로 발생한 일로 볼 수 있으며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 이 내용 (예치금 이용료율) 말고도 모호한 부분들이 더러 있다. 이것이 2단계 입법이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면서 “법이 시행된 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정착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편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거래소들 사이에서도 혼란이 크다”며 “다만 거래소들도 법을 준수하는 선에서 고객들에게 최대한 혜택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금감원, 이용요률 제동 관련 정보공개청구에 ‘비공개’ 답변
블록미디어는 지난달 초 금융감독원 정보공개청구를 이용해 △금융 감독당국이 요구사항을 거래소에 즉시 반영하게 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그 판단은 누가 했는지 △판단 근거는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문의했다.
아울러 △빗썸 이용료율 4% 철회에 대해 누가 의사결정을 했는지 △금감원 내부 회의 및 보고자료 △거래소에 대한 지시 내용 등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을 포함한 정보 공개를 요구했다.
금융감독원은 약 2주 뒤 업무상 이유로 ‘비공개’ 답변을 내놨다. 다만 “감독 규정에 명시된 합리적 산정을 기준으로 금융감독원이 해야 할 감독 업무를 했다“고 밝혔다.
금감원 관계자는 블록미디어와의 통화에서 “금융위원회 고시인 가상자산업 감독 규정에 따르면 이자는 운용 수익과 발생 비용 등을 감안해 합리적으로 산정하도록 돼 있다”며 “실제 운용 수익보다 추가적으로 이자를 지급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자금 이용의 대가를 주는 것인지는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거래소가 금융기관은 아니지만 금육감독원 감독 하에 들어왔기 때문에 시장의 안정성 등을 고려해 해야 할 일을 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용료율 경쟁의 이면에는 거래량 점유율을 차지하려는 거래소들의 치열한 전략이 깔려 있다.
9월 거래량 기준으로 업비트는 65%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1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빗썸은 30% 내외, 코인원은 1%대, 코빗과 고팍스는 1% 미만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 특성상 서비스 차이가 크지 않고 신규 상장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거래소들이 이 이용료율을 통해 고객을 유치하려 과열 경쟁에 뛰어들었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코빗은 연 2.5%의 이용료율 발표 후 신규 가입자 수가 전 달보다 약 5배 증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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