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서미희 기자] 국내에서 불법 해외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여전히 영업을 이어가는 가운데,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가상자산법) 시행 이후 금지된 가상자산 파생거래를 일부 허용해 제도권으로 편입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5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 금융당국은 가상자산법 시행령 및 제정안을 발표하며, 제3자에 이용자의 가상자산을 맡기는 예치·운용업을 사실상 금지시켰다.불가능하다. 올해 7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되면서 예치운용업이 불가해지자 관련 업계는 사실상 고사 상태다. 하지만 침울한 국내 업계와 달리 불법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버젓히 영업 중이다. 이에 국내 거래소는 파생상품을 취급할 수 없어 역차별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금융당국은 불법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 차단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현재로서는 IP 차단 외에 실질적인 대응 수단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업계 전문가들은 가상자산 파생상품 거래를 일정 부분 허용해 이를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외 사례를 참고해 그레이존에 머물러 있는 가상자산 거래를 단계적으로 합법화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향이라는 것이다.
금융위가 가상자산법에서 가상자산 예치업을 중점적으로 다룬 이유는 예치업이 사기 등 불법 행위와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가상자산 예치업은 고객이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가상자산을 맡기면 일정한 이율로 이자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는 은행의 예금과 비슷한 구조로 보일 수 있지만, 이자를 지급하기 위해 업체들은 주로 고객이 맡긴 자산을 운용해 수익을 창출한다.
문제는 관련 규제가 미비하다는 점이다. 특히 불법 해외거래소들은 규제에서 벗어나 있어 투자자 보호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 현재 가상자산 예치업체들은 고객에게 자산 운용 내역을 공개할 의무가 없다. 고수익을 노리고 위험한 가상자산에 투자하거나, 심지어는 부당 이득을 취하더라도 고객들은 이를 알 수 없는 구조다. 업체가 투자 손실을 입어도 고객에게 알리지 않는다면, 투자 위험은 전적으로 고객이 떠안게 된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 사건이 델리오와 하루인베스트의 입출금 중단 사태다. 이들 업체는 고객들에게 자산 운용 내역을 공개하지 않다가, 지난해 6월 돌연 가상자산 출금을 중단했다. 하루인베스트는 자금을 맡긴 B&S홀딩스에 문제가 생겼다며 출금을 막았고, 델리오는 하루인베스트에 투자한 사실을 뒤늦게 공개하며 대규모 인출 사태(뱅크런)를 막기 위해 출금을 금지했다. 이에 고객들은 손실 규모와 투자 내역 공개를 요구했지만 업체들은 대응하지 않았다.
결국 피해를 입은 고객들은 델리오와 하루인베스트 경영진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소했다.
현행 법상 가상자산사업자는 △가상자산을 매도, 매수하는 행위 가상자산을 다른 가상자산과 교환하는 행위 △가상자산을 이전하는 행위 △가상자산을 보관 또는 관리하는 행위 △가상자산을 매도·매수 및 다른 가상자산과 교환하는 행위를 중개, 알선하거나 대행하는 행위를 하는 사업자로 정의된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말 가상자산법 시행과 함께 국내에서 가상화폐 예치 서비스를 금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가상자산법은 가상자산사업자에게 고객이 맡긴 가상자산을 동일한 종류와 수량으로 보유하도록 규정해, 가상자산 예치업체가 이를 투자·운용하는 것을 제한한다.
이에 따라 고위험 투자나 불법 행위의 위험이 줄어들었지만 동시에 해외 사업자와의 규제 차이로 인한 문제와 가상자산 업계의 발전 저해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 규제 ‘그레이존’에 있는 디파이 프로젝트…가상자산 커스터디 허용해야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 명시돼 금지된 사업 영역외에 불분명한 규제 범위에 들어 있는 그레이존에 포함되는 사업으론 뭐가 있을까.
김용태 법무법인 화우 고문 변호사는 현행 법상 규제 관련그레이존 영역에 포함되는 사업 범위로 △대체불가능토큰(NFT) △스테이킹, 예치, 랜딩, 운용업 등 탈중앙화금융(DeFi·디파이)으로 봤다. 규제 이외의 범위는 △가상자산 벤처캐피털(VC) △가상자산 데이터분석 △블록체인 인프라 및 개발 관련 블록체인 시스템 관련 사업으로 제시했다.
김용태 변호사는 지난 7월 “커스터디는 가상자산 소유자를 대신해 가상자산의 안전한 보관 및 관리를 제공하는 서비스로 보관 이외에도 매입·매도 또한 이전 및 신고 등 폭넓은 업무를 제공하고 수수료를 받는 서비스”라며 “이를 가상자산사업자 범위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거래소보다 보안관리, 내부통제 등이 우수한 금융회사에서 가상자산 커스터디(수탁)에 관심이 많다면서 “미국 OCC(통화감독청), 독일 바핀(BaFin·금융감독청) 등은 기존 금융업법 해석 또는 개정을 통해 은행의 가상사잔 커스터디 허용한 상태”라고 말했다.
실제 일본의 경우 노무라 홀딩스에서 ‘코마이누’라는 가상자산 커스터디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국내 역시 주로 은행들이 이미 관련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국내은행의 경우 커스터디업을 부수업무, 대여금고 같은 것으로 보고 수행 가능한지 자체 법률 검토를 한 적이 있는데 대여금고로 해석하기는 조금 어렵다는 결론이 났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가상자산 커스터디업이 단순 보관업에 머무르지 않고 수취결제, 투자 플랫폼 확대 등으로 이어질 전망이므로, 정부 방침 관련해서 입정 정립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제언했다.
# “디파이, 단계 세분화해서 점진적 입법 해야…빠른 업권법 제정 필요성 커져”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상 가상자산사업자는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신고하고 자금세탁방지 등의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FIU가 발표한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매뉴얼에 의하면 ‘단순히 가상자산 거래 제안을 게시할 수 있는 장 또는 기술만을 제공하는 경우 등 사업자가 이용자의 지갑과 개인 암호키에 대한 독립적인 통제권을 가지지 않아 이용자의 가상자산의 이전·보관·교환 등에 관여하지 않는 경우’ 가상자산사업자 범위에서 제외하고 있다.
즉, 이용자의 지갑과 개인 암호키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지 않는 디파이 프로젝트는 현재로서는 가상자산사업자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특정금융정보법상 신고 의무나 이용자보호법상 가상자산사업자 규제는 적용되지 않는다.
박신애 법무법인 인헌 변호사는 “다만 디파이 프로젝트가 이용자 개인 암호키 등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는지 여부 및 그 정도에 대한 해석”에 따라서 규제가 적용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결국 디파이 프로젝트에 대해 정부가 허용한다고 보기도 어렵고 금지한다고 보기도 어려운 그레이존에 해당하는 부분이라는 설명이다.
박 변호사는 “이러한 상황에서 다수의 프로젝트들이 다양한 종류 서비스를 ‘디파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직간접적으로 제공하고 있으나, FIU가 제시하는 조건인 ‘이용자 거래에 관한 통제권’이 없는지 검증하기는 어려우므로 규제 공백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유럽연합(EU)의 가상자산법인 미카(MiCA)는 국내 이용자보호법에는 규정되지 않은 일부 운용업(providing portfolio management on crypto-assets)을 가상자산사업자의 업으로 정의하고 있다. 또 미국은 일부 디파이 프로젝트에 대한 규제 시도를 통해 기준을 만들어 가고 있다.
박 변호사는 “국내에서도 가상자산 관련 2단계 입법에 대한 노력이 진행 중이고 디파이를 포함한 다양한 가상자산사업에 대한 진흥과 규제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으므로 앞으로 입법과 규제 방향을 계속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도 “그레이존 장기간 지속될 경우 가상자산 업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청년기업으로서는 규제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태에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면서 “해외 사업자와의 규제 차익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에 단계를 세분화하거나 점진적으로 제시하는 방향의 입법 및 행정지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가상자산법에 대해 업계는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큰 모습이다. 자금세탁 방지를 위해 3년 전 시행된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규정된 가상자산의 정의와 가상자산사업자 범위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서둘러 2단계 입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블록체인과 가상자산을 산업으로 포괄적으로 인정하는 업권법을 제정할 것이라는 법 제정 전의 기대와는 달리 현재 가상자산법은 ‘이용자 보호’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토큰증권 관련 사업 등을 포함한 국내 영세 가상자산 관련 사업자들은 국내에서 산업적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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