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시나 카스틀렛-필자 모교인 ICIF 뒷산에 위치
바르베라 반건조해 양조한 ‘팟숨’…깊은 베리 맛 인상적
장기 숙성하면 ‘왕의 와인’인 바롤로처럼 복합미 뽐내
[블록미디어=권은중 전문기자] 2년만이었다. 코로나19가 주춤해진 2022년 이탈리아 친구들의 “언제 오냐”는 성화 탓에 토리노를 거쳐 알바 등 이탈리아 북부 와이너리를 돌아봤던 게 2년전이었다. 그때는 외국에 나가면 한국에 입국하기 전 외국 현지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은 후 음성이 확인된 사람만 국내에 들어올 수 있던 때였다. 만약 그때 내가 이탈리아 현지에서 양성판단을 받을 경우 1주일을 공항 근처 호텔에서 기다렸다가 다시 재검사로 완치 판정을 받아야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 이런 황당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이탈리아에 갔었다. 이탈리아 와인을 마시러 간 것이다.
이탈리아 와인이 뭐길래 그때 그런 위험을 떠안고 출국했을까? 나는 이탈리아에서 와인을 배우는 행운을 누렸다. 배움은 100% 경험적이었다. 나는 2019년 쉰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이탈리아 음식 문화를 배우려고 피에몬테주 아스티 시에 있는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라 요리학교(ICIF)에 입학했다.
학교는 셰프 지망생에게 기숙사를 제공했다. 그런데 기숙사는 포도밭으로 이어졌고 나이 많은 학생이었던 나는 체력을 단련하기 위해 매일 아침 학교 기숙사 언덕을 올라갔다. 언덕을 오르며 나는 매일 포도 덩굴이 자라는 것을 보았고 그 덩굴에 매달린 포도가 생각 외로 작고 귀엽지만 엄청 달다는 것을 알았다. 포도밭은 매 시간마다 포도밭을 둘러싼 수십개의 작은 시골 성당에서 치는 종소리를 감상할 수 있던 콘서트 장이기도 했다. 포도밭엔 장미와 양귀비가 지천이었다. 어디서 빵 굽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와인이 호들갑스러운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잘 차려진 끼니에 생기를 불어넣는 자애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가호쯤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한국에서 와인을 배웠다면 느낄 수 없는 생생한 경험이었다.
2년만에 찾은 이탈리아 피에몬테 와이너리
2년만인 2024년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코로나19를 의식하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내가 이탈리아에 입국하고 출국하는데 겪는 불편은 전혀 없었다. 나는 2022년에는 코로나19 탓에 가지 못했던 나의 모교를 방문해보고 싶었다. 한번은 꼭 찾아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지난 5일 오전 밀라노 말펜사 공항에서 차를 렌트하는 날 엄청나게 비가 왔다. 이탈리아에서 보기 힘든 폭우였다. 우리나라 장맛비처럼 쏟아졌다. 그런 비를 맞으면서 나와 일행은 아스티시 코스틸요레 코뮤네(우리로 치면 읍면동쯤의 행정구역이다)로 향했다.
아스티는 밀라노에서 이탈리아 북부 와인의 성지인 알바와 나란히 있는 인구 7만명의 작은 도시다. 내가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기 전까지 아스티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은 발포성 와인인 모스카토뿐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더 많이 재배하는 품종은 바르베라다.
바르베라는 진한 과일 맛의 북부 이탈리아 지역품종이다. 바르베라는 내가 레드와인에 대해 눈을 뜨게 해준 와인이다. 내 개인적 견해로는 토마토 파스타에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은 바르베라다. 바르베라의 진한 풍미의 베리 맛이 토마토 소스의 상큼함과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바르베라는 베리맛과 같은 풋맛만 있는 것이 아니다. 10년이상 숙성될 경우 흙맛과 가죽맛 같은 성숙된 맛을 보여주기도 한다. 같인 북부 지역의 대표적인 와인인 바롤로와는 결이 다른 숙성의 맛이다. 왕의 와인으로 불릴 만큼 유명한 바롤로만큼이나 다재다능한 와인이지만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다시 찾아간 학교는 평화로웠다. 수업을 하는 고성과 그 옆의 랩실 그리고 학교 앞 넓은 정원은 그대로였다. 내가 이 학교를 다닐 때 메인 강사였던 마시모 셰프나 구내식당의 책임자인 마리오가 그대로 있는 지 궁금했지만 선뜻 그들을 찾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 미리 연락을 하고 온 것도 아니었고 컬리너리 과정을 끝마치고도 레스토랑 개업을 하지 않은 나 자신을 그들에게 설명하는 것은 껄끄러운 일이었다. 학교 정원과 건물 앞을 어슬렁거리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 매일 아침에 에스프레소를 먹던 카페 로마에 가서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내가 이날 꼭 가고 싶었던 와이너리인 카시나 카스틀렛(Cascina castlet)을 방문했다.
카시나 카스틀렛 와이너리는 기숙사 뒷산의 정상에 있어서 내가 학교를 다닐 때 가장 자주 들렀던 곳이다. 어떤 유명한 바롤로나 바르바레스코의 와이너리도 나에게는 이곳처럼 정겹지는 않다. 다시 이 와이너리를 찾으니 나를 반긴 건 빅벤치였다. 7~8m의 거대한 벤치는 앉는 사람은 누구나 어린이가되게 만든다. 멀리 북쪽으로는 알프스가 보이고 서쪽으로는 우리로 치면 읍내인 코스틸료 중심가가 굽어 보인다. 나는 이 벤치에 앉아서 포도밭은 보는 것을 좋아했다. 포도밭은 포도뿐 아니라 장미와 양귀비가 지천으로 피었다. 그 빅 벤치옆에 있는 와이너리 카시나 카슬렛이 있다.
팟숨, 고대 카르타고 와인 제조 방식 따라
인터폰을 누르고 와이너리에 들어가보니 이미 여러 팀이 시음을 하고 있었다. 나는 예약을 하고 가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근처 ICIF 졸업생이고 이곳은 참새 방앗간처럼 들렀다고 하니까 나와 일행에게 자리를 내 주었다. 내가 가장 마시고 싶었던 것은 이곳 바르베라 팟숨(Passum) 수페리오네였다.
팟숨이란 고대 카르타고에서부터 전해져온 와인 제조법으로 포도를 말려 당도를 높여 와인을 농밀하게 만든다. 아스티의 명성을 전 세계에 알린 모스카토 역시 카르타고가 시칠리아를 통해 이탈리아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스카토의 아랍 이름은 지빕보이다.
내가 ICIF 정규 과정과 인턴 과정을 마치자마자 로마나 베니스 같은 유명 관광지를 놔두고 시칠리아로 날아간 것은 파스타와 리조토가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곳이 시칠리아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와인 때문이기도 했다. 파스타와 리조토는 10세기 이후 아랍의 지배 때 이탈리아에 들어왔지만 와인은 그보다 1천여년 전에 이미 시칠리아를 통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역사로서의 음식을 보고 싶었고 와인은 파스타나 리조토보다 더 원조였던 것이다. 그만큼 와인이 나에게 남긴 인상은 컸다.
한국에 수입되지 않는 탓에 팟숨을 다시 마신 것은 5년만이었다. 농밀했다. 기분좋은 베리향과 균형잡힌 달달함이 나를 가득 채웠다. 2019년 이탈리아 요리를 배우겠다고 호기롭게 한국을 떠났던 나의 모습이 생각났다. 기숙사에 온 첫날 아침, 흰 덧창 밖으로 한가득이던 이탈리아의 짙고 푸른 하늘도 떠올랐다. 요리하며 매일같이 느끼던 기쁨과 좌절. 기쁜 일보다 화나는 일이 더 많았던 유학시절이 바르베라의 향기로 달콤하게 추억됐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는 없었던 카베르네 쇼비뇽으로 만든 ‘폴리칼프’도 눈에 띄었다. 이곳 아스티에서도 수퍼 투스칸처럼 프랑스 품종을 재배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이탈리아는 원래 역시적으로 프랑스와 깊은 혈연관계가 있는 토스카나를 제외하고는 프랑스 품종의 재배를 꺼려왔다. 하지만 수퍼투스칸의 성공이후 1990년대 많은 와이너리들이 카베르네 쇼비뇽이나 메를로 같은 프랑스 품종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그 트렌드가 아스티까지 밀려 들어온 것이다.
카시나 카슬렛의 폴리칼프는 단단한 프랑스의 카베르네 쇼비뇽과 달리 이탈리아 특유의 쾌활함을 가지고 있었다. 발랄한 폴리칼프의 카베르네 쇼비뇽을 마시면서 나는 더없이 즐거웠다. 5년만에 이 와이너리가 이렇게 성장한 모습이 저술과 강연으로 이탈리아를 비롯해 인류의 음식 문화를 풀어나가는 나의 모습과 겹쳐보였기 때문이었다. 이 작고 소박한 와이너리에 ‘멋지다’라는 응원을 아끼지 않고 싶었다. 그리고 요리를 배우고도 요리를 하지 않은 나 스스로에게도 ‘나쁘지 않았다’라는 말을 건네고 싶었다.
권은중 전문기자는 <한겨레> <문화일보> 기자로 20여 년 일하다 50세에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의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에 유학을 다녀왔다. 귀국 후 <경향신문>, <연합뉴스> 등에 음식과 와인 칼럼을 써왔고, 관련 강연을 해왔다. 『와인은 참치 마요』, 『파스타에서 이탈리아를 맛보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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