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오수환 기자] 한국은행이 경제・산업 구조 전반의 디지털 전환에 발맞춰 디지털화폐(CBDC) 활용 방안을 위한 테스트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CBDC는 법정통화를 기반으로 해 스테이블 코인에 비해 원화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으면서, 국가 간 결제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이유에서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은행과 주요 민간 은행들은 오는 12월 실행을 목표로 CBDC 실거래 테스트를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 이번 테스트를 통해 한국은행은 보조금, 상품권, 이용권 등 다양한 종류의 바우처를 CBDC에 적용할 계획이다.
테스트에 참여하는 은행들은 한국은행이 구축한 CBDC 네트워크를 통해 예금 토큰을 발행하고 이용자들은 해당 토큰으로 물품을 구매할 수 있다. 참여 은행으로 거론되는 은행 중 한 곳인 NH농협은행은 자사 계열사인 하나로마트에서 예금 토큰을 사용할 수 있을 예정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2021년부터 범용(Retail) CBDC 모의 실험을 시작으로 CBDC 관련 연구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이처럼 한국은행이 CBDC 연구를 지속하는 이유는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김동섭 한국은행 디지털화폐 기획팀장은 지난 20일 열린 디지털자산정책 포럼에서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웹3・사물 인터넷 등 기술들의 발전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며 “기술의 발전과 함께 금융 시스템 또한 바뀌어 나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CBDC 실험의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현금을 지급수단으로 사용하는 비율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금융 환경도 변화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체 지급수단 중 현금 비중은 2019년 26.4%에서 2021년 21.6%로 줄어들었다. 특히 스테이블코인의 등장으로 미국 달러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지고, 국가 간 송금이 더 간편해지면서 기존 금융 시스템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윤승식 타이거리서치 선임 연구원은 “원화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한국은행의 주요 역할 중 하나”라며 “현재 많은 국가에서 CBDC와 스테이블코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행도 계속해서 원화 영향력을 지키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국과 마찬가지로 각국 중앙은행들도 금융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CBDC 관련 실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전 세계 중앙은행의 94%가 CBDC 연구를 진행 중이다. 각국은 경제 상황에 따라 CBDC를 실제로 도입하거나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나이지리아, 바하마 등 일부 신흥국은 이미 CBDC를 공식 도입했지만, 영국, 일본, 중국 등 주요국들은 도입에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 국가에서도 CBDC 연구는 꾸준히 강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은 2020년부터 일반인을 대상으로 범용 CBDC 실험을 위해 디지털 위안화(e-CNY)의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지난 5월까지 e-CNY의 누적 거래액은 910억달러(약 121조원)에 달했다. 이는 2022년과 비교해 약 7배 증가한 수치다.
하지만 중국의 유의미한 실험 결과에도 최근 각국 중앙은행들은 범용 CBDC보다 기관용(Wholesale) CBDC 도입에 중점을 두고 관련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범용 CBDC 도입 시 발생할 문제점과 금융 안정성을 고려한 결과로 풀이된다.
CBDC는 활용 범위와 사용 주체에 따라 기관용과 범용 CBDC로 구분한다. 기관용 CBDC는 지급준비금과 유사하게 금융기관에 발행돼 금융기관 자금거래, 최종 결제 등에 활용한다. 범용은 현금과 마찬가지로 가계・기업 등 경제주체들에 직접 발행돼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다.
범용 CBDC는 일반 대중이 사용하므로 개인의 모든 금융 거래가 중앙은행에 의해 추적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디스프레드의 김동혁 리서치 애널리스트는 “CBDC 초기 단계에는 범용 CBDC에 비해 기존 금융 시스템에 가져올 혼란 및 개인 정보 침해 문제가 적은 기관용 CBDC를 중심으로 개발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동섭 한은 팀장도 “기관용 CBDC는 지급준비금을 관리하는 인프라를 블록체인 기술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이기 때문에 금융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적다”고 말했다.
# “CBDC, 국가 간 결제 분야서 비용 절감 효과 기대”
반면 기관용 CBDC는 현재 금융 시스템과 비교해 △국경 간 지급 △외환 거래 △국가 간 증권 거래 등 기존 금융 시스템과 비교해 속도와 비용에서 상당한 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현재 국경 간 결제 시스템은 여러 중개 기관을 거쳐야 하고 각 은행이 고객 확인(KYC) 및 자금세탁방지(AML) 규정을 따로 수행해야 하므로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모된다.
실제 현행 시스템에서는 국경 간 결제에 일반적으로 2~5영업일이 소요되지만 CBDC를 활용한 시스템에서는 거의 실시간 처리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태국과 홍콩 중앙은행이 협력해 국경 간 결제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시작한 인타논-라이언 록(Inthanon-Lion Rock) 프로젝트에서는 국경 간 결제가 수 초 내에 완료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처럼 국가 간 결제 분야에서 CBDC의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한국은행은 BIS를 비롯해 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스위스, 멕시코의 중앙은행 및 국제금융협회(IIF)와 협력해 아고라(Agora)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아고라 프로젝트는 BIS가 제안한 통합 원장(Unified Ledger) 개념을 적용해 기존 중앙은행과 상업은행 간의 이중 계층 통화 시스템(two-tier structure)을 유지하면서도 디지털 기술을 통해 더 효율적이고 빠른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한은에 따르면 최근 아고라 프로젝트에 참여할 40여 개 민간기관을 선정한 결과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기업은행이 포함됐다. 김동섭 팀장은 “아고라 프로젝트는 한국은행을 포함한 여러 국가의 중앙은행과 민간 금융기관들이 협력하여 추진하는 프로젝트”라며 “국경 간 지급 결제 시스템에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더 효율적이고 비용 절감이 가능한 결제 시스템을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은 CBDC 관련 연구를 지속하며 글로벌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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