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이우호 기자] 미국이 11월 대선을 앞두고 가상자산(암호화폐)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2단계 가상자산법 입법은 상대적으로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양국의 블록체인·가상자산 산업 경쟁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미국 의회는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규제의 명확성을 기하기 위해 입법을 서두르고 있는 반면, 한국은 예산 삭감과 더불어 법적 틀 마련이 지연되면서 산업 경쟁력이 약화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 미국, 레임덕 기회로 가상자산 입법 가속화
미국 의회는 대선을 앞두고 가상자산 관련 법안 처리를 서두르고 있다. 공화당을 중심으로 추진되는 이 법안들은 레임덕 기간 동안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 상원에서 가상자산 관련 입법을 주도하는 신시아 루미스 공화당 의원은 최근 한 행사에서 “미국은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다”며 “유럽이 가상자산 분야에서 미국을 앞서가고 있으며, 이를 따라잡기 위해 레임덕 기간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루미스 의원이 발의한 ‘책임있는 금융혁신법’(RFIA)은 가상자산의 포괄적인 규제를 포함한다. 이 때문에 ‘미국판 가상자산 기본법’으로 불린다. 이 법안은 가상자산의 증권성과 상품성을 명확히 구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가상자산의 법적 지위를 강화해 미국 내 가상자산 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려는 목적을 지닌다. 특히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탈중앙화된 블록체인 기반 자산들은 상품으로, 리플(XRP)과 바이낸스코인(BNB) 등 중앙화된 네트워크에 기반한 자산들은 증권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크다.
하원 역시 가상자산 법안을 적극 추진 중이다. 패트릭 맥헨리 하원 금융서비스위원장이 주도한 ‘21세기 금융혁신기술법’(FIT21)은 가상자산을 증권 또는 상품으로 구분하는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맥헨리 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이번 회기 내에 법안을 마무리하지 않으면 가상자산 규제 논의가 다음 의회로 넘어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입법 성과는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입법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 한국, 블록체인 내년 예산 ‘519억원→309억원’ 축소
미국에 반해 한국은 가상자산 관련 규제의 불확실성 때문에 경쟁력 있는 프로젝트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해외 거래소를 이용하는 국내 투자자들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2단계 가상자산법의 신속한 입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일본 등 이웃 국가들이 블록체인 산업을 국가 차원에서 육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골든타임을 놓치면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며, “국내 블록체인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와 더불어 신원이 확인된 외국인 투자자들의 참여와, 법인 및 기관 투자를 더욱 자유롭게 허용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런 요구와는 달리, 정부의 블록체인 관련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산업 발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내년 블록체인 지원 예산은 올해 예산 519억원에서 약 210억원이 삭감돼 309억원으로 편성됐다. 특히, 비R&D(연구개발 외) 분야 예산이 361억원에서 163억원으로 절반 이상 삭감됐다.
업계 관계자는 “블록체인 기술은 미래 산업의 핵심 요소 중 하나로 정부가 충분한 투자를 통해 해당 산업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며 “예산 삭감이 계속된다면 블록체인 기업들이 경쟁력을 잃고 해외로 빠져나가는 현상이 가속화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이어 “2단계 가상자산법이 늦어지면 국내 가상자산 산업이 뒤처질 수밖에 없다”며 국회의 신속한 입법 추진을 촉구했다.
# 국회, 2단계 가상자산법 이제서야 ‘첫발’… 미국 동향 반영해야
이러한 상황에도 한국 정부와 국회는 가상자산 산업 육성을 위한 2차 입법 논의에 이제 막 발걸음을 뗀 상태다. 지난 20일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실 주관으로 ‘미국 차기 정부의 디지털자산 정책 전망 및 국내 대응 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한국은행,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위원회,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 등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해, 미국의 가상자산 법안이 한국의 입법 활동에 미칠 영향을 논의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미국이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를 명확히 정비하면서 국제적 표준을 만들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도 입법 활동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한국이 입법을 지연하면 국내 가상자산 산업이 경쟁력을 잃고 해외로 빠져나가는 현상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며 신속한 대응을 촉구했다.
이는 한국이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신속히 대응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더욱 부각하고 있다. 동시에 미국에 비해 정책 속도가 느리다는 점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미국이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를 명확히 하려는 입법 노력을 신속히 추진하는 가운데, 한국은 2단계 입법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예산 삭감과 입법 지연이라는 난관에 봉착해 있다는 것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관계자는 “미국과 같은 선진국들이 규제를 명확히 하는 동안 한국은 입법이 지연되고 있어, 국내 가상자산 산업 경쟁력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입법 지연이 계속되면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이 뒤처질 가능성이 크다”며, “정부와 국회가 신속히 대응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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