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서미희 기자]
“자유로운 투자가 곧 투자자 보호인 경우도 많기에 투자자 보호와 자유가 완전히 상반된 곳에 서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토큰증권은 ’증권’입니다. 증권으로서 규제는 필요할 수 있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상품이라는 이유로 규제 역차별을 받는 것은 결국 투자자 보호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신범준 바이셀스탠다드 대표 겸 핀테크산업협회 토큰증권협의회장는 지난달 30일 블록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규제 중심의 금융당국의 입장으로 인해 토큰증권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 대해 이같이 지적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신속히 토큰증권 시장을 선도하고 있지만, 한국의 사업자들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으며 명확한 법적 규제가 아니라 불완전한 가이드라인에 갇혀 있어 상품 발행이 어려운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신범준 바이셀스탠다드 대표는 국내 조각투자 열풍의 주역이다.
2021년 4월 최초의 현물 조각투자 플랫폼인 ‘피스’를 론칭한 그는 첫 상품에서부터 큰 성공을 거두었다. 명품 시계를 기초자산으로 한 ‘피스 롤렉스 집합 1호’는 출시 30분 만에 완판되었고, 6개월 뒤에는 무려 32%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후 피스의 상품들은 연이어 큰 인기를 끌며 미술품 등 다양한 아이템이 1분 이내에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다. 이로 인해 ‘피스런’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이같은 성과는 국내 조각투자를 단순한 흐름에서 하나의 시장으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STO 시장 커지는데…샌드박스 인가는 수백 건 중 ‘1건’
STO 시장 규모는 2030년까지 367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주요 선진국들이 치열하게 관련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아직 법제화가 이뤄지지 않아 성장의 한계를 겪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재 한국의 STO 제도화는 지난해 2월 금융위원회에서 발표한 약식 가이드라인에 머물러 있다. 지난해 7월 21대 국회에서 STO 시장 활성화를 위한 자본시장법 및 전자증권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결국 통과되지 못했다. 22대 국회에서도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신속한 처리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달 4일 국회 토큰증권 토론회에서 금융위원회 담당자는 “투자계약증권 (관련 제도 마련)은 공백 없이 규제하기 위한 것이지 적극적으로 발행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려는 취지가 아니다”라고 발언했다.
지난 6월 금융위 전체회의 회의록에선 “최근 혁신금융서비스 신청 대부분이 조각투자 관련 건인데 규제회피, 투자자 보호 등을 피하기 위한 건이 많아서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토큰증권에 대한 우리 금융당국의 인식이다. 사업자들이 규제 회피를 위해 제도를 악용하는 기업으로 간주되고 있는 현실이다.
실제로 지난해 2월 토큰증권 가이드라인이 발표된 이후, 수백 개의 토큰증권 사업자가 금융샌드박스인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신청했다. 이중에 승인된 사례는 갤럭시아머니트리의 ‘항공기 엔진 신탁수익증권 거래유통 서비스’ 단 한 건뿐이다.
이러한 상황은 규제가 없는 환경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시도하라는 샌드박스’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비판을 낳고 있다.
# “현재 조각의 증권화 단계…사업자들 손 발 묶여 있다”
신범준 대표는 STO의 발전 단계를 △현물의 조각화 △조각의 증권화 △증권의 토큰화 세 단계로 구분했다.
현물의 조각화는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투자 대상을 소액으로 나누어 투자할 수 있게 하는 단계다. 조각의 증권화는 조각 투자 상품을 증권으로 제도화하는 과정이다. 마지막으로 증권의 토큰화 단계에서는 실물 자산도 포괄할 수 있게 된다.
그는 “현재 우리는 조각의 증권화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며 “사업자들은 손발이 묶여 있는 상황으로, 토큰 거래가 법적으로 완전히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기초 자산이나 발행 방식에 대한 큰 제약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신 대표는 “일본과 싱가포르에서는 거래소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으며, 일본의 오사카 디지털 거래소(ODX)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거래가 시작돼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한국은 최근 금융위원회가 장외거래 중개업을 신설했지만, 전체 진행 속도는 일본에 비해 현저히 느리다”고 평가했다.
일본은 2020년 금융상품법 개정을 통해 STO 법제화를 선제적으로 진행했다. 올해 해당 시장 규모가 1조 원을 넘어섰으며 내년에는 10조 원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현물 쪼개기 방식의 비정형 증권 토큰화에 대한 가이드라인만 존재하는 반면, 일본은 정형적 증권에 대한 규제도 법제화된 상태다.
이에 그는 한국 STO 시장의 발전을 위해 △기초 자산 요건 개선 △토큰증권 발행 절차 간소화 △유통체계 개선을 시급한 과제로 제시했다.
다음은 신 대표와의 일문일답.
Q. 대표님 본인 소개, 회사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STO 플랫폼 ‘피스’를 운영하는 바이셀스탠다드 창업자 신범준입니다. 바이셀스탠다드 대표이사이자 동시에 핀테크산업협회 토큰증권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Q. 국내 금융당국의 STO 규제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태에서, 법제화가 된다면 어떤 방향으로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현재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은 있는 상황입니다. 다만 이 가이드라인만으로는 (하나금융연구소의 전망치인) 2030년 367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는 ST 산업의 균형 있는 성장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관련 법안의 개정 및 시행령 마련이 시급합니다.
Q. 법제화가 이뤄진다면 무엇이 가장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고 보십니까?
법제화가 이뤄진다면 무엇보다 ‘보충성의 원칙’ 폐지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금융당국은 지분증권(주식), 채무증권(채권), 집합투자증권(ETF 등) 등 기존 정형증권으로 사업목적이 달성 가능하면 STO의 주요 방식인 투자계약증권 발행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또 STO의 기초자산을 미술품이나 부동산 등 실제가 있는 현물에 국한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들이 좋은 아이디어를 사업화 하기 위해 STO를 통해 투자재원을 마련하려 해도 현재의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 아래서는 STO 상품 발행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이 외에도 기존 증권과 같은 수준의 규제를 받고 있는 만큼, 투자한도 등 차별적인 규제는 최대한 지양해야 합니다.
Q. STO의 기초자산을 특정 현물에만 한정하는 규제가 국내 스타트업과 중소기업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해외에서는 ST로 지분증권, 채무증권 등을 발행할 수 있기에 스마트업, 중소기업 등 다양한 기업들이 더 다양한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지분투자나 대출 등 한정된 자금조달 방식을 더 늘려야 이들이 더욱 쉽고 활발하게 도전을 할 수 있습니다.
Q. 바이셀스탠다드에서 선보이는 ‘상생금융 1호’와 ‘선박금융’ 등의 상품이 시장에 어떤 새로운 가치를 제공할 것으로 예상하는지?
현재 부동산, 미술품 등 특정 현물에 집중된 ST 산업의 영역을 해외 금융선진국 수준으로 넓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아울러 투자자에게는 기존에 일부 VC나 사모펀드, 자산가들만 진행할 수 있었던 투자상품에 일반인들도 소액으로 손쉽게 투자할 수 있도록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기업들에게도 더 다양한 자금조달 방식을 제공합니다.
Q. 해외 시장에서 한국의 우수한 자산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자산들이 주목 받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콘텐츠, 웹툰, 아이돌 그룹 등 K콘텐츠 전반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특히, 기존 투자방식은 특정 기업의 지분에 투자를 하는 것이 주를 이뤘다면, ST는 기업 전체가 아닌 특정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진행하기에 더 매력적입니다. 예를 들어 특정 엔터사 주식이 아닌 소속 보이그룹, 혹은 이들의 앨범, 콘서트 등 세분화된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 상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미술품 등 현물 기반의 자산에도 관심이 큽니다. 해외에서는 지분이나 채권에 대한 ST 상품이 일반적이었기에 미술품 등 현물을 기초자산으로 삼아 발행하는 국내 ST산업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Q. 싱가포르를 거점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계획에 있어, 가장 큰 도전 과제는 무엇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은 무엇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현지 시장에 대한 이해와 이를 기반으로 맞춤형 서비스 및 자산을 내놔야 합니다. 바이셀스탠다드는 KB금융그룹이 운영하는 KB스타터스에 선정돼 현지 진출을 위한 네트워킹, 거점 마련 등 다양한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Q. STO의 투자계약증권 유통이 가능한 제도가 마련된다면, 투자자와 기업에 어떤 실질적인 이점이 있을지?
투자자 보호를 위한 다양한 보호책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보호책 가운데 하나가 바로 언제든 투자자가 원할 때 투자원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재 ST는 기초자산이 청산되기 전에 원금을 회수할 수 있는 방법이 제한적이고, 기초자산의 청산 시기도 수년이 걸리는 상품이 대부분입니다. 크립토나 주식시장처럼 유통이 활발하게 진행되면 투자자는 투자수익(손실)을 포함한 자신의 투자금액을 쉽고 빠르게 회수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이 같은 유통구조가 만들어져야 더 많은 투자가 진행되고, ST 시장이 안전하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Q. 토큰증권 시장에서 투자자 보호를 위한 규제와 자유로운 투자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수 있다고 보십니까?
역설적이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자유로운 투자가 곧 투자자 보호인 경우도 많기에 투자자 보호와 자유가 완전히 상반된 곳에 서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ST는 토큰’증권’입니다. 증권으로서 다른 증권과 같은 수준의 규제는 필요할 수 있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상품이라는 이유로 규제 역차별을 받는 것은 결국 투자자 보호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Q. 앞으로 ST 산업이 발전하면서 소액 투자자들의 참여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과정에서 중요한 과제는 무엇입니까?
누구나 쉽게 ST 상품에 접근할 수 있고, 투자까지 간편하게 진행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울러 초기 상품들이 의미 있는 수익을 투자자들에게 제공해야 시장이 더욱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우리은행과 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바이셀스탠다드는 조각투자업계 최초로 제1금융권 은행인 우리은행과 협업하고 있습니다. 양사는 STO 서비스 활성화를 위한 상품·서비스 연계, 제휴 연계 마케팅, 재무적 투자 등 협업을 위한 다양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으며, 조만간 피스를 통한 상품 발행, 선박금융 등 새로운 서비스 상품 발행을 위한 준비를 마치면 양사의 구체적인 시너지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