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최창환 기자] HBO 다큐멘터리 ‘머니 일렉트릭 : 비트코인 미스터리’ 가 8일 방영될 예정인 가운데, 이미 작고한 두 인물이 강력한 사토시 후보로 점쳐지고 있다.
렌 새서먼(Len Sassaman)과 할 피니(Hal Finny)다. 폴리마켓에서 유력 후보로 점쳐지는 두 인물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완전히 다르다.
렌 새서먼은 우울증과 신경장애로 고생한 끝에 2011년 7월 3일 스스로 비극적인 생을 마무리 했다.
할 피니는 2014년 8월 28일 루 게릭 병으로 사망했다. 그는 루게릭 병이 걸린 뒤에도 눈의 신호로 코딩을 하고, 죽은 뒤 치료와 부활을 꿈꾸며 시신을 냉동 보관토록 했다.
누가 비트코인 정신에 가까운 사람일까? 탈중앙, 프라이버시 보호를 보장하는 혁신적인 화폐 비트코인에 기반한 미래를 꿈꾼 사람은 누구일까?
두 사람 모두 비트코인 정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렌 새서먼은 이상을 지키다 31세에 생을 마감한 프라이버시 운동가이다. 프라이버시 보호와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쳤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반면 할 피니는 암호화폐(가상자산)와 기술에 대한 낙관적인 믿음을 가지고 영생을 꿈꾸며 미래를 바라봤다.
이 두 인물은 비트코인의 가치와 철학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기여했으며, 그들의 삶은 비트코인의 정신을 해석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렌 세서먼은 암호학과 프라이버시 보호에 헌신하며, GnuPG와 PGP 프로젝트 같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소프트웨어와 프로젝트에 기여했다. 그는 이메일 익명화 시스템을 개발하는 등 암호화 기술과 프라이버시 보호에 깊이 관여했다. 이는 비트코인의 핵심 가치와 일맥상통한다. 비트코인은 중앙집권적인 금융 시스템에서 벗어나 개인이 자율적으로 자산을 관리할 수 있도록 설계된 탈중앙 화폐이기 때문이다.
세서먼은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강조했다. 이는 비트코인이 중앙 권력에 대한 대안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설계된 원리와 일치한다. 그러나 세서먼은 자신이 추구했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속에서 고통을 겪었고,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과연 그가 비트코인의 창시자인 사토시 나카모토였을까? 세서먼의 행동은 사토시가 보여준 행동과는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사토시는 위키리크스 사건에서 현실과 이상 사이의 타협을 선택했다.
2010년 12월 위키리크스에 대한 비트코인 지원 움직임에 대해 사토시는 2010년 12월 5일 이메일을 통해 반대의견을 표시했다(출처:사토시의 서)
“안됩니다. (미국 정부에) 덤벼보라고 하지 마세요. 저는 위키리크스에 비트코인을 사용하지 말라는 의견을 전하기 위해 이 호소문을 작성중입니다. 비트코인은 아직 유아기 상태의 베타커뮤니티입니다. 당신은 주머니속 잔돈보다 더 큰 돈을 만들지 못할 것이고, 지금 단계에서 당신이 불러올 열기가 비트코인 커뮤니티를 파괴할 것 같습니다”라고 우려했다.
2010년 12월 11일, 위키리크스가 미국 정부의 제재를 피해 비트코인을 기부받기 시작했다.
그는 2011년 4월 16일 사라졌다. 위키리크스에 비트코인을 지원한 행동에 대해 “다른 상황에서 이런 관심을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위키리크스가 말벌통을 걷어 차고 이제 그 벌 때가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고 잠적 이유를 설명했다.
사토시는 현실 속의 정치적 도전 앞에서 타협하고 물러나는 길을 택한 현실주의자다. 이상을 꿈꾸지만 현실과 타협하는 사토시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보여지지 않는다.
할 피니는 비트코인의 첫 거래를 사토시 나카모토와 함께한 인물로, 암호화폐와 기술에 대한 신념이 강했다. 그는 비트코인의 잠재력을 믿었으며, 비트코인의 성공적인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피니는 루게릭병(ALS) 진단을 받고도 기술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고, 자신의 시신을 냉동 보존하며 언젠가 기술이 발전하면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이는 기술을 통해 인류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바라본 피니의 신념을 잘 보여준다.
피니는 비트코인을 단순한 금융 혁신이 아닌 기술을 통한 인류의 진보라는 더 큰 틀에서 바라봤다. 그의 낙관주의는 비트코인의 핵심 정신, 즉 기술 혁신을 통해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확장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비전과 맞닿아 있다. 그는 기술 발전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탈중앙화된 비트코인으로 더 나은 미래를 꿈꾼 사토시의 모습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할 피니와 더 닮았다면 지나친 얘기일까.
사토시 나카모토가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4년 3월 7일이다. ‘도리안 나카모토(Dorian Nakamoto)’가 사토시라는 주장이 뉴스위크에 의해 보도된 후다.
사토시는 2014년 3월 7일, 비트코인 개발자 포럼에 예전에 사용하던 이메일을 이용해 “나는 도리안 나카모토가 아니다” 라는 간단한 메시지를 남겼다.
이 이메일은 지금까지 사토시의 마지막 편지로 여겨지고 있다.
2011년 7월 3일 사망한 렌 세서먼이 남길 수 없는 기록이다. 2014년 8월 18일 사망한 할 피니가 루게릭 병으로 고생하면서 젖 먹던 힘까지 내서 올렸다면 가능한 일이다. 할 피니는 2013년 3월 19일 비트코인과 자신의 관계를 설명한 그의 마지막 편지에서 코딩도 하고 힘들지만 잘 지내고 있다고 작별 인사를 했다.
할 피니가 사망한 이후 호주 프로그래머 크레이그 라이트는 2016년 자신이 2008년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이름으로 비트코인 백서를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나왔다. 사토시는 여기에 대해 응답하지 않았다.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망했기 때문에.
나라면 폴리마켓에서 할 피니에게 배팅하겠다. 돈을 잃더라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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