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서미희 기자] 금융권에서는 최근 호실적을 기록하고 있는 은행장들의 연임이 대체로 예상되지만, 잇따른 금융사고로 책임론에 휘말린 조병규 우리은행장과 이석용 NH농협은행장의 거취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농협)는 지난달부터 자회사 대표이사 후보추천위원회를 열고 승계 작업을 시작했다. 이재근 국민은행장, 정상혁 신한은행장, 이승열 하나은행장, 조병규 우리은행장, 이석용 NH농협은행장 모두 연말에 임기가 만료된다.
일반적으로 은행장들의 연임 여부는 재무 성과가 가장 중요한 변수로 꼽힌다.
올해 경영 성과는 5대 은행 모두 긍정적이었다.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8조2505억원으로 지난해 동기(8조969억원) 대비 1.9% 증가했으며, 이자 이익은 21조612억원으로 2.8% 늘어났다.
지난 1분기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에서 대규모 손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출 관련 이자 이익으로 이를 상쇄했다. △국민은행 5조1328억원 △신한은행 4조3798억원 △농협은행 3조9146억원 △하나은행 3조8824억원 △우리은행 3조7516억원 순이다.
특히 조병규 우리은행장과 이석용 농협은쟁장의 연임 여부가 큰 관심사다. 이들 금융사는 금융당국으로부터 내부 통제와 지배구조 문제로 지적을 받으며 홍역을 치렀다. 최근 우리은행에서는 손태승 전 회장 관련 부당대출 사건 등 금융사고가 잇따르며 조 행장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과거의 대출 문제지만 현재 경영진도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김병환 금융위원장 또한 “현재 경영진이 깊은 책임감을 느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이들 은행과 달리 신한은행, 하나은행은 횡령이나 배임 사고가 발생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내부통제 평가에서 자유로울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금융감독원장과 금융위원장의 발언에서 알 수 있듯 금융당국이 경영진의 내부통제 책임을 강조하는 점도 인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부터 시행된 ‘지배구조 모범관행’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은행들은 최고경영자의 자격 요건을 구체적으로 정의해야 한다. 또한 법률상 필수 요건 외에도 도덕성, 업무 전문성, 조직 관리 역량 등 각 항목에 대한 세부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 신한은행장, 하나은행장 연임 가능성 높아
특히 정상혁(60) 신한은행장은 연임 가능성이 높게 전망되고 있다. 정상혁 은행장은 지난해 2월 취임 이후 ‘영업통’으로서의 면모를 확실히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해 2분기 은행권에서 당기순이익 1위를 두 번째 연속 기록하며 리딩뱅크 타이틀을 확고히 했다.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조직 안정에 집중하고 있는 만큼 연임에 대한 우려는 크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신한은행은 당기순이익 3조677억원을 기록, 하나은행(3조4766억원)과 KB국민은행(3조2615억원)에 뒤처졌다. 하지만 올해 1분기에는 리딩뱅크 타이틀을 되찾았고 상반기까지 시중은행 실적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신한은행의 원화 대출금은 298조1831억원으로 지난해 말의 290조3363억원 대비 약 7조8000억원이 증가했다. 기업대출에서만 6조3000억원이 증가했다.
또한 내부 통제 강화를 통해 조직을 안정적으로 이끌어낸 점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신한금융지주는 최근 이사회를 통해 자회사 최고경영자 후보 추천 프로세스를 개정했으며, 다음 달까지 내외부 후보군에 대한 승계 후보군 선정을 완료할 계획이다. 통상 최종 후보는 12월 중순께 발표되고, 각 자회사 이사회를 통해 취임이 이뤄져 왔다.
신한은행은 2024년 6월 말 기준 연결재무제표에서 자산이 542조5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원화 대출채권은 314조9000억원, 외화 대출금은 43조1000억원으로 운용되고 있다. 원화 예수금은 308조9000억원, 외화 예수금은 54조7000억원으로 나타났다. 대출 종류별로는 기업대출이 중심이 되어 증가세를 보인 반면, 가계대출은 최근 금융당국의 억제 기조로 인해 성장세가 소폭 둔화된 상황이다.
이승열 하나은행장은 취임 첫 해인 지난해 당기순이익 1위를 기록한 뒤 올해까지도 양호한 실적을 유지하며 자산관리, 기업금융, 외환 부문에서 강점을 발휘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지난달 25일 은행 임원 후보 추천위원회를 열어 은행장 선임 절차를 시작했다.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임기가 내년 3월 말까지이기 때문에, 연임 여부도 올해 말에 결정된다.
하나은행은 2022년에 2조986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며 부동의 리딩뱅크인 KB국민은행(2조9082억원)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이어 이듬해 다시 한 번 리딩뱅크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3조2922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달성하며, 2위인 KB국민은행(3조11억원)을 따돌렸다. 2위와의 격차도 약 2900억원으로, 전년의 780억원보다 3배 이상 커졌다.
하나은행은 2014년부터 대기업의 신용리스크 및 포트폴리오 최적화를 위해 대기업 대출 비중을 축소하고 있는 한편, 중소기업 대출 중에서도 소호대출을 중심으로 확대하고 있다.
# ‘3연임 도전 중’ 이재근 국민은행장
이재근(58) 국민은행장은 현재 5대 은행장 중 유일하게 3연임에 도전하고 있다.
이재근 은행장은 2022년 1월 취임해 2년의 임기 수행 뒤, 지난해 11월부터 1년의 추가 임기를 보내는 중이다. 직전의 허인 전 행장이 3연임을 한 사례가 있어 이 행장 역시 같은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경영 성과 또한 긍정적이다. 취임 첫해인 2022년에는 2021년 대비 15.6% 증가한 2조996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전년대비 8.9% 더 늘어난 3조2615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국민은행은 지난 6월 말 기준 요구불예금 잔액이 전년 대비 4.5% 증가한 153조1000억 원을 기록했으며, 주택담보대출 잔액 역시 11.4% 증가하는 성과를 냈다. 올해 역시 가계대출과 기업대출 성장에 힘입어 호실적이 점쳐진다.
다만 하나은행에 리딩뱅크 자리를 내준 점, 은행권 내 홍콩 ELS 판매 규모가 가장 큰 점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올해 상반기 100억원대 대형 대출 배임 사고가 3건 발생한 것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 조병구 우리은행장 연임 불투명…부당대출 등 금융사고 산적
조병규(59) 우리은행장은 지난해 7월 취임하면서 전 행장의 잔여 임기를 승계했지만, 올해 말까지 채우더라도 임기는 2년이 되지 않는다. 지난달 우리금융의 정기 이사회가 열리면서 계열사 CEO 선임 절차가 본격화됐다. 우리금융 이사회는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모범관행에 따라 임기 만료 3개월 전부터 경영 승계 절차를 시작한다.
우리금융은 14개 계열사 중 7개 CEO의 임기가 곧 만료된다. 올해 내부 통제 부실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병구 은행장은 부당대출 사태로 인한 현 경영진에 대한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10일 금융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다. 주요 금융그룹 회장이 국정감사에서 증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금융은 올해 1월 친인척이 우리은행에서 대출이 거절되자, 우리은행 출신의 계열사 임직원이 저축은행과 캐피탈을 통해 대출을 승인해줬다. 이 과정에서 처남의 회사에 재취업한 우리은행 출신 직원이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우리금융캐피탈은 2022년 10월21일, 손 전 회장의 장인이 대표이사로 있던 B법인에 7억원 규모의 부동산 담보 대출을 승인했다. 대출금의 일부는 손 전 회장의 처남의 배우자 계좌로 송금된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 해인 10월30일 해당 법인에 대한 만기 연장 과정에서, 우리은행 출신 본부장이 소속된 여신위원회는 신용등급 악화와 담보물 시세 하락에도 불구하고 채권 보전 조치 없이 만기 연장을 승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은 “조사나 수사 결과가 나오면 저와 은행장, 임직원 모두 그에 맞는 조치와 절차를 겸허하게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우리은행은 지난해 하반기 시중은행 중 기업대출 증가 1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기업대출은 전년 대비 8% 증가한 170조원을 달성했다. 우리은행의 영업 실적을 살펴보면, 이자부문에서 5조6172억원, 수수료부문에서 5522억원, 신탁부문에서 1139억원을 기록했다. 기타 부문에서의 손실을 포함한 총 이익은 5조5310억원이다. 신탁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2%로, 앞으로 비이자 이익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
# 올해 공시된 금융사고만 다섯 건…10일 국정감사 증인 출석하는 이석용 NH농협은행장
이석용(59) NH농협은행장도 2년 임기가 종료를 앞두고 있지만 입지가 좁다. 농협은행장들의 연임이 드문 편이기 때문이다. 이석준 NH농협금융지주 회장 역시 올해 말까지 임기를 마칠 예정이다.
이석용 NH농협은행장은 10일 22대 국회 첫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다. 농협은행은 올해만 4건 이상의 금융사고가 발생해 이 은행장의 국감 출석은 예상됐었다.
농협은행에서 발생한 100억원 규모의 횡령 사건을 포함한 반복적인 금융사고와 지배구조 문제들이 증인 채택의 주요 배경으로 지적되고 있다. 국정감사에서는 이 행장의 내부통제 책임을 물어 집중적인 질타를 받을 예정이다.
올해 공시된 농협은행의 금융사고는 다섯 건이다. 지난 8월 서울의 명동지점에서 117억원 규모의 부당여신 거래가 발생했고, 5월에는 공문서를 위조한 51억원 규모의 업무상 배임과 10억원 규모 초과 대출로 인한 업무상 배임 등 두 건을 추가 공시했다. 3월에는 부동산 담보 대출 관련 배임 사건이 발생했다. 2월에는 허위 매매 계약서를 이용한 109억원 규모의 부당대출 사건이 있었다.
여기에 더해 농협은행은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하루 전, 올해 들어서 다섯 번째 금융사고를 공시했다. 은행 측은 자체 감사 과정에서 이상 거래를 발견했다고 설명했지만, 금융감독원은 수사 결과에 따라 추가 검사를 진행할지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은행은 부동산 담보 대출의 적정성 여부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140억원 규모의 제3자 사기로 의심되는 이상 거래를 발견해 지난 9일 수사 기관에 고소했다고 공시했다.
이석용 행장은 지난 6월 내부통제 방안을 구체적으로 수립하겠다고 밝혔지만, 이처럼 금융사고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우리은행, 농협은행의 부당 대출 사건이 큰 이슈가 되고 있는 만큼 이들 은행장의 연임은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은행장들의 연임 여부는 재무 성과와 금융사고 등 내부 통제 관리 능력에 따라 크게 좌우될 것이다. 지주 회장과 이사회의 신임 여부, 전체적인 경영 환경 또한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같이 보면 좋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