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강영진 기자] 역대 대선 후보들이 그랬던 것처럼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도 곤란한 질문에 답변을 얼버무리고 대신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는데 능숙하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여러분의 고통을 나도 느낀다”는 말로 에이즈 확산을 끝내기 위한 정책을 추궁하는 질문에 답변을 회피한 것으로 유명하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기후 변화에 대한 질문을 당파적 주장이라고 공격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백악관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는 대신 소셜 미디어로 자신의 메시지를 내보내곤 했다.
해리스 부통령이 이번 주 이런 재능을 선보였다. CBS “60분(60 Minutes)” 프로그램에서 해리스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대해 걱정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으며 3조 달러 규모의 경제부흥 공약 재원 조달 방안에도 답하기를 회피했다.
ABC 방송 “더 뷰(The View)”에서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허리케인 피해 지원에 대해 자신을 비판한 것과 관련해 그가 당파적 인물임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을 돌렸다. 시리우스XM(SiriusXM) 프로그램 진행자가 리즈 체니 전 공화당 의원을 각료로 쓰겠느냐고 묻자 답변을 하지 않은 채 “내가 승리해야 한다”고만 거듭 강조했다.
해리스는 방어적 입장에 서게 되는 사안에서 말을 돌리는데 능란하다.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와 대선 토론회에서 보여준 것처럼 질문을 던져 정적을 자극하는 식으로 답하는 것이다.
# 검사 출신으로 주장과 반박에 능숙해
검사 출신인 해리스는 법률가로서 주장과 반박에 능하다. 답변을 우회하고 비켜가기 일쑤다. 질문의 본질에는 답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주장을 열정적으로 펴 청중들이 질문에 답한 것으로 느끼게 만든다. 자신의 입장을 상세하게 밝히지는 않고 진보와 포용을 중시한다고 강조하는 식이다.
이 같은 말솜씨 때문에 일부 유권자들은 해리스의 정책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인상을 받기도 한다. 이는 아직 지지후보를 정하지 못한 유권자들을 끌어들이는데 약점이 되기도 한다.
트럼프의 대응방식은 해리스와는 대조적이다. 일반적인 정치 대화의 규범을 깨트리면서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일삼는다. 10년도 넘게 질문에 답하는 대신 횡설수설하며 답변을 회피한다. 마구잡이로 과장하고 허위사실을 주장한다. 트럼프는 지난 5주 동안 30여 매체와 인터뷰를 모두 보수 매체와만 했다.
이번 주 자신이 가자 지구를 방문한 적이 있다고 허위 주장을 펴면서 자신이 집권하면 전쟁을 며칠 내로 끝낼 것이라고 말하는 트럼프와 해리스를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해리스는 트럼프에 비해 유권자들 사이에 인지도에서 불리한 것으로 나타난다. 지난달 NYT/시에나대 여론조사에서 해리스에 대해 잘 모른다는 유권자가 4명 중 1명인데 비해 트럼프에 대해선 10명 중 1명만 잘 모른다고 답한 것이다.
해리스에 대해 잘 모른다는 답을 한 유권자들은 주로 젊은 층과 흑인 및 히스패닉이다.
# 해리스 잘 모른다는 젊은 층, 흑인, 히스패닉 설득에 주력
해리스는 이들의 설득에 집중하고 있다. Z세대 및 밀레니얼 여성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좌담 팟캐스트 “콜 허 대디(Call Her Daddy)”에 출연해 JD 밴스 트럼프 러닝메이트의 “자식 없는 고양이 맘” 발언을 들어 “사악한 발언”이라고 공격한 것이 대표적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선거 전략가인 데이비드 액셀로드는 “해리스가 대선 행보를 시작한 초기보다 훨씬 잘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해리스는 “60분” 프로그램에서 3조 달러의 경제 공약 재원 마련 방안을 추궁하는 사회자에 중산층이 혜택을 받게 될 것이라는 답으로 대신했다. 사회자가 계속 압박하자 고소득층 세금을 올려 충당할 것이라고 했고 사회자가 의회 동의가 어려울 것이라고 반박하자 그래서 선거에서 이기려한다고 강조했다.
해리스는 “나는 근시안적으로 미국 경제를 강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거 아느냐. 나는 공복으로 일해 왔다. 잘 알지 않느냐. 또 나는 자본주의자다. 따라서 정부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고 답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미국의 동의를 받지 않고 레바논을 침공한 것과 관련해 그를 제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사회자 질문에 해리스가 “계속 노력하고 있다”고 답하자 사회자가 “네타냐후가 말을 듣지 않는다”면서 반박했다. 그러자 해리스는 미 정부가 전쟁 종식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같은 답변을 했다. 사회자가 네타냐후를 “진정한 동맹”으로 보느냐고 재차 압박하자 해리스가 질문을 “미안하지만, ‘미국인들과 이스라엘 국민들 사이에 동맹이 중요하느냐’는 질문으로 바꿔야 한다며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는 것”이라고 말해 분위기를 장악했다.
해리스의 답변은 미국 외교정책에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는 내용이다. 47대 대통령이 될 수도 있는 해리스가 네타냐후 총리가 미국의 동맹이라고 규정하길 피하면서 매끄러운 말솜씨로 대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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