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롤로 브레차… 호텔·레스토랑도 운영
두번째 방문… 참치·엔초비 소스의 육회 맛나
바롤로 중심가 굽어보며 와인 즐길 수 있어
[블록미디어=권은중 전문기자] 바롤로를 방문하면 내가 빼먹지 않고 방문하는 와이너리가 있다. 브레차다.
브레차는 한국에서도 자주 먹는 바롤로를 생산하는 와이너리다. 두껍지 않고 발랄한 바롤로를 만든다. 물론 칸누비나 리스테처럼 비싼 밭에서 나오는 바롤로도 있지만 10만원 안쪽에서 즐길 수 있는 가성비 바롤로가 유명하다. 그래서 내가 와인강연에 자주 들고가는 와인이다.
브레차의 장점은 와인에만 있지 않다. 브레차는 바롤로 중심가와 이어지는 언덕에 호텔과 레스트로랑을 운영하고 있다. 호텔은 50실 정도의 크지 않은 부티크 호텔 규모다. 그런데 규모와 맞지 않게 이 호텔에는 아주 커다랗고 멋진 수영장이 있다. 하얗고 파랗다.
늘 여길 오면-신기하게 매번 올 때마다 9월에 오게 된다-저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면서 바롤로를 내려보며 바롤로를 마셔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바롤로는 프랑스 보르도처럼 지명인 동시에 와인 명이기도 하다). 하지만 호텔 가격은 그렇게 저렴하지는 않다. 1박에 150~200유로 수준이다. 하지만 여기서 딱 사흘만 묵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이곳 레스토랑을 자주 오는 것은 근사한 호텔 수영장 때문만은 아니다. 이곳에서는 바롤로 성과 바롤로 언덕 그리고 바롤로 중심가가 잘 보인다. 화이트 트러플로 유명한 알바와 그리스 극장으로 유명한 타오르미나만큼 유명한 바롤로를 느긋하게 보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다. 서울로 친다면 광화문에 있는 멋진 호텔과 비슷하다.
그리고 이 호텔의 진짜 가치는 바롤로에서 가장 고급 비싼 포도를 생산하는 싱글 빈야드인 리스테(Liste)와 칸누비(Cannubi)와 아주 가깝다는 것이다. 이 밭들은 바롤로 시내 북쪽의 햇빛이 잘드는 구릉에 자리잡고 있다. 운이 좋으면 이 포도를 따서 다듬어 와인을 담는 역동적인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이 호텔 지하에는 와이너리와 와인 창고가 자라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롤로는 와인의 자부심이 넘쳐나는 만큼 이탈리아 관광지에서 하는 극성스러운 바가지도 없다. 물론 영리한 바가지는 있다. 기념품 숍에서 파는 브레차는 50유로쯤 하는데 이는 브레차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파는 와인 가격보다 비싸다.
사냥한 새 간과 함께 즐긴 브레차 바롤로
한마디로 이 호텔의 음식이나 와인 가격은 가성비가 아주 뛰어나다. 레스토랑인데 불구하고 좋은 빈티지의 바롤로가 50유로를 하지 않는다. 내가 이집에 오면 가장 먼저 시키는 요리가 사냥한 토끼나 새의 간요리다. 사냥한 짐승 간의 텁텁함은 바롤로에 숨겨진 맛인 단맛을 끌어낸다. 그래서 바롤로가 정말 실크처럼 부드럽게 느껴진다. 이날은 사냥한 새의 간 파테가 나왔다. 하지만 같이 간 사람들은 간과 바롤로의 묘미를 잡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2인분이나 시킨 간을 다 먹어야 했다. 순대 간도 그렇지만 간은 한 두점 먹을 떄가 맛난거지 간만 먹으면 퍽퍽하기 짝이 없다.
일행들이 열광한 음식은 송아지 육회였다. 원래 이탈리아식 육회-바투타 디 비텔로-는 레몬즙과 올리브유 그리고 소금말고는 별다른 소스를 올리지 않는다. 여기에 약간의 루콜라(영어명 아르굴라)를 올리는 게 전부다.
하지만 이 집 육회는 멸치와 참치를 섞어서 살짝 얹었다. 톤나 비텔로라는 피에몬테 전통음식을 변형한 것으로 보인다. 톤나 비텔로는 통조림 참치살과 계란 노른자를 섞은 소스에 구운 송아지 고기를 싸먹는 음식이다. 소고기 참치마요를 생각하면 된다. 나와 일행들은 지금까지 미슐랭 레스토랑 여러곳을 가서 육회를 먹어 봤지만 모두들 서민적인 플레이팅의 브레차 레스토랑의 육회가 가장 맛있다고 입을 모았다. 나는 미슐랭 원스타인 마시모 카이유 레스토랑의 맛이 가장 맛났지만 말이다.
우리가 브레차에 간 날의 날씨는 쾌청했지만 매우 더웠다. 그런데 송아지 고기 살이 아주 차가웠다. 살짝 얼린 것 같았다. 이탈리아에서 원산지가 인증되는 DOP(원산지 인증 제도) 송아지 고기는 도축과 정형 후 진공 포장돼 냉장 유통된다. 이런 방식으로 혹시 있을 감염을 막는 것이다.
바롤로, 참치·멸치소스 육회와 궁합 좋아
그런데 이날 먹은 고기는 그것보다 좀더 차가웠다. 하지만 얼린 고기는 아니었다. 포유류나 조류의 살은 얼리면 조직이 다 파괴돼 다시 녹일 경우 수분이 빠져나오기 때문에 육회로 먹을 수가 없다. 그래서 오묘했다. 우리는 순식간에 한접시를 비웠고 한 접시를 추가로 시켰다. 육회를 즐기지 않는 나도 이 새로운 소스에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요리에 열광하다보니 새로운 요리인 토끼고기를 시켰다. 한국에서는 잘 먹지 않지만 이탈리아 북부에서는 사냥문화의 전통으로 아직도 토끼고기를 즐긴다. 하지만 토끼고기는 담백하기만 해서 바롤로의 진한 맛에 묻혀버렸다. 오크 숙성한 진한 화이트와 즐겨야 했다. 혹은 고기를 좀더 진한 육향과 소스의 소고기나 양고기를 주문하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을 남겨야 했다.
* 권은중 전문기자는 <한겨레> <문화일보> 기자로 20여 년 일하다 50세에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의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에 유학을 다녀왔다. 귀국 후 <경향신문>, <연합뉴스> 등에 음식과 와인 칼럼을 써왔고, 관련 강연을 해왔다. 『와인은 참치 마요』, 『파스타에서 이탈리아를 맛보다』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