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 김민정 특파원 =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제조 회사 ASML의 실망스러운 실적 전망의 여파가 반도체 전 업종으로 번지고 있다. 금융시장은 이 같은 현상이 비(非)인공지능(AI) 반도체에 대한 전반적인 수요 부진 때문인지, 업체들의 과잉설비 문제인지 가늠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16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전날 ASML의 실적 공개 이후 뉴욕증시에서 거래되는 반도체 기업들과 아시아 대형 반도체 기업들의 시가총액 증발액은 무려 4200억 달러(572조 원)에 달했다.
전날 ASML은 기술적 오류로 하루 일찍 공개한 분기 실적 보고서에서 2025년 순매출액이 300억~350억 유로(약 44조6000억~52조 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 2022년 ‘인베스터 데이’에 밝힌 가이던스의 하단 부분에 해당한다. ASML이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는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인 엔비디아와 TSMC 등 주요 반도체 제조사에서 사용된다.
ASML의 발표에 전 세계 반도체 업체 주가는 요동쳤다. 하루 전만 해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엔비디아의 주가는 5% 가까이 하락했고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와 Arm 등 굵직한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 역시 일제히 내렸다. ASML의 주가는 유럽 증시에서 1998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급락했다. 아시아에서도 도쿄 일렉트론이 10% 급락했으며 TSMC도 3.3% 내렸다.
업계에서는 팬데믹 직후 급증했던 비 AI 반도체 수요가 당분간 부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씨티그룹의 아티프 말릭 애널리스트는 보고서에서 “비 AI 애플리케이션 부문의 둔화와 인텔의 지출 감축과 다른 요소에 의해 ASML의 약한 2025년 예측치는 예상됐었지만, 조정의 정도가 부정적인 서프라이즈였다”고 판단했다.
시장에서는 반도체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가 과도하며 문제가 ASML에만 국한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피보나치 애셋 매니지먼트 글로벌의 윤정인 최고경영자(CEO)는 “반도체 업체들이 전략적으로 ASML로부터 주문을 줄이고 있다고 보며 이것이 ASML의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이 같은 이유가 비용 감축인지 다른 전략적 이유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중국의 부양책이 반도체 수요 반등을 자극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분석가들은 반도체 기업들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당시 ASML의 값비싼 장비를 비축했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칩을 생산하는 데 능숙해져 반도체 공장에서 생산 과잉 현상이 일어나고 있을 가능성에도 주목한다. 분석 회사 테크인사이츠의 댄 허치슨 부회장은 “인텔과 TSMC, 삼성전자는 ASML 주문을 줄이고 있다”며 “이것은 그들이 충분한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허치슨 부회장에 따르면 반도체 공장 가동률이 올해 약 81% 정도이지만 제조사들은 이 비율이 90% 중반에 도달해야 장비를 구매하는 경향이 있다.
이날 반도체 주식들은 엇갈린 흐름을 보이고 있다. 미국 동부 시간 오전 11시 10분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는 전장보다 0.49% 오름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엔비디아와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각각 1.40%, 4.21% 반등 중이다. 나스닥에 상장된 ASML은 이날도 5.8%가 넘는 약세를 보이고 있으며 인텔과 퀄컴은 2.32%, 0.90% 밀렸다.
mj72284@newspim.com
같이 보면 좋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