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James Jung 기자] ‘호모 사피엔스’ 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신작 ‘넥서스’ 에서 석기시대 매머드 사냥에 나서는 원시인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원시인 부족은 당연히 매머드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알아야 했다. 그들이 주문을 외워서 매머드를 죽일 수 있다고 믿었다면 사냥은 실패했을 것이다.(중략) 사냥에 나서는 사람들은 죽음을 감수하고 큰 용기를 발휘할 필요도 있었다.”
‘넥서스’ 는 정보에 대한 역사 서술입니다. 하라리는 정보가 사실 또는 진실이라는 ‘순진한 생각’ 을 버리라고 합니다. 매머드 사냥에는 사실 외에도 사냥꾼들을 결속시키는 주술적 믿음이 필요했다는 겁니다.
매머드 앞에서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사냥꾼들을 결속시키는 ‘그 무엇’ 이 더 중요합니다. ‘그 무엇’ 은 실체가 없습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요.
‘밈코인 하고 자빠졌네‘ 라는 도발적 제목의 책에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넥서스’ 가 600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라면 ‘자빠졌네’ 는 200 페이지가 조금 넘는데요. 두 책이 놀랍도록 유사한 설명을 합니다.
‘자바졌네’ 에서는 “돈은 정보다” 라는 일론 머스크의 말을 인용하면서, 똑같이 원시인 얘기를 합니다.
“호랑이보다 느리고, 사자보다 약하며, 침패지보다 나무를 못 타는 허약한 인간이 동물의 왕국에 있어. 생존을 해야 해. 무리를 짓기 시작해. 혼자하던 사냥이나 낚시를 여럿이 하니까 굶는 날이 상대적으로 줄어.
운 좋으면 ‘고기’를 저장할 수도 있어. 배가 부르면 다른 걸 하고 싶어. 사냥을 더 잘 할 수 있게 해달라며 기원하는 뜻에서 동굴에 ‘그림’을 그려. 누가 붉은 색 고운 진흙으로 ‘물감’이라는 걸 만들었어.
옆동네 부족이 그 물감을 좀 달래. 어디서 ‘소식’을 들었나봐. 동굴에 그림을 그리니까, 사냥이 잘 된대. 물감을 주고, 생선을 몇 마리 받았어. 어라. 물물교환하러 온 부족장 여친이 조개껍질 목걸이를 하고 있네.
목걸이가 이쁘다는 ‘소식’이 부족 여성들 사이에 퍼지네. 물감을 주면서 이제는 생선과 ‘조개껍질’ 몇 개를 받기로 한 거야.”
원시인이 동굴에 그린 그림은 일종의 주술입니다. 사냥을 잘 하게 해 달라는 기원이죠. 종교적 믿음이 깔린 겁니다.
‘자빠졌네’ 에 등장하는 고기(생선), 그림, 물감, 소식, 조개껍질 중에 먹을 수 있을 것은 고기(생선) 밖에 없습니다. 나머지는 스토리로 묶일 때에만 의미가 있는 추상적인 것들입니다.
물감에서 시작한 이러한 추상적인 개념들이 나중에 자동차, 반도체, 인공지능으로 발전한다는 것이 ‘자빠졌네’ 저자의 주장입니다. 하라리도 비슷한 얘기를 합니다.
추상적인 개념을 하나의 이야기로 묶어내는 것, 다시 말해 스토리 안에 정보를 담는 것이 바로 돈이라는 겁니다.
‘자바졌네’ 를 좀 더 인용해 보겠습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육체적으로는 허약하기 짝이 없지만, 추상화 능력이 있어. 그림을 그리면 사냥이 잘된다는 믿음은 어디에 근거하지? 근거가 없어. 그렇게 해보니까 부족간에 단합이 되고, 커뮤니티가 똘똘 뭉치게 되고, 그러니까 생산성(사냥)이 올라가는 거야.
이때 물감이, 그림이, 커뮤니티를 결속시키는 힘이고, 그 소문이 옆부족에게도 알려지잖아. 인간이 동굴에 그림을 그린대, 라는 소문이 침팬치에게는 알려지지 않을거 아냐.
이 전체 정보의 흐름, 정보 전달의 전 과정에서 조개껍질이 교환이라는 행위의 매개로 등장한다고. 고기(생선)를 제외한 나머지 단어 전체가 다 돈이야. 조개껍질은 정보의 집적물이고. 그 체계 전체가 돈이라고. 돈을 번다는 것은 정보 흐름을 만든다는 뜻이야.”
‘넥서스’ 와 ‘자빠졌네’ 가 정확하게 같은 지점을 보여줍니다. 돈은 정보라는 것이죠. 하라리에 따르면 그 정보는 꼭 사실이거나 진실이 아니어도 됩니다. 가짜 정보도 때에 따라서는 돈이 됩니다.
‘밈코인 하고 자빠졌네‘ 책에는 결정적인 삽화가 한 장 실려 있습니다. 동굴 원시인 사이에 어쩐 일인지 롤렉스 시계가 놓여 있습니다. 아마도 타임머신을 타고 누군가 원시 시대로 갔는데 시계를 그냥 두고 온 모양입니다.
원시인들은 이 명품 시계를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롤렉스에 담겨진 서사, 스위스 명품 장인들이 한땀한땀 공들여 만든 최고급 시계라는 스토리, 초정밀 시계 기술의 집합체라는 정보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보가 있어야 돈(가치)이 됩니다. 다시 말해 돈은 그 자체로 정보입니다.
비트코인이 세상에 나온 지 16년, 암호화폐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고 있는데요. 밈코인도 그 중 하나입니다. 밈코인은 그야말로 스토리에 기반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그 생각을 커뮤니티에 퍼나르면, 생명력을 갖습니다. 도지코인이 그런 방식으로 암호화폐 시장에 자리 잡은 대표적인 밈코인입니다.
도지코인은 어떤 정보를 담고 있느냐구요? 도지코인에서 파생한 수 많은 밈(MEME) 이미지가 인터넷 공간과 모바일 공간에 넘쳐나는 것이 모조리 정보입니다. 그 중에는 진짜도 있고, 가짜도 있고 그냥 놀이도 있습니다. 해당 정보가 아무 쓸모가 없다구요?
매머드 사냥에 나서는 사냥꾼들이 동굴에 그림(밈)을 그리는 것은 처음부터 쓸모가 있었나요? 쓸모가 없지만 그래서 쓸모가 있는 것이 밈입니다. 인간은 밈을 창조하고 퍼뜨리면서 동물의 왕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밈코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수 천 개씩 만들어지고 있는데요. 우리는 매일매일 돈의 탄생을 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수 천 개 중에 어떤 것은 죽지 않고 살아서 도지코인처럼 장수하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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