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문정은 기자] 국내 채굴형 거래소들이 암호화폐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14일 오전 11시 30분 기준 거래소 순위 정보사이트 코인힐스에 따르면,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가운데 상위 5위 거래량 거래소들이 1위(빗썸)와 3위(업비트)를 제외하면 3개 거래소 모두 채굴형 거래소들이다.
코인빗은 업비트를 제치고 2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4위는 비트소닉, 5위와 6위 각각 캐셔레스트와 코인제스트가 차지했다. 기존 국내 3대 암호화폐 거래소로 꼽혔던 코인원과 국내 최초 암호화폐 거래소 코빗은 이들보다 저조한 거래량을 보이며 순위에서 밀렸다.
채굴형 거래소는 투자자가 암호화폐를 거래할 때 발생하는 수수료 중 일부를 거래소가 자체 발행한 토큰으로 이용자에게 환급해주는 방식을 채택한다. 즉, 채굴 방식이 ‘거래’고, 이 보상으로 지불한 거래 수수료만큼 동일한 가치를 거래소 자체 암호화폐로 받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거래 수수료가 0.1% 발생하는 채굴형 거래소가 있다고 하자. 투자자가 1000만원 어치를 매매했다면, 이에 0.1%인 1만원을 수수료를 내게 된다. 그리고 이 1만원 어치를 거래소가 발행한 토큰으로 받는다. 결국 투자자 스스로 거래를 활발히 해야 거래소 토큰을 많이 받게 되고, 그럴 수록 해당 토큰 가치도 올라간다. 거래량이 많아야 거래소도, 거래소 암호화폐도 살아남는 구조다. 투자자들이 거래량이 많이 발생하는 거래소를 쫓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망하고 또 생기는 채굴형 거래소
최초 채굴형 거래소는 ‘에프코인(FCOIN)’이다. 지난해 5월 설립된 에프코인은 투자자가 암호화폐를 거래할 때 발생하는 수수료를 자체 발행한 암호화폐인 ‘FT(에프코인 토큰)’로 되돌려줬다. 거래량이 급증하면서 FT가 대량으로 시장에 공급됐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지면 가격 하락은 예견된 수순이다. FT가격은 빠르게 급락했다. 결국 거래소 오픈 3개월 후인 8월 에프코인은 FT 발행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에프코인의 영향력은 지금도 유효하다. 국내 상위 거래량은 코인빗, 캐셔레스트, 코인제스트 등 모두 채굴형 거래소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익 공유’ ‘인센티브’ 처럼 거래소 성장에 따른 수익을 공유하겠다는 명분을 앞세운 신생 채굴형 거래소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초반 후발주 채굴형 거래소들은 에프코인이 보여준 문제점을 극복해 기존 자리잡은 암호화폐 거래소들을 따라잡겠다는 전략이었다. 한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 자회사 라인의 암호화폐 거래소 ‘비트박스’에서도 자체 코인 링크를 내놓았다”며 “빗썸이나 바이낸스, 업비트 등 기존 암호화폐 거래소들과 다른 경쟁력을 내세우기 위해 채굴형 거래소를 내놓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즉, 기존 대형 거래소들이 갖고 있는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후발 거래소들이 채굴형거래소 형태를 하나의 전략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비즈니스 전략보다 채굴형 거래소가 투자자와 거래소 운영자 사이에 ‘수익’이 된다는 인식이 전반에 깔려있다. 한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초반에 큰 수익을 기대하는 한국 투자자들의 성향도 작용했을 것”이라며 “실제 해외 투자자들에 비해 한국은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모든 암호화폐) 투자 비율이 높다”고 말했다. 또다른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도 “수요가 있으니 비슷한 채굴형 거래소들이 계속해서 생겨나는 것”이며 “특히 단기적으로 돈이 되니까 많이 생겨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먹튀 사례도 발생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에 벌어진 퓨어빗 사건이 대표적이다. 퓨어빗은 채굴형 거래소를 개설한다며 자체 암호화폐를 이더리움으로 사전판매하며 투자자들을 모집했다. 4일간 1만 3178개의 이더리움(EHT)을 투자금으로 모은 뒤, 사이트와 채팅방을 폐쇄했다. 당시 시세로 약 31억원 규모다.
◆ “결국 한계 있는 비즈니스”
물론 채굴형 거래소를 새로운 거래소 먹거리 발굴이나 비즈니스 모델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국내 한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현재 암호화폐 시장에 먹거리가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신사업을 발굴해야 하다보니, 채굴형 거래소에 주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존 채굴형 거래소 사업 모델에 새로운 마케팅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비즈니스를 확장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반면 리스크가 크고 지속 가능하지 못한 비즈니스 모델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우선 거래소가 자체 암호화폐를 발행해 벌어들인 수입을 마치 ‘초기 사업운영자금’ 처럼 운영하는 행태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신생 채굴형 거래소 가운데 자체 암호화폐를 ‘사전 판매’ 할 때가 있다. 거래소 오픈 전, 암호화폐 발행량을 정해놓고 이더리움 등을 받고 사전 판매하는 것이다. 이후 거래소가 오픈하면 자신들이 발행한 암호화폐를 거래소 기축통화로 활용한다는 등의 사업 계획을 내놓고 투자자들을 모은다. 대개 신생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벤처 수준의 기업 규모인데, 이들이 사전 판매 마케팅을 통해 운영자금을 모으는 격이다.
이에 대해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마치 크라우드 펀딩처럼 거래소를 운영하는 것인데, 운영 자금은 소액 투자자들에게 받는 것이 아니라 전문 기관에서 받아 책임있게 사용해야 한다”며 “기존 크라우드 펀딩은 제조나 게임 등 실체가 있는 것에 투자 했지만, 거래소는 실체도 없는 사업체”라고 쓴소리했다.
실제 이러한 사전판매를 진행하고 먹튀한 사례가 앞서 언급된 퓨어빗이다. 이에 대해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미필적 먹튀나 다름없다”며 “암호화폐를 발행하고나서 거래소가 돈을 갖고 튀거나 망하게 돼 ‘죄송하다’라고 하며 끝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거래량을 유도하는 자극적인 마케팅의 악순환이라는 점도 문제다. 거래소 암호화폐 가치를 유지하려면 계속해서 거래를 발생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바이백, 하한가 정책, 거래량 비례한 암호화폐 보상 이벤트 등이 대표적이다.
비트소닉은 5차에 걸쳐 하한가 정책을 적용한 바이백 이벤트를 실시했다. 바이백은 거래소가 약속한 시점에 거래소 자체 발행한 암호화폐를 정해진 물량만큼 사들이는 것이다. 비트소닉은 비트소닉코인(BSC) 바이백 이벤트 당시 정해진 가격 이하로는 암호화폐 가치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한가 정책도 적용했다.
하지만 비트소닉이 이러한 이벤트를 실시할 때마다 빠르게 정해진 물량이 소진돼, 미처 매도하지 못한 투자자들이 대거 나왔다. 5차 바이백 전, 비트소닉은 BSC를 2580원에 하한가 설정했다. 당시 미처 팔지 못해 물린 매도잔량만 현재 3848만 여개다. 약 1095억원이 거래소에 묶여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암호화폐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비트소닉 측에서도 매도 물량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며 “다른 암호화폐로 교환을 할 수 있는 등의 방안을 기다리고 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한계점들로 인해 채굴형 거래소 형태는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이 되기 힘들다는 시각이 나온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고팍스의 이준행 대표는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일 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며 “유의미한 거래소 거래량이 있고, 그렇지 않은 거래량이 있는데 단순히 공회전만 돌려서 생기는 거래량이라고 하면, 거래 효율성이나 투명성 등 거래소 본질 가치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단기적으로 채굴형 거래소가 반짝 수익을 거둘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법이나 브랜드 측면에서도 리스크가 커 고팍스는 고려하지 않는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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