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김진배 기자] 은행의 가상실명계좌 발급이 정지된 지 1년이 넘었다. 그동안 생겨난 거래소는 200곳에 달한다. 마땅한 규제안이 없어 거래소 개설이 누구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사이 불건전 거래소도 함께 늘었다. 당연히 투자자 피해도 늘었다. 업계는 시장이 사기판으로 인식돼 정부 지침을 준수하려는 건전한 업체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2019년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는 200곳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 은행에 실명가상계좌를 발급받아 운영하는 거래소는 단 네 곳(코빗, 코인원, 빗썸, 업비트)에 불과하다. 원화마켓을 운영하는 대부분의 거래소는 벌집계좌를 운영하고 있다.
벌집계좌는 거래소들에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1년이 넘도록 은행이 거래소에 실명 확인계좌 발급을 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운영을 위해서는 수익이 필요하고, 거래 활성화가 필요하다. 실명확인계좌를 위해 기다리던 거래소들은 운영이 어려워지자 법인계좌를 통해 원화마켓을 오픈했다.
분명히 벌집계좌가 불법은 아니다. 그렇다고 합법도 아니다. 법의 손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 있을 뿐이다. 문제는 규제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불법행위의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벌집계좌 형태로는 자금의 흐름을 명확히 체크할 수 없다. 자연스럽게 자금세탁의 우려가 있고 보이스피싱이나 해킹의 위험성에 노출되기 쉽다. 벌집계좌 자체의 문제다.
벌집계좌가 문제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거래소가 난립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 것이다. 운영이나 설립 규제가 없는 상황에서 원화서비스가 가능한 거래소까지 차릴 수 있게 되자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규제 없는 시장에는 당연히 불순 거래소가 생겨났고 그 결과 투자 피해도 늘었다. 펌핑&덤핑 문제부터 시세조작까지, 실제 투자피해가 발생하는 곳이 대부분 벌집계좌를 이용해 운영되는 중소거래소들인 이유다.
벌집계좌로 들어간 투자자의 자금은 보호받기 힘들다. 법적으로 법인계좌에 들어간 돈은 거래소의 소유가 된다. 이 경우 법인계좌에 입금한 고객은 법인에 대해 출금청구권을 취득하게 된다. 하지만 거래소가 출금을 해주지 않으면 소송을 통해 해결하는 방법밖엔 없다. 출금문제와 관련 유난히 중소거래소가 많이 언급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렇게 발생한 피해는 고스란히 업계로 돌아온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시장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은 더욱 매서워질 뿐이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준수해 적법하게 운영하려는 거래소들은 한숨만 내쉰다. 은행이 실명확인계좌를 열어주지 않는 현 상황에서 원화거래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벌집계좌가 필수지만 적법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험성이 따르는 것도 한 몫 한다. 한 거래소 관계자는 “은행과 이야기는 계속 하고 있지만 실명확인계좌는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면서 “생존을 위해 벌집계좌를 열어 우회적인 방식으로 운영하려 하니 적법성이 걸리고, 적법을 위해 실명확인계좌를 기다리자니 적자 때문에 운영을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 한 거래소는 벌집계좌 운영을 하지 않고 원화거래를 지원하지 않은 채 새로운 수익모델을 강구하다 위법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들은 후 거래소를 폐쇄했다. 암호화폐 거래를 적법한 틀 안으로 끌어들이려 했던 ‘규제’가 정작 법망을 우회하는 이들에게만 이득을 주는 ‘규제의 역설’을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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