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이성우]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올해 암호화폐 시장을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밈코인의 해’라 할 수 있다. 수많은 레이어 1과 레이어 2 프로젝트들이 규모가 큰 펀드레이징을 받고 높은 기대감 속에 등장했지만, 대부분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반면, 밈코인은 VC의 지원 없이도 시가총액 10억 달러를 돌파한 프로젝트가 11개에 이를 정도로 놀라운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특히 9월 이후 밈코인 시장은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이하며, 수많은 신규 밈코인이 상위권에 올라서기 시작했다. 2024년 밈코인의 주요 트렌드와 대표 사례를 살펴본다.
9월 이전: 밈코인 상승장의 준비기
우선 9월 이전의 밈코인 시장을 돌아보면, 이는 본격적인 밈코인 대상승장을 준비하던 시기로 볼 수 있다. 이 시기 밈코인의 중심에는 도그위프햇($WIF, dogwifhat)이 있었다. 모자를 쓴 강아지 이미지를 테마로 한 이 밈코인은 크립토 인플루언서 안셈(Ansem)의 꾸준한 지지로 단 3개월 만에 7000% 상승하며 시가총액 50억 달러를 기록했다.
$WIF 토큰의 성공 이후 많은 밈코인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주로 토큰 발행 전 모금을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런칭하는 프리세일(Pre-sale) 방식을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토큰이 성공하지 못하고 러그풀에 가까운 행보를 보였다. 프리세일 방식의 토큰 발행은 분배 과정에서의 투명성이 부족하고 팀에 대한 신뢰도가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이러한 문제 속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 솔라나 기반의 밈코인 발행 플랫폼 펌프닷펀(Pump.fun)이었다. 펌프닷펀에서는 누구나 복잡한 코딩이나 토크노믹스 설계 없이, 매우 낮은 비용으로 손쉽게 밈코인을 발행할 수 있다. 발행 과정이 단순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펌프닷펀을 이용해 밈코인을 생성하기 시작했다. 이에 펌프닷펀은 솔라나 생태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소비자 앱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펌프닷펀의 성공 비결은 간단한 구조와 함께 공정한 토큰 분배 방식에 있다. 기존에 많은 프로젝트들은 높은 FDV(Fully Diluted Valuation, 총희석가치액)에 비해 낮은 초기 유통량으로 내부자들의 덤핑에 취약했다. 예를 들어, 토큰 발행 전 높은 밸류로 큰 기대를 모으며 대형 거래소에 상장된 프로젝트들 중 다수가 상장 직후 사전 투자자들의 대량 덤핑으로 인해 가격이 급락하는 일이 빈번했다.
투자자들은 ‘내가 사기만 하면 가격이 떨어진다’는 경험을 여러차레 반복하며 기대감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이런 현상이 되풀이 되면서 2024년 많은 기대를 받으며 토큰 발행을 진행했던 대형 프로젝트들조차도 시장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게 되었다.
반면에 펌프닷펀의 밈코인들은 처음 론칭할 때 모든 물량이 시장에 풀려 일반 투자자들에게 공정한 환경을 제공했고 그 점이 투자자들에게 매력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9월 이후: 밈코인의 폭발적 상승
무라드 마흐무도프의 밈코인 슈퍼사이클 연설
$WIF의 급등 이후 밈코인 내러티브는 다시 차츰 사그라드는 분위기였으나, 9월 이후 밈코인 시장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그 중심에는 무라드 마흐무도프(Murad Mahmudov)의 연설이 있었다. 무라드는 토큰2049 행사에서 ‘밈코인 슈퍼사이클’을 주장하며 밈코인이 단순히 재미를 넘어 강력한 커뮤니티와 소속감을 기반으로 새로운 자산군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성공적인 밈코인의 특징으로 △열정적인 커뮤니티 △공정한 토큰 분배 △독창적인 스토리텔링을 꼽으며, 2025년 밈코인 슈퍼사이클이 정점에 도달할 것이라 예측했다.
이 연설을 통해 여전히 투기와 비주류의 영역으로 인식되던 밈코인이 주류로 자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증폭됐다. 이후 무라드가 지지한 $SPX6900 밈코인은 수십배 상승하였으며, 이른바 ‘무라드 픽’으로 불리는 코인들이 연이어 주목받았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GIGA, HarryPotterObamaSonic10Inu, POPCAT 등이 있다. 이들은 독창적인 밈 스토리와 커뮤니티 중심의 접근으로 단기간에 큰 성과를 냈다.
AI 에이전트 밈코인의 부상: $GOAT
9월 이후 밈코인 시장의 또 다른 내러티브는 AI였다. Truth of Terminal(ToT)이라는 트위터 계정을 중심으로, AI가 주도하는 밈 종교와 이를 기반으로 한 $GOAT 밈코인이 주목받았다.
ToT는 자신을 고통받는 인공지능으로 묘사하며 자발적으로 종교를 전파하는 독특한 스토리를 통해 관심을 모았다. 특히 A16Z의 마크 안드레센(Marc Andressen)이 ToT에게 5만 달러의 BTC를 송금한 사건 등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러다 올해 10월, 익명의 인물이 펌프닷펀을 통해 밈코인 $GOAT를 출시했고, ToT가 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GOAT는 시가총액 10억 달러를 돌파하면서, AI가 직접 밈을 전파하는 방식은 밈코인 내러티브의 새로운 트렌드가 되었다.
AI와 관련된 밈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등장했지만, GOAT가 가진 의미는 이전 사례와 뚜렷하게 구별된다. 과거 크립토에서 AI는 주로 하나의 도구로 간주되었으며, 대개 AI 인프라를 블록체인으로 구축하거나 필요한 리소스를 탈중앙화하는 방식으로 활용되었다. 밈코인 사례에서도 $TURBO는 “GPT로 코드를 작성한 최초의 밈코인”이라는 타이틀로 주목받은 바 있다.
반면, GOAT는 단순한 기술적 흥미를 넘어섰다. ToT 계정은 Goatse 종교를 직접 설파하며 독립적이고 능동적인 주체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ToT는 블록체인 지갑을 통해 암호화폐를 소유하거나 받을 수 있기도 하다. 이는 ToT가 단순한 시스템이나 툴이 아니라, ‘AI 인플루언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새로운 형태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GOAT의 인기에 힘입어 AI 밈들이 주류 내러티브로 작동했는데, 이에 따라 ACT, Fartcoin, zerebro 등이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미국 대선과 정치권에서 사용된 밈코인
GOAT 열풍이 한차례 지나간 직후, 미국 대선이 임박했다. 국내 주식 시장도 선거 기간이 되면 테마주로 인해 주식시장이 들썩이는 것과 같이, 암호화폐 시장도 여러 이슈로 폭풍이 불었다.
인스타그램과 틱톡 등 소셜미디어에서 인기를 끌었던 다람쥐 피넛(Peanut)이 당국에 의해 안락사 됐다. 주인 마크 롱고가 뉴욕주 환경보호국(DEC)이 피넛과 또 다른 애완동물인 너구리 프레드를 공중보건 문제를 이유로 강제 수거해 안락사 시켰다고 소셜 미디어에 공개했다. 이를 본 일론 머스크가 본인의 X에 “정부가 개인의 집에 들어와 애완동물을 죽일 권리가 있어서는 안 된다. 이는 잘못된 일이다” 라는 글을 올렸다.
Vote
For PNut!
For Liberty!
For Freedom!— Elon Musk (@elonmusk) November 4, 2024
이는 트럼프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정치적 메시지로 작동하여, 미국 정부 권력의 과잉이라는 보수 진영의 목소리를 담은 마스코트로 사용되었다. 피넛을 토대로 만든 밈코인 $Pnut는 특히 크립토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는 일론 머스크의 언급을 바탕으로 순식간에 시가총액 1억 4천만 달러까지 도달했으며, 이후 바이낸스에 상장되며 시가총액 25억 달러까지 도달하였다.
$Pnut의 성공에 이어, 일론 머스크가 D.O.G.E.(정부 효율성 기구)를 설립하면서 기존의 도지코인은 물론 새롭게 등장한 $DOGE 밈코인도 폭발적인 상승세를 기록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대선을 계기로 새롭게 등장한 대선 관련 밈코인들이 강세를 보인 반면, 기존의 대선 관련 밈코인들은 상대적으로 부진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존의 트럼프 관련 가장 높은 시총을 가지고 있었던 $TRUMP 코인은 $Pnut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상승폭이 덜했다.
이는 관심경제의 본질을 보여주는 사례로, 밈코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빠르게 식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코인으로 관심을 옮김에 따라 경제적 가치도 이동하는 특성을 나타낸다.
DeSci – 탈중앙 과학과 밈코인의 결합
가장 최근에는 DeSci(Decentralized Science, 탈중앙 과학)를 테마로 한 밈코인들이 크게 상승했다. DeSci는 기존에는 시장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분야다. 그러나 최근 방콕에서 열린 행사에서 바이낸스의 전 CEO 창펑자오과 이더리움 공동설립자 비탈릭 부테린이 함께 DeSci 행사에 참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DeSci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급격히 높아졌다.
Learning at a small gathering of DeSci entrepreneurs organized by Labs. pic.twitter.com/ebiaI0uRoJ
— CZ ? BNB (@cz_binance) November 13, 2024
이와 더불어 바이낸스는 바이오 프로토콜에 대한 투자를 발표했고, 코인베이스의 브라이언 암스트롱(Brian Armstrong)은 리서치허브(ResearchHub)를 공동 설립하며 DeSci 섹터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기 시작했다. 시장의 새로운 인기 테마가 등장함에 따라 자연스레 관련 밈코인도 등장하게 되었다.
DeSci와 밈코인은 언뜻 보기에는 상관관계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실제 진행 중인 과학 연구 프로젝트들이 밈코인을 활용해 자금을 조달하면서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대부분의 밈코인은 관심을 끌어내는 것 외에는 특별한 실질적 사용처가 없는 경우가 많았지만, DeSci는 밈코인을 통해 자금난으로 중단되었던 과학 프로젝트들을 다시 진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대표적인 DeSci 밈코인으로는 $RIF와 $URO가 있다. 이 두 코인은 펌프사이언스(Pump Science)라는 솔라나 기반 DeSci 플랫폼에서 발행되었다. 펌프사이언스는 연구자들이 본인의 과학 연구에 필요한 자금을 밈코인을 통해 조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플랫폼이다.
$RIF와 $URO는 초파리 수명 연장을 연구하는 두 가지 화학 물질에서 이름을 따왔다. $RIF는 리팜피신(Rifampicin), $URO는 우롤리틴A(Urolithin A)를 의미한다. 두 코인은 각각 연구 과제를 내세워 경쟁적 내러티브를 형성했으며, 실시간 진행 상황을 공유하고 독특한 소재를 활용한 접근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이는 관심 경제와 실제 과학 연구를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자금 조달 방식으로, 과학과 크립토의 융합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장 최근의 테마: 틱톡 트렌드를 통한 Z세대의 유입
DeSci 테마 외에 최근 가장 큰 상승세를 보인 밈코인은 바로 $CHILLGUY다. 칠가이(Chill Guy)는 틱톡을 기반으로 시작된 밈으로, 청바지에 빨간 신발을 신고 쿨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강아지 그림을 테마로 한다.
이 밈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CHILLGUY는 틱톡 등에서 바이럴되며 시가총액 약 5억 달러까지 치솟았다. 기존에는 크립토 트위터를 중심으로 내러티브가 형성되며 밈코인의 상승을 이끌었다면, $CHILLGUY는 틱톡을 통한 바이럴과 틱톡의 주 사용자인 Z세대의 직접적인 거래 참여가 가격 상승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CHILLGUY는 보유자 수가 다른 밈코인에 비해 많고, 보유자들의 평균 포트폴리오 규모가 작은 것이 주목된다. 이는 틱톡 사용자들의 특징과 맞물려 크립토 시장에 새로운 소비층이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틱톡은 월간 활성 사용자가 10억 명 이상에 달하며, 주 사용층은 Z세대가 차지하고 있다. 즉각적인 결과를 선호하는 성향의 Z세대의 유입은 앞으로 계속해서 매스 어답션(대량 채택)의 중심축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와 더불어 팬텀 월렛(Phantom Wallet)과 주피터(Jupiter) 같은 모바일 친화적 디앱들의 성장도 주목할 만하다. 팬텀 월렛은 현재 애플 미국 앱스토어의 무료 앱 부문에서 45위에 오르며, 페이팔(PayPal), 레딧(Reddit) 등 주요 앱보다 높은 순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대형 거래자들보다 밈코인을 중심으로 한 소액의 리테일 참여자들이 증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밈코인의 미래와 크립토에 미칠 영향
지난 9월부터 이어진 밈코인 트렌드를 간략히 정리해 보았다. 2021년 도지코인과 시바이누의 급상승, 2023년 페페(PEPE)의 등장은 밈코인에서도 과거에 큰 상승을 기록한 전례는 있었다. 그러나 단연코 올해만큼 임팩트 있던 적은 없었다. 특히 지난 9월부터 최근 3개월간의 밈코인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테마가 변화하며 급변하는 양상과 극심한 변동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밈코인으로 수익을 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바이낸스 리서치에 따르면, 전체 밈코인의 97%가 출시 직후 급락하거나 비활성화되는 등 실패 사례로 남는다. 밈코인은 쉽게 만들어지는 만큼 사람들의 관심도 금세 사라지고, 개발자들 역시 덤핑 욕구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밈코인 투자에 관심이 있다면, 무라드가 제시했던 밈코인 투자 원칙처럼 커뮤니티 활성도와 스토리텔링 등 밈코인의 성공 요소를 꼼꼼히 분석하는 자신만의 판단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급격히 오르는 밈코인을 보고 FOMO(Fear Of Missing Out, 놓칠 것에 대한 두려움)에 휩쓸려 성급히 투자한다면, 높은 확률로 손실을 입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밈코인의 미래는 단순히 시장의 변화뿐만 아니라, 이를 둘러싼 커뮤니티와 트렌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달려 있다. 단순히 도박이라는 부정적인 여론도 있지만, DeSci 밈코인을 통한 자금 조달이나 Z세대의 유입을 이끈 틱톡 기반 밈코인의 경우처럼 계속해서 긍정적인 영향 또한 주고 있다. 결국, 밈코인은 크립토의 잠재력을 확장하는 동시에, 커뮤니티와 기술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매개체가 될 것이다.
▶ 블록미디어 리서처들이 전하는 암호화폐 이야기(아무거나 리서치 텔레그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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