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집계좌는 말그대로 가상통화 거래를 위한 가상계좌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1월 가상계좌를 통한 가상거래를 금지한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그러자 후발 거래소들은 법인계좌를 만든 뒤 그 아래에 여러 개의 개인 가상계좌를 묶어 활용하는 이른바 ‘벌집계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암호화폐 업계에는 이미 익숙해진 가상계좌와 벌집계좌의 현황과 문제점, 전망을 3회에 걸쳐 진단한다. [편집자주]
[블록미디어 명정선 기자] 가상계좌는 기업이나 기관이 은행을 통해 자금 거래나 전자상거래 등 다양한 서비스를 연계하기 위해 만든 계좌다. 고객이 가상계좌로 입금하면 본인 여부를 입금자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전산코드, CMS 코드로 인식하는 것이다. 가상계좌의 장점은 고객의 이름 혹은 주문번호대로 다른 계좌번호가 부여되는만큼 누가 언제 입금했는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동명이인일 경우에도 입금자를 따로 확인하지 않고 빠르게 거래를 진행할 수 있다.
◆ 단순 거래 목적인 가상계좌를 금융거래에 오용..투자자 보호 어려워
문제는 가상계좌가 고객의 입금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서비스여서 자금이 실제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전혀 추적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입금자 명을 전산코드로 전환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금융실명제에 적용하기 쉽지 않다. 이를 금융거래에 악용하면 대포통장으로 사용될 수도 있고, 자금세탁이나 범죄에 오용될 수도 있다. 특히 가상통화 업자가 온라인 업체로 거짓 등록하고 수 십만개 혹은 통신판매 계좌를 만들 경우 정부 당국이 이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나아가 정부가 거래 업자의 계좌를 찾았다 하더라도 이를 규제할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것이 큰 문제다. 금융당국이 법인계좌로 연결된 가상통화 거래를 사실상 금지하는 ‘암호화폐 거래 실명제’를 실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현재 실명확인 가상계좌를 발급받은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는 업비트, 코인원, 코빗, 빗썸 등 4곳이다.
◆ 코인이즈 법원 판결 ‘변수’..후오비까지 ‘벌집계좌’
신규 가상계좌는 물론 벌집계좌도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변수가 터졌다. 서울중앙지법이 중소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인이즈가 NH농협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법인계좌의 입금정지 금지 가처분’을 인용한 것이다. 본안 판결이 나올 때까지 농협은행이 코인이즈 법인 계좌의 입금을 정지하면 안된다는 결정이었다. 신생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벌집계좌를 활용해 고객 유치에 나서기 시작하고, 글로벌 거래소인 후오비까지 가세하면서 다른 거래플랫폼도 벌집계좌 활용에 관심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판결이었다. 가상계좌의 자금세탁 또는 금융거래 위험과 관련 중형 거래소 관계자는 “은행을 통한 가상계좌를 받지 못했을 뿐 법인 계좌로 연계해 받을 때에도 몇 단계에 걸쳐 신분 확인 걸차를 거치고 있다”며 “거래소가 시스템을 강화해도 업계나 은행의 문턱이 높다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업계 관련 제도 마련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고팍스의 김현수 PR 디렉터는 “금융보안 시스템에 만전을 기한다 해도 현재로선 업계와 당국의 태도가 중요한 상황”이라며 “암호화폐 시장을 위해서라도 관련 법안 제도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암호화폐 관련 법안으로는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3월 ‘특정 금융거래 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해 현재 국회 정무위에 계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