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오수환 기자] 최근 국내 디지털자산(가상자산) 거래소들이 상승장을 틈타 코인 신규 상장을 늘리고 있다. 그러나 폐쇄적인 국내 시장 환경과 시장 조성자(Market Maker・MM) 부재로 인해 신규 자산들의 가격이 요동쳤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내 투자자들에게 가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 이후 원화 기준 빗썸의 가상자산 상장 수는 21개에 이르렀다. 같은 기간 업비트와 코인원도 각각 7개, 8개의 가상자산을 신규 상장했다. 지난 7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 시행 이후 신중한 태도를 보이던 거래소들이 트럼프 당선으로 촉발된 상승 랠리를 계기로 상장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 무브, 코인원 상장 1시간 만에 99만원 -> 5000원으로
이런 가운데 최근 코인원에 상장된 무브먼트(MOVE) 가격이 거래 개시 이후 급등락하는 일이 발생했다. 무브먼트는 지난 9일 오후 8시 코인원에서 기준가 215.3원에 거래를 시작했다. 거래 초반 적은 유동성으로 인해 거래가 되지 않던 무브먼트는 약 40분 뒤 99만8500원에 거래가 체결되며 기준가 대비 약 4600배 높은 가격에 매수가 이뤄졌다. 이후 가격이 급락하기 시작한 무브먼트는 거래 개시 1시간 만에 5000원 아래로 떨어졌다.
단시간 극심한 변동성을 보인 탓에 코인원에서 거래를 했던 투자자들이 상당한 손실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코인원이 운영하는 커뮤니티에는 무브먼트로 인한 손실을 인증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한 투자자는 “무브먼트가 코인원에 상장된 지 30분 뒤 거래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며 “이에 본인도 바로 매도할 목적으로 매수했지만, 체결 직후 가격이 20만원에서 10만원으로 급락했고 이후에도 하락이 계속됐다”고 말했다.
이어 “약 3~5분 만에 90% 가까이 폭락해 대응할 여유가 없었다”며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코인을 시작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 ‘무브사태’ 문제는 낮은 유동성⋯시세 변동 폭 키워
국내 투자자들이 극심한 변동성으로 피해를 입은 주요 원인으로 상장 초기 낮은 유동성이 지목됐다. 무브먼트는 메타(구 페이스북)가 개발한 프로그래밍 언어 무브를 활용한 이더리움 레이어2 프로젝트다. 지난 4월 3800만달러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하며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이에 업비트, 빗썸, 바이낸스 등 국・내외 거래소들이 무브먼트 상장을 예고했다. 하지만 무브먼트 재간이 토큰 출시와 상장이 동시에 진행하면서 거래소들이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무브먼트의 총 공급량은 100억개이지만 현재 유통량은 22억5000개에 불과하다. 유통 물량 대부분이 초기 투자자에게 할당돼, 거래소들이 초기 물량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코인원 사태를 지켜본 업비트와 빗썸은 거래 지원 시점을 다음 날인 10일 오전으로 연기했다.
# “폐쇄적 국내 환경…시장 조성자 필요해”
이번 사태는 낮은 유동성이 표면적인 이유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국내 디지털자산 거래업의 폐쇄적 환경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지난 2022년 시행된 트래블룰로 국내 거래소의 가상자산 이전(입출금) 절차가 엄격해지면서, 해외 거래소와의 차익 거래를 통한 가격 균형 조정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타이거리서치는 지난달 초 발행한 보고서에서 “국내 거래소는 규제로 인해 외국인 투자가 제한되고, 해외 간 가상자산 이동도 제약된 상황”이라며 “특히 국내 거래소는 나스닥이나 S&P와 같은 단일 중앙 거래소 체제가 아닌, 각 거래소가 독립적인 유동성 풀을 운영하고 있어 시장 전체 유동성이 분산되고, 개별 거래소의 거래 효율성이 저하된다”고 지적했다. 타이거리서치는 “이는 결국 시장의 구조적 비효율성을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무브먼트 상장 이후 11일 업비트와 빗썸에 상장한 매직에덴(ME)도 유동성에 주의를 기울이며 거래를 시작했지만, 상장 당시 해외 거래소보다 60% 이상 높은 가격 차이를 보이며 업비트에서 약 2만원까지 급등했다.
국내 디지털자산 거래소 업계는 출범 7년 넘었지만, 건전한 거래환경 조성보다는 이용자 보호를 내세운 규제만 강화되고 있다. 지난 7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가상자산법)이 시행되면서 유동성 공급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장 조성자도 금지됐다. 시행령과 함께 배포된 공개용 질의응답(Q&A)에서 금융위원회는 “가상자산에 대한 시장조성행위는 시세조종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물론 시장조성자는 거래량을 인위적으로 부풀리는 등 시장 교란 위험도 있지만, 대부분 시장조성 행위는 거래 유동성을 높이고 가격 안정화와 시장활성화에 기여하기에 자본시장법은 가상자산시장법과 달리 시장조성자를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홍푸른 디센트 대표 변호사는 “상장 초반에는 매수・매도가 몰리며 단기간 시세 변동이 극심하게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며 “유가 증권시장도 동일한 현상을 겪지만 시초가 대비 상・하한가 제한과 시장 조성자가 있어 그 변동성을 다소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가격 상・하한이 없는 가상자산 시장은 그 위험이 더 클 수 있다”며 “시장의 거래 안정성을 높이고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시장 조성자 활동에 대한 예외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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