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지훈 선임기자 = 경제는 대개 숫자로 표현된다. 숫자는 명확하다. 높고 낮음의 비교가 분명하고 상승과 하락, 크고 작음, 추월이나 미달도 비교적 정확하게 판별할 수 있다. 일단 숫자는 애매모호하거나 불분명한 부분이 적고 해석의 여지가 남는 영역도 많지 않다. 경제 지표가 발표될 때마다 과거 흐름 등을 감안하면 얼추 그 수치의 의미나 영향 등을 짐작할 수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하지만 경제학도 사회 내 다양한 현상과 요인을 반영하고 분석하는 학문인 만큼 심리적인 부분과 미래 예측은 쉽지 않은 영역이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경제연구소나 기관들이 1년, 2년 뒤 경제성장률과 물가, 경상수지 등의 지표를 예상해 발표하지만, 이는 현 상태에서 예측할 수 있는 요인과 변수들을 반영한 것일 뿐, 예상할 수 없는 돌발 변수까지 포함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정부와 기업, 개인 등 경제주체의 심리는 투자와 소비 등 경제행위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파악과 예측이 쉽지 않아 대개 생각을 묻고 대답을 취합하는 설문의 형태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금융시장이 비상계엄 사태로 받았던 충격을 극복하는 중이지만 원/달러 환율이 1,430원대에 머물고 외국인들의 국내 주식 순매도 행진도 지속되는 등 후유증은 여전하다. 위기나 충격이 발생할 때 국가신용등급,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 등의 숫자로 그 여파를 가늠해보긴 하지만 기업과 개인, 투자자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투자심리가 얼마나 위축됐는지 정확히 측정하거나 비교하긴 어렵다. 소비자동향지수(CSI), 기업경기실사지수(BSI) 등의 설문조사 지표가 있긴 하지만 시간이 걸리는 데다 설문의 한계도 있다.
이런 일이 경제에 미친 충격은 그 정도와 규모를 가늠하기 어려운 만큼 극복도 쉽지 않다. 한번 위축된 투자심리를 다시 회복하려면 지난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충격이 일회성에 그치거나 단기에 종료되지 않고 그 여파로 불확실성의 그림자가 계속 남아있다면 금융시장은 그 영향에서 오랜 기간 헤어나기 힘들다. 그리고 그 여파는 심리뿐 아니라 실제로 실물 경제의 각 분야에 지우기 힘든 흉터를 남기게 된다.
계엄 사태 이후 경제부처 관료들이 해외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려 전방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지만 근본 원인인 정치 불안은 조기에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계엄 사태에 대한 수사와 처벌, 탄핵을 둘러싼 혼란은 장기간 이어질 수 있다. 이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으면 억눌린 소비와 투자심리도 살아나기 힘들 것이다. 신용평가회사 피치의 경고처럼 우리 경제의 기초 체력이 양호하더라도 정치 불확실성이 길어지면 경제에 압박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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