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오수환 기자] 국내 투자자들에게 많은 혼란을 초래했던 디지털 자산(가상자산) 과세가 재차 유예되며 미비한 시스템을 보완할 시간이 주어졌다. 전문가들은 유예 기간 동안 조세 형평성을 위한 실질적 과세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31일 디지털 자산 업계에 따르면 지난 10일 국회에서 소득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내년 1월1일 시행 예정이었던 가상자산 과세가 2027년으로 연기됐다. 정부는 유예 기간 미비한 시스템을 보완할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가상자산 과세가 올바르게 시행되기 위해 △가상자산 소득 분류 △해외 거래소 과세를 위한 시스템 마련 △스테이킹·에어드롭 등에 대한 기준 확립 등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해당 기준들이 명확해야 형평성에 맞는 과세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재 가상자산 과세 시스템은 업비트·빗썸 등 국내 중앙화 거래소 외에는 해외 거래소나 신원증명이 필요 없는 탈중앙화 거래소(DEX), 개인 지갑 간 코인 거래는 추적이 어려운 실정이다.
정부는 우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유예 기간 해외 거래소의 거래 정보를 확인할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그 일환으로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열린 제17차 OECD 글로벌포럼 총회에서 ‘암호화자산 보고체계 다자간 정보교환협정'(CARF MCAA)에 참여했다.
다자간 정보교환협정은 국가 간 암호화 자산 자동 정보 교환의 세부 사항을 규정한 당국 간 협정이다. 서명국은 OECD와 G20이 공동 개발한 암호화 자산 자동 정보 교환 체계(CARF)에 따라 교환 대상국 거주자의 암호화 자산 거래 정보를 매년 자동으로 공유하게 된다. 해당 협약이 시행되면 해외 거래소를 이용하는 국내 투자자의 거래 정보를 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협정 시행 후에도 모든 거래 내역을 완전히 확인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돼 대안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홍푸른 디센트 대표 변호사는 “협정에 따라 국세청은 외국 국세청과 거래 정보를 확보할 수 있지만 그 정보는 원칙적으로 각 국가의 ‘가상자산사업자’로부터 얻는 거래 정보에 한정된다”며 “거래소가 아닌 개인 간 거래는 국세청이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안성희 카톨릭대 회계학과 교수도 “다자간 정보교환협정은 정부 간 협약에 의존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협정 시행 직후 과세를 시행하기보다 협정 체계가 구체화되고 명확해진 이후에 과세를 시행해도 늦지 않다”고 조언했다.
또한 스테이킹과 에어드랍 등 디지털 자산에 대한 여러 취득 방식이 있는 만큼 세부적인 기준 마련도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현재 개정 소득세법 제21조 제1항 제27호에는 가상자산을 양도하거나 대여함으로써 발생하는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보고 분리 과세한다고 명시할 뿐 구체적인 기준이 나와있지 않은 상황이다. 가상자산 과세 대상이 가상자산의 양도 또는 대여로 발생하는 소득으로만 정의돼 다양한 취득 방식을 포괄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특히 에어드랍은 크게 발행사 및 거래소의 이벤트를 통해 이뤄진다. 에어드랍이 무상으로 지급되는 특성상 증여로 볼 여지가 있어 이용자들이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많다. 현재 가상자산 상속・증여는 과세 대상이다. 안성희 교수는 “증여세를 납부한 경우 양도소득세 계산 시 이를 취득가액으로 인정해 이중과세 걱정은 없다”면서도 “세목에 따라 과세 시점과 방식이 달라지기에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상자산이 기타소득으로 분류되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현행 세법은 소득을 사업소득, 근로소득, 이자소득, 배당소득, 연금소득, 퇴직소득, 양도소득, 기타소득으로 나누고 있다. 가상자산이 양도소득이 아닌 기타소득으로 분류된 이유는 가상자산 대여로 인한 소득을 포함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타소득으로 분류할 시 가상자산의 특성을 온전히 반영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성희 교수는 “기타소득은 일회성 소득에 적합한 과세 방식으로 스테이킹, 양도, 에어드랍 등 여러 수익 형태를 포함하고 있는 가상자산의 특성을 반영하기 어렵다”며 “가상자산, 토큰증권 등을 포괄하는 새로운 소득 분류 형태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기타소득으로 분류되면 결손금 이월공제가 허용되지 않아 손실이 발생해도 다음 해의 이익과 상계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현행 개정안대로 과세가 시행되면 1년 차에 가상자산 거래로 1억원의 손실을 본 투자자는 2년 차에 5000만원의 이익을 얻더라도 이전 해의 손실을 공제받지 못한다. 해당 투자자는 기본 공제 250만원만 적용받은 뒤 나머지 수익에 대해 22%의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안 교수는 “실질 소득에 맞는 과세를 위해 개정이 필요할 것 같다”며 “기본 공제 금액도 현재의 250만원에서 상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푸른 변호사는 “스테이킹, 하드포크 등 가상자산에는 다양한 사례가 있어 이를 법으로 세세히 규정하기는 어렵다”며 “포괄적인 개념으로 명시하더라도 향후 판례가 쌓이며 이러한 빈틈은 점차 보완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같이 보면 좋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