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오수환, 김제이 기자] 국내 디지털자산(가상자산) 업계에 적신호가 켜졌다. 특금법, 가상자산 등 강력한 규제로 인해 해외 거래소 대비 경쟁력이 떨어지자 이에 따른 투자자금 해외 유출 현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블록미디어가 지난달 19일~26일동안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92명의 응답자 중 절반에 가까운 40.2%가 ‘국내 디지털자산 투자자금의 해외 유출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국내 거래소의 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지난달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디지털자산 세미나’에서 이석우 두나무 대표도 한국 디지털자산 업계 주요 문제 중 하나로 국내 자금 유출을 꼽았다. 이석우 대표는 “해외로 유출된 가상자산 관련 자금은 신고된 액수만 130조원”이라면서 “신고되지 않은 자금을 포함하면 200조 원이 넘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를 해결 하기 위해 법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따르면 가상자산에 대한 정의는 한 줄 밖에 없다”면서 “1만개가 넘는 가상자산이 존재하지만 한국은 이를 모두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등 다양한 종류의 가상자산 유형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 디지털자산과 관련한 법안은 2021년 3월부터 시행된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개정안과 지난해 7월 시행된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가상자산법)이 유일하다. 이마저도 특금법은 가상자산 업계를 아우르는 법이라기 보다는 자금세탁 방지 등을 위해 가상자산사업자(VASP) 자격 심사에 가까운 법안이다. 가상자산법 역시 이용자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아직까지, 업권법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많다.
실제로 디지털자산 이용자 보호법 시행 이후 변화에 대해 ‘시장이 위축되었다’는 응답도 21.7%가 나오며, ‘큰 변화가 없다’(35.9%)의 뒤를 이었다. 이처럼 이용자보호법이 투자자들에게 실질적 체감이 낮은 것으로 확인된다.
설문 결과 응답자의 43.5%가 내년 디지털 자산 시장의 가장 큰 위험 요소로 거시경제의 불확실성을 지목했다. 특히 국내 경제 상황은 매우 어려운 상태다. 지난달 원·달러 환율 종가가 1480원대까지 상승하며 지난 1997년 IMF 구제금융 이후 최악의 수준을 기록했다. 원화 가치 하락이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 연방준비위원회(Fed)가 최근 금리 인하에 부정적인 신호를 보내면서 달러 강세까지 전망돼 어려움이 예상된다.
권아민 NH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달 30일 보고서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안 통과로 정국 불안이 심화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27일 장중 1486원을 돌파하며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며 “이는 연준의 달러 강세 신호와 정치적 불안에 의한 국내 펀더멘탈 약화가 모두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편, 거시 경제 불황에 이어 응답자의 21%는 ‘규제 강화’를 내년 디지털 자산 시장의 위험 요소로 꼽았다. 이는 국내 투자자들이 국내 규제 환경을 해외에 비해 더 강하게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 디지털 자산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규제 환경이 사업 운영에 많은 제약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업계 진흥을 위한 법이 조속히 제정되어 규제 환경이 개선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디지털 자산 시장에는 지난해 7월 시행된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만 존재할 뿐 기본법은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용자보호법은 이름 그대로 이용자 보호와 불공정거래 규제에 초점이 맞춰진 법으로 △가상자산사업자(VASP) 의무 강화 △이용자 예치금 및 가상자산 보관 △불공정거래 행위 규제 △이상거래 상시 감시 의무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에 국내 업계와 투자자들은 보호를 넘어 발행과 유통 등 산업 전반의 규제를 다룰 2단계 업권법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관련 법이 부재한 탓에 디지털 자산 사업의 행위 기준이 마련되지 못한 탓에 특정 원화 마켓 거래소를 제외하고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도 형성되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디지털 자산을 토대로 다양한 서비스가 만들어지고 있는 해외와 달리 국내에는 디지털 자산을 사고파는 것 외에 이용자에게 제공할 서비스가 없다”며 ““이 상황이 지속되면 주도권을 해외에 뺏길 수 있다”고 밝혔다.
김성진 금융위원회 가상자산 과장은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열린 ‘가상자산 산업 및 블록체인 혁신을 위한 2차 입법 과제 세미나’에서 “금융위원회는 업계의 여러 사안을 이미 인지하고 있으며, 이를 2단계 입법에서 중요하게 다룰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법 제정을 책임질 국회는 여전히 시장 진흥을 위한 논의에 착수하지 못한 상황이다. 일부 의원들이 토론회를 통해 업계 의견을 청취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논의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이처럼 업권법 제정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자산 유동화를 위한 토큰증권(ST) 법안은 현재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토큰증권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기존 금융을 포함해 부동산, 국채 등 실물자산을 토큰화해 증권 형태로 발행하는 것이다. 자산 유동성을 높이고 소액 투자자를 포함한 다양한 투자자의 접근성을 확대할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설문 조사에 따르면 토큰증권 법제화에 대해 응답자의 41.3%가 빠른 도입을 요구하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반면 32.6%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답해 신중론도 적지 않은 비중을 보였다. 이는 투자자들이 토큰증권의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법제화 과정에서 안정성과 신뢰성 확보를 중요시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업계 관계자는 “토큰 증권이 조각화돼 유통되는 과정에서 개인 투자자들로 인해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면 버블이 형성될 위험이 있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을 발행사가 모두 흡수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며 “비정형 자산을 활용해 수요를 창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발행된 구조화 토큰의 리스크 관리를 위한 인프라 구축 역시 중요한 과제”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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