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화 대비 가치 절하율 -5.3%…주요 30개국 통화 중 2위
野 임광현 “실물 경제 악영향…국정 정상화 시급”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한지훈 민선희 기자 =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우리나라 원화 가치가 5% 넘게 하락하며 전쟁 중인 러시아에 이어 주요 통화 중 가장 약세를 나타냈다.
미국 기준금리 인하 지연 전망에 달러 강세가 두드러지기는 했지만 비상계엄 사태로 원화가 특히 충격을 받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환율이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커진 가운데 계엄 후 환율이 1,400원대 중후반에서 고공행진을 하고 있어서 물가안정에도 비상등이 들어왔다.
◇ 지난달 원화 절하율 ‘전쟁통’ 러 루블화 다음 2위…연간 13% 하락
1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임광현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오후 3시30분 종가 기준)은 지난해 11월 말 1,394.7원에서 12월 말 1,472.5원으로 치솟았다.
환율이 올랐다는 것은 그만큼 원화 가치가 떨어졌다는 의미다. 지난달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 절하율은 -5.3%로 계산됐다.
이는 20개 주요국 통화 가운데 러시아 루블화를 제외하면 가장 큰 폭의 가치 하락이었다.
같은 기간 루블/달러 환율은 106.5루블에서 113.7루블로 올랐다. 가치 절하율이 -6.4%에 달해 원화보다 1.1%포인트(p) 컸다.
하지만 달러화 지수(달러인덱스)를 구성하는 주요 6개 통화인 ▲ 유럽연합(EU) 유로화 -2.1% ▲ 일본 엔화 -4.7% ▲ 영국 파운드화 -1.7% ▲ 캐나다 달러화 -2.6% ▲ 스웨덴 크로나화 -1.6% ▲ 스위스 프랑화 -2.9%는 모두 원화보다 크게 양호했다.
주요 통화를 세계은행 기준 경제 규모 30위권 국가로 넓혀보더라도 ▲ 중국 위안화 -0.8% ▲ 인도 루피화 -1.3% ▲ 브라질 헤알화 -3.3% ▲ 멕시코 페소화 -2.2% ▲ 호주 달러화 -4.4% ▲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1.8% ▲ 튀르키예 리라화 -1.9% 등으로 원화보다 절하율이 상당히 낮았다.
지난달 3일 주간 거래를 1,402.9원으로 마친 원/달러 환율은 당일 밤 윤석열 대통령 계엄 선포 직후 야간 거래에서 장중 1,441.0원까지 급등했다.
이어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 인하 속도 조절 메시지가 나온 같은 달 19일 1,451.9원까지 추가로 상승했다.
환율은 한덕수 국무총리의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가중된 지난달 27일 장중 1,486.7원까지 치솟았고, 30일 1,472.5원으로 한 해 거래를 마감했다.
연말 주간 거래 종가 기준으로는 1997년 말 1,695.0원 이후 2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 절하율은 지난해 연간으로 봐도 비교적 높은 수준이었다.
원화 가치는 지난해 한 해 동안 12.5% 하락했다. 원/달러 환율은 2023년 말 1,288.0원이었다.
원화 절하율은 환율 변동성이 고질적으로 큰 ▲ 아르헨티나 페소화 -21.6% ▲ 헤알화 -21.4% ▲ 루블화 -21.3% ▲ 멕시코 페소화 -18.5% ▲ 리라화 -16.5% 등에 이어 6위에 해당했다.
나머지 통화의 연간 절하율은▲ 유로화 -6.2% ▲ 엔화 -10.3% ▲ 파운드화 -1.7% ▲ 캐나다 달러화 -7.9% ▲ 크로나화 -9.3% ▲ 스위스 프랑화 -7.6% ▲ 위안화 -2.6% 등으로 집계됐다.
태국 밧화는 지난해 주요 통화 중 유일하게 0.5% 가치가 절상됐다.
주요국 통화의 미국 달러화 대비 환율 변동률 (단위:%) ※ 더불어민주당 임광현 의원실 제공. 한국은행 제출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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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2024년 12월 월간 | 2024년 연간 |
러시아 | -6.4 | -21.3 |
한국 | -5.3 | -12.5 |
일본 | -4.7 | -10.3 |
호주 | -4.4 | -8.6 |
브라질 | -3.3 | -21.4 |
스위스 | -2.9 | -7.6 |
캐나다 | -2.6 | -7.9 |
멕시코 | -2.2 | -18.5 |
유로 | -2.1 | -6.2 |
아르헨티나 | -2.0 | -21.6 |
튀르키예 | -1.9 | -16.5 |
인도네시아 | -1.8 | -4.0 |
폴란드 | -1.8 | -5.0 |
영국 | -1.7 | -1.7 |
스웨덴 | -1.6 | -9.3 |
인도 | -1.3 | -2.8 |
중국 | -0.8 | -2.6 |
이스라엘 | -0.2 | -0.5 |
태국 | -0.0 | +0.1 |
사우디아라비아 | -0.0 | -0.2 |
※ 원/달러 환율은 오후 3시30분 종가 기준. 나머지 환율은 블룸버그 종가 기준.
◇ 한은 “1월 물가상승률도 고환율로 더 높아질 가능성”
최근 정국 불안으로 인한 환율 급등이 이미 소비자물가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한국은행 평가가 나와 주목된다.
한은은 이날 ‘최근 환율 변동성이 물가에 미친 영향’에 관한 임 의원 질의에 “모형 추정 결과를 고려하면, 지난해 11월 중순 이후의 환율 상승은 12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을 0.05~0.1%p 정도 높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회신했다.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1.9%로 전월(1.5%)보다 0.4%p 높아졌다.
한은은 이어 “(환율 상승이) 이후에도 물가의 상방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최근 고환율 등으로 조금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불과 한 달 남짓한 기간 환율이 뛴 것이 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최대 0.1%p 끌어올렸으며, 이런 추세가 당분간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은이 비상계엄 사태 전후 환율 상승에 따른 물가 영향을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은은 다만 “낮은 수요 압력, 유가·농산물 가격의 기저효과 등을 고려할 때 물가 상승률은 당분간 2%를 밑도는 수준에서 안정 기조를 이어갈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환율은 수입 물가를 통해 소비자 물가로 전가된다. 그 크기는 환율 상승의 폭과 지속 기간, 경기, 물가 상황 등에 따라 달라진다.
문제는 현재 ‘환율의 물가 전가율’이 전보다 높아져 있다는 점이다.
전가율은 원/달러 환율이 1% 변동할 때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변동을 나타내는 수치다.
한은은 2022년 6월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환율의 물가 전가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추세적으로 낮아져 2020년 제로 수준까지 하락했다가 다시 높아졌다”며 “2022년 1분기 현재 0.06%p”라고 분석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5월에는 블로그에서 “팬데믹 이후 환율의 물가 전가율이 상승한 것으로 추정됐다”며 “환율 변동성 확대는 물가 상승률 둔화 속도를 느리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임 의원은 “원/달러 환율이 러시아 수준으로 크게 절하돼 실물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과중한 상황”으로 “극심한 정국 불안에 따른 경제 충격을 완화하고 성장을 유지하기 위한 시장 안정화 조치가 작동할 수 있도록 국정 정상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hanj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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