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오수환 기자] 매년 블록체인의 활용과 필요성을 두고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블록체인을 도입한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거나 납득하기 어려운 프로젝트들이 많기 때문이다. 많은 프로젝트가 탈중앙화의 가치를 앞세워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했지만, 디지털 자산 발행 목적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채 조용히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업계는 블록체인의 장점을 살리면서 이용자들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인프라 확충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블록체인이 기존 중앙화 네트워크와 비교해 가장 두드러지는 장점은 비용 절감이다. 탈중앙화된 데이터 저장, 스마트 컨트랙트, 신뢰할 수 있는 기록 시스템을 통해 기존 시스템의 비효율성을 줄이고 운영 비용을 낮추는 데 기여한다. 이 과정에서 중심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디핀(DePIN)’이다.
디핀(DePIN)은 탈중앙화된 물리적 인프라 네트워크로 공공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효율적으로 네트워크를 운영할 수 있어 무선통신, 에너지, 컴퓨팅, 센서, 물류 등 다양한 인프라 분야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예를 들어 기존에 중앙화된 방식으로 관리되던 무선통신 네트워크를 개인이 기여하고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구조로 바꾸거나, 에너지 자원을 분산형으로 거래해 전력망의 비효율성을 해결하는 데 활용된다.
이렇게 디핀을 통한 네트워크 혁신은 △운영비 절감 △접근성 향상 △기여 보상 △효율성 증가로 이어진다. 디핀은 중앙 집중 운영에 비해 초기 비용과 운영비를 분산화해 절감할 수 있으며, 기존 네트워크가 닿지 못했던 농촌이나 개발도상국 같은 지역까지 인프라를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또한 네트워크 참여자들이 기여한 만큼 직접 보상을 받을 수 있어 참여 동기를 강화하고 자원의 활용도를 극대화해 네트워크의 확장성과 유연성을 높일 수 있다.
지난 13일 기준 시황 분석 플랫폼 코인게코에 따르면 디핀 프로젝트의 시가총액이 315억달러(약 46조원)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대비 2배 이상 성장한 수치다. 디지털자산 분석 기업 메사리가 공개한 업계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디핀의 총 펀딩 금액은 지난해 대비 3배 증가했다. 보고서는 “지난해에 이어 디핀 시장은 더욱 성장할 것”이라며 “올해 디핀 프로젝트 매출이 1억 5000만달러(약 2207억원)를 넘어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메사리는 디핀을 크게 물리적 자원 네트워크(PRNs)과 디지털 자원 네트워크(DRNs)으로 분류했다. PRNs는 특정 위치에서 물리적 자원을 제공하는 네트워크로 자원이 실제로 존재해야 하기에 위치에 제약을 받는다. 예를 들어 태양광 발전으로 생성된 전력을 지역 사용자들에게 공유하는 전력 공유 플랫폼도 PRNs의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PRNs는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 에너지 전환과 탄소 중립 실현 요구가 커지면서 주목받고 있다. 재생 에너지를 활용한 분산형 에너지 네트워크는 기존 중앙화 시스템보다 효율적일 뿐 아니라, 소규모 생산자와 지역 사회의 직접 참여를 가능하게 해 지속 가능성을 높인다는 평가다.
딜런 베인 메사리 분석가는 “국제적으로 합의된 기후 목표를 이루려면 재생에너지 용량에 대한 연간 투자를 1조달러(약 1040조원)까지 늘려야 한다”며 “이는 디핀에 상당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태양광 패널, 배터리 저장 장치, 풍력 터빈 등 재생에너지는 소규모로 분산된 형태로 존재하는데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연결하기 위해서는 디핀 같은 분산형 네트워크가 적합하다는 설명이다.
대표적인 PRNs 프로젝트 중 하나로 글로우(Glow)가 있다. 글로우는 지난해 인도를 중심으로 메가와트(MWth)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하며 2500만달러(약 368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해 주목받았다. 베인 분석가는 올해 청정 에너지 전환이 전 세계적으로 가속화되면서, 글로우의 수요가 크게 증가해 수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물리적 자원에 기반을 둔 PRNs와 달리 DRNs는 디지털 자원을 위치와 상관없이 제공하는 네트워크다. 자원의 전달과 소비가 전적으로 디지털 방식으로 이루어져 물리적 한계가 없다. 예를 들어 파일코인(Filecoin)은 분산형 데이터 저장소로 사용자의 여유 공간을 활용해 위치에 상관없이 전 세계에 데이터 저장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DRNs는 최근 인공지능(AI) 발전으로 컴퓨팅 자원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주목받고 있다. 디핀 기반 컴퓨팅 네트워크는 중앙화된 제공업체 대비 GPU 컴퓨팅 비용을 최대 90% 절감할 수 있는 것이 강점이다. 메사리는 보고서에서 “GPU 컴퓨팅에 대한 수요가 7조달러(약 1경296조원)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디핀은 탈중앙화된 컴퓨팅 솔루션을 제공해 유리한 입지를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멀티코인, 프레임워크 등 주요 투자사들이 디핀에 수억달러의 투자를 단행했다. 이들은 컴퓨팅과 무선통신 분야에서 디핀 프로젝트에 집중 투자하며,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을 선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실제 지난해 출시한 디핀 프로젝트인 아이오닷넷(io.net), 에이셔(Aethir) 등은 각각 3억7600만달러(약 5500억원), 3억4400만달러(약 5060억원)의 시가총액을 기록하며 시장의 인정을 받았다.
다만 디핀 네트워크를 비롯해 구글과 아마존 등 주요 컴퓨팅 마켓플레이스가 제한된 GPU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각 프로젝트에 차별화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GPU는 AI, 머신러닝 등 고성능 연산에 필수적인 자원이지만 그 활용이 급증하면서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이로 인해 디핀도 GPU 제공자를 유치하기 위해 토큰 보상을 제공하는 인센티브 전략을 활용하고 있지만 더 많은 GPU를 확보하려는 경쟁 속에서 보상 가치가 점점 높아지는 상황이다.
베인 분석가는 “이러한 운영 방식은 네트워크가 높은 보상을 제공하려다 자원을 소진하거나 운영 효율성을 잃을 위험이 있다”며 “가격 외적인 차별화가 필요하지만, 이를 구현할 방법은 아직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특화된 서비스 같은 고유한 가치를 개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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