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트 로제 스파클링, 택배 거래로 편리해
앙증맞은 디자인 상큼함은 ‘합격’
단맛 강하고 복합미·아로마 부족해 아쉬움
지난해 연말 무알코올 와인을 난생 처음 주문해봤다.
[블록미디어=권은중 전문기자] 내가 무알코올 와인을 주문한 까닭은 무알코올 와인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지만, 작년 말 뒤숭숭한 탄핵 정국에도 송년 모임이 줄지 않아 몸과 마음이 피곤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연말 모임 사람들의 주목도 이끌어내고 술도 조금 적게 마셔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많고 많은 무알코올 와인 가운데 어떤 와인을 고를지 고민이 됐다. 외신을 뒤졌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과 유럽에서는 무알코올 와인이 확고한 트렌드로 자리 잡은 지가 꽤 됐다. 코로나19로 건강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늘어나면서부터였다. 특히 젊은이들이 와인을 꺼린다. 와인을 나이든 시니어 세대들의 호들갑쯤으로 여기는 경향도 있다. 인류 역사가 기록된 이후 지금까지 와인은 고품격 소비의 대명사였는데 세상이 바뀐 것이다.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가디언, CNN 등을 뒤지다가 대체로 의견이 일치되는 와인을 찾았다. 미국산 무알코올 로제 스파클링 토스트. 찾아보니 가격도 1만원대로 훌륭했다. 일단 마셔보고 맛나면 좀 더 비싼 걸로 도전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무알코올이어서 전자상거래를 이용해 와인을 집에서 편하게 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기존 와인과는 다른 편리함이었다. 한국의 주세법은 전통주를 제외하고는 알코올 음료는 전자상거래를 할 수 없다. 청소년 보호 차원에서다.
와인 디자인은 청량음료를 닮았다. 투명한 붉은 색에 회색 병 뚜겅이 앙증맞았다. 아마 MZ세대 여성을 겨냥해서 디자인한 것 같았다. 병 뚜껑도 돌려서 편리하게 딸 수 있었다. 무알코올 와인다웠다.
하지만 맛은 다소 생경했다. 와인 마니아를 자처하는 나에게는 달았다. 이 와인은 발효된 포도과즙 (와인 원액) 대신 어린 잎차(백차)에 사탕수수 시럽과 감귤 생강처럼 천연 추출물을 섞어 와인의 복합미를 대신했다. 750ml 한 병당 열량은 130kcal였다. 일반와인의 칼로리가 600~900kcal인 것에 견주면 아주 낮은 수준이다. 혈당을 우려하며 음식을 먹는 젊은이들의 트렌드를 반영한 것이다. 그렇지만 당분과 식물 추출물이 발효 와인 고유의 풍부한 맛과 향을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와인 마니아 입장에서 이 술은 와인이라기보다는 탄산음료였다. 얼마 전 마셨던 독일의 논알코올 와인보다 더 달았다. 논 알코올은 알코올 함량은 1% 미만의 와인을 말한다. 논알코올 와인에도 역시 청량감을 끌어 내기 위해 당분이 들어간다.
무알코올과 논알코올의 차이는?
우리나라 주세법상 과세 대상인 와인이 주류에 포함되지 않으려면 알코올 함량이 1%미만이어야 한다. 외국도 비슷하다. 그런데 왜 0%가 아니라 1%미만일까? 그 이유는 발효 와인에서 알코올을 제거하기가 생각보다 까다로운 탓이다. 주로 알코올을 제거하기 위해 사용되는 공정은 저온 진공 상태에서 제거하는 진공증류법, 저온에서 증발과 응축을 사용해 알코올을 없애는 스피닝 콘 칼럼 방식, 필터로 걸러내는 역삼투압 방식 등이 있다. 하지만 어떤 방식도 와인의 알코올을 완벽하게 제거하지 못한다. 그래서 영국이나 독일은 0.5% 미만의 알코올을 포함한 와인도 무알코올이라는 라벨을 붙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알코올이 0.00% 이하여야 무알코올을 붙일 수 있다. 0.0~1%미만은 논 알코올 와인이다. 그래서 내가 마셨던 토스트처럼 무알코올 와인은 기존 와인을 기반으로 해서가 아니라 차와 같은 전혀 다른 음료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0.00%의 무알코올 음료를 만들 수 있다.
이처럼 알코올 제거도, 와인 향과 맛을 내는 것도 쉽지 않은데 왜 업계에서는 무알코올 와인을 만드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무알코올 주류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 중인 성인용 음료 시장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와인을 포함해 대부분의 주류가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트렌드 탓에 와인 종주국인 프랑스조차 와인 소비가 줄어 쏟아버리거나 손세정제를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여론조사기관인 갤럽이 2023년 7월 세계에서 가장 큰 주류시장인 미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현재 술을 마신다고 답한 미국인은 62%였다. 이 수치는 1981년 71%로 최고를 기록한 이후 꾸준히 감소세다. 특히 젊은층 비율이 눈에 띄게 줄었다. 지난 20년간 18~34세 사이 젊은 성인의 음주율이 72%에서 62%로 10%나 감소했다. 이는 35~54세 성인층이 같은 기간 2%의 증가세를 보인 것과 대조를 이룬다.
덕분에 관련 시장은 급팽창 중이다. 영국 시장조사기관 IWRS의 보고서에 따르면 무알코올과 저알코올(3.5%이하) 시장은 2022년부터 2026년까지 7% 성장할 것을 내다봤다. 성장의 90%는 무알코올 음료다. 국내시장도 성장세가 가파르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무·비알코올 맥주시장 규모는 2021년 415억원에서 지난해 644억원으로 2년 만에 55.2% 증가했다. 국내 주류시장이 2023년 기준으로 최근 4년간 –0.4% 성장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이런 새로운 음주문화 트렌드를 ‘소버 큐리어스’라고 한다. ‘술에 취하지 않은’이란 뜻의 소버(sober)와 ‘궁금한’이라는 큐리어스(curious)가 합쳐진 단어다. 술에 취하지 않고 싶지만 술맛은 느끼고 싶은 호기심을 의미한다. 이런 트렌드는 단 음식에 이어 알코올마저 거부하는 새로운 인류의 등장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아직 무알코올 와인은 걸음마 단계다. 와인보다 맛있기는 어렵겠지만 와인같은 무알코올 와인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 권은중 전문기자는 <한겨레> <문화일보> 기자로 20여 년 일하다 50세에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의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에 유학을 다녀왔다. 귀국 후 <경향신문>, <연합뉴스> 등에 음식과 와인 칼럼을 써왔고, 관련 강연을 해왔다. 『와인은 참치 마요』, 『파스타에서 이탈리아를 맛보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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