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오수환 기자] 법인의 디지털자산(가상자산) 거래를 위한 실명계좌 허용이 이번에도 결론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금융위원회가 올해 업무계획에서 법인계좌 허용 정책화 검토가 막바지 단계에 있다고 밝힌 만큼, 조만간 허용 여부에 대한 결론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17일 디지털자산 업계와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는 지난 15일 가상자산위원회를 열어 디지털자산 이용자보호법 2단계 입법 논의에 착수했다. 당초 업계의 기대와 달리 이날 법인의 디지털자산 거래소 실명계좌 허용은 논의되지 않았으나,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12차례의 분과위원회와 실무 TF 논의를 거쳐 정책화 검토가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위는 조만간 가상자산위원회에 결과를 보고하고 후속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앞서 금융위는 올해 주요 업무 추진 계획에서 가상자산위 논의를 통해 법인의 실명계좌 발급을 단계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상 법인 계좌 개설을 금지하는 조항은 없지만, 금융당국은 자금세탁 우려를 이유로 법인의 실명 계좌를 사실상 허용하지 않았다.
홍푸른 디센트 대표 변호사는 “현재 국내 디지털자산 시장은 트래블룰과 이용자보호법 제정을 통해 과거보다 자금세탁 우려가 크게 완화됐다”며 “이러한 제도가 안착된 만큼 금융당국도 법인 계좌 허용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홍푸른 변호사는 법인의 거래소 계좌 개설 허용이 디지털자산 상장지수펀드(ETF) 승인을 앞당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현재 법인은 비트코인에 투자하려 해도 마이크로스트래티지와 같은 간접 투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며 “법인 계좌가 허용되면 일반 법인은 물론 국민연금과 같은 대형 기관 자금이 유입돼 국내 시장이 크게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기존 금융권의 디지털자산 개방도를 높여 디지털자산 관련 ETF 승인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금융위는 우선 대학 등 비영리 단체부터 법인 계좌를 허용하고 이를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법인 계좌 개설이 허용되면 대학들은 기부받은 디지털자산을 현금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서울대·고려대·서강대·동서대 등 국내 대학 몇몇은 지난 2022년 위메이드로부터 당시 10억원 상당의 위믹스(WEMIX)를 기부받았지만 법인 계좌에 막혀 현금으로 전환하지 못했다.
디지털자산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대학들은 기부받은 디지털자산을 현금으로 전환할 방법이 없어 보관만 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법인 계좌가 허용되면 대학들은 이를 현금화해 연구·학술 활동의 발전 기금에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기부 문화가 국내보다 활발한 미국에서는 여러 대학들이 이미 디지털자산을 기부받아 활용하고 있다. 미국 메릴랜드 주에 위치한 메릴랜드 대학교는 이더리움 공동 창립자 비탈릭 부테린으로부터 940만달러(약 137억원) 상당의 시바이누(SHIB) 토큰을 기부받았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와튼스쿨도 지난 2021년 익명의 기부자로부터 500만달러(약 73억원) 상당의 비트코인(BTC)을 기부받기도 했다.
홍 변호사는 “법인 계좌가 허용되면 법인이 직접 거래소에서 거래할 수 있어 예전보다 재정상 투명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번 논의 대상에 법인 계좌 허용이 포함되지 않았지만 관련 검토는 마무리 단계에 있다”며 “구체적인 시기는 확정하기 어렵지만 예정대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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