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오수환 기자] 국내 디지털자산(가상자산) 거래소 예치 비율이 90%를 넘는 이른바 ‘김치코인’ 히포크랏(HPO)이 최근 메인넷 출시와 리브랜딩을 발표했다. 히포크랏은 리브랜딩을 통해 기존 발행량을 늘릴 계획인 만큼 투자자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헬스케어 데이터 프로토콜 히포크랏(HPO)은 22일 X(옛 트위터)를 통해 올해 로드맵 공개하고 리브랜딩 계획을 발표했다. 로드맵에 따르면 히포크랏은 오는 2분기 프로젝트 이름을 기존 히포크랏(Hippocrat)에서 히포 프로토콜(Hippo Protocol)로 리브랜딩하고 새롭게 메인넷을 출시할 예정이다.
이번 메인넷 변경은 지난해 거버넌스에서 100% 찬성률로 통과된 ‘HIP-2’ 메인넷 운영 제안에 따른 것이다. 해당 제안을 보면 기존 히포크랏 토큰인 HPO는 1 대 1 비율로 HP 토큰으로 교환된다. 문제는 변경 이후 6년간 인플레이션을 적용해 토큰 수량이 증가한다는 점이다. 특히 메인넷 변경 초기 1~2년간 각각 기존 전체 발행량의 25%와 20%만큼 수량이 추가되면서 공급량이 급격히 증가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히포크랏은 “초기 4년간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한 뒤, 2년마다 반감기를 적용해 점진적으로 둔화하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초기 인플레이션율이 높은 것에 대해서도 히포크랏은 “초기에는 생태계 파트너와 커뮤니티 구성원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했다”고 밝혔다. 신규 유입을 활성화한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의도를 떠나 토큰 수량은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인 만큼 신중한 의사 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디지털자산 업계 한 관계자는 “수요가 일정한 상황에서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은 자연스럽게 하락할 수밖에 없다”며 “이용자 입장에서는 이같은 결정이 좋은 건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이에 일각에서는 재단이 현재 구조로는 신규 유입을 끌어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해 메인넷 출시와 함께 발행량을 늘리는 방식을 택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코인사이렌 데이터를 보면 HPO는 전체 발행량의 95.39%가 이미 시장에 유통된 상태다. 또한 백서에 따르면 나머지 5000만개 물량도 올해 7월 시장에 전량 풀릴 예정이다. 올해 전체 물량이 시장에 유통되는 것이다.
히포크랏은 2018년에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의료 데이터 주권 확보와 원격 의료 상담 등 의료 분야 개선을 목표로 시작됐고 이후 2021년 업비트에 상장됐다. 당시 프로젝트명은 히포크랏이 아닌 휴먼스케이프(HUM)였다. 이후 2023년 5월 리브랜딩을 통해 프로젝트명을 히포크랏으로 변경하고 심볼을 HPO로 바꿨다. 이 과정에서 스왑 비율은 1 대 1로 유지되었으며, 발행량 변화는 없었다. 리브랜딩 후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발행량 증가를 포함한 리브랜딩을 다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코인사이렌의 한 커뮤니티 사용자는 “히포크랏은 현재 매우 적은 인력으로 운영되고 있어 기술력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며 “재단이 실제로 사업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내에 법인을 둔 히포크랏의 전체 임직원 수는 4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물론 이번 메인넷 변경은 히포크랏 재단이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은 아니다. 재단은 공식적으로 거버넌스에 제안했고 검증자들은 이를 통과시켰다. 하지만 지분증명(PoS)의 특성상 더 많은 디지털자산을 보유할수록 그에 비례해 결정권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번 히포크랏 메인넷 거버넌스 투표에는 총 67명이 참여해 1억 5500만개의 HPO로 투표했다. 이중 상위 3명이 전체 투표 비율의 57%를 차지한 것을 알 수 있다. 소수의 영향력이 과대 평가되며 거버넌스의 탈중앙화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특히 히포크랏의 상당수 토큰이 생태계 활성화가 아닌 중앙화 거래소에 예치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3일 코인사이렌 데이터 기준 히포크랏의 중앙화 거래소 비율은 92.64%에 달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물량 전체가 해외 거래소가 아닌 오직 국내 거래소에만 예치돼 있다는 점이다. 현재 히포크랏 중앙화 거래 예치 물량 중 거의 대부분이 업비트 콜드월렛에 보관된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히포크랏이 빗썸에 상장되면서 그 물량이 조금 분배된 모습이다. 전형적인 김치코인인 것이다.
중앙화 거래소의 예치 물량이 90%를 넘는 상황에서 소수의 물량 만으로 거버넌스 투표가 진행됐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상당수 물량이 중앙화 거래소에 예치돼 있어 이들 물량으로 투표를 진행하기가 사실상 어려웠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히포크랏 소유권은 사용자에게 있지만 업비트, 빗썸과 같은 중앙화 거래소가 사용자 자산을 대신 보관하면서 거래소가 관리 권한을 가진 탓이다.
문제는 상장 후 진행되는 리브랜딩에 거래소의 제재가 사실상 크지 않은 상황이다. 거래소가 발행량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발행 주체의 신뢰성이다. 발행 주체나 운영 주체가 디지털 자산의 총 발행량, 유통 계획, 사업 계획 등 투자 판단과 자산 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 사항을 반복적으로 공시하지 않을 경우, 해당 자산은 유의종목으로 지정되거나 거래 종료가 결정될 수 있다. 재단이 변경 사항을 투명하게 거래소에 공지했다면 무리 없이 통과될 가능성이 클 수 있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5월 국회에 제출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부대의견 보고서에서 국내 거래소의 발행량·유통량과 관련된 사례와 쟁점을 분석해 거래소가 참고할 수 있는 기준을 검토하고, 추후 업계가 상세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디지털자산의 초국경적 특성으로 인해 유통량에 대한 통일된 기준을 마련하는 데 현실적인 한계가 있음을 언급하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해외 발행 재단이 계획한 유통량 기준을 국내에서 강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히포크랏의 사례만 보더라도, 국내 중앙화 거래소 예치 비율이 90%를 넘고 해외 거래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높은 중앙화 비율만 확인하더라도,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별다른 가치 활동 없이 거래소에 잠들어 있는 디지털 자산을 구별할 수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디지털자산 시장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려면 거래소가 프로젝트를 꼼꼼히 검증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며 “중앙화 비율 역시 유용한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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